[8월 136호] '살인자'가 인간으로 살아나는 이야기의 마법

'살인자'가 인간으로

살아나는 이야기의 마법

김민지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갤리온, 2009)




가끔 누군가의 인생은 한두 줄로 요약된다. <40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 남편 청부살해>라든지, <생활고에 시달려 일가족 살해 후 자살한 남성> 같은 타이틀은 뉴스와 신문 곳곳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끔찍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우리는 이어지는 가벼운 연예 뉴스나 스포츠 소식을 기다리기 일쑤다. 하지만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의 작가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악의 화신’들의 인생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들의 왜 그런 일들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한 의사가 40년의 결혼 생활 끝에 아내를 도끼로 찍어 죽였다. 사체를 조각조각 도막까지 냈다. 하지만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옹호한다. 심지어 그를 알고 있는 판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증인으로 세웠다. 우편배달부는 그를 “성자”라고 했고, 정신과 의사는 그의 상태가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분노가 폭발한 “감정 통제 장애”라고 했다.
두 사람은 지인의 생일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사랑에 빠진 그들은 금세 결혼했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여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 위에 군림해야 직성이 풀리는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욕설을 해댔고, 남자의 얼굴을 때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터무니없는 비난들과 욕설이 쏟아졌다. 너 같은 돼지는 처음 본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악을 써댔다. 그는 어느 순간 그녀를 포기하고 공상과학소설과 정원 가꾸기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40년이 흐르고 일흔 두 살이 된 남자는 어느 날 그녀를 지하실로 내려오라고 한 뒤 벽에서 도끼를 내려 두개골에 일격을 가했다. 즉사였다.
검사는 8년을 구형하며, 이혼을 하지 않았던 남자를 힐난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럴 수 없었다. 책임감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마나 한 요식행위인,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결혼 선서를 남자는 저버릴 수 없었다. 그에게 결혼 선서는 진지하고 심각한, 저버릴 수 없는 법률이었다. 그는 이렇게 최후 진술을 했다.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가 그녀를 죽였습니다. 아직도 그녀를 사랑합니다. 아내에게 약속했었죠, 내 여자는 당신뿐이라고. 내가 죽을 때까지 이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약속은 제가 깼습니다. 남은 생애 동안 죄를 안고 살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발에 차이는 낙엽처럼 우습게 생각하는 결혼 선서를, 굳건한 책임감으로 40여 년을 지켜오다 결국 감정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이 노인의 역사를 읽는 순간 우리는 그가 ‘살인자’라는 사실보다도 그가 사는 내내 겪어 왔을 고통에 집중하게 된다.
베를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이 책에는, 이처럼 뉴스에서 단 몇 줄로 묘사되는 일들의 이면을 보여 주는 열한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두 번이나 은행을 털었지만 법의 선처를 받았던 남자의 이야기, 남동생을 욕조에 눕히고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아름다운 첼리스트, 창녀와 홈리스의 사체 유기 사건 등 소설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모두 실화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고대 조각상 ‘가시 뽑는 소년’을 부숴 버린 미술관 직원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고대 박물관의 경비원 자리에 취직한 남자는 인사과 직원의 실수로 순환 근무(여러 전시실에서 돌아가며 근무하는 것)를 위해 분류되지 않았고, 23년간 한 전시실에서 근무하게 된다.
거의 텅 비어 있는 전시실에서 그가 할 일은 경비원을 위한 의자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무료해서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일거리를 찾아냈다. 집에서 가지고 온 자로 공간의 길이와 넓이를 계산했고, 손잡이의 길이, 유리창 사이의 간격, 습도계와 조명 스위치의 크기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방문객의 수, 남녀의 비율 등도 헤아렸지만 그래도 넘치는 시간은 메워지지 않았다. 2년이 지난 후에는 일상의 모든 것들을 정확한 리듬대로 계획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5,400보를 걸었다. 여자는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성가시다는 이유였다. 근무 7년째가 되던 날, 문득 그는 궁금해졌다. 조각상의 소년은 의자에 앉아 발에 박힌 가시를 빼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소년이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찾아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갑자기 시작된 그 궁금증은 그를 미치게 했다. 가시가 자신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음식도 거의 먹지 못했다. 소년의 발이 염증으로 썩고 있다고 믿은 그는 압정을 한 상자 사서 구두 가게로 갔다. 구두 속에 압정을 숨겨놓고 신어 보다 비명을 지르는 손님에게 다가가 압정을 뽑아 주었다. 순간 그에게는 엄청난 엔돌핀이 솟았다.
15년 후, 퇴직을 단 몇 분 앞둔 남자는 23년간 한 번도 어루만진 적 없는 조각상에 다가가 끌어안고,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집어던졌다. 경찰들은 그의 집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벽과 천장, 바닥과 침실용 탁자 등 단 1밀리미터의 빈 곳도 없이 사진이 붙어 있었다. 모티브는 한결 같았다.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가 계단, 의자, 소파, 구두 가게, 항구 방파제 등에 앉아 발에서 노란 압정을 뽑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가 사람을 죽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변호사인 동시에 작가인 그는 숫자로 구형되는 그들의 죗값 이면에 존재하는 그들의 삶을 같이 되짚어보게 한다. 이 대단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몇 번이고 책장을 덮고 나와 우리의 이웃과 몇 줄로 묘사되는 사건사고의 인물들의 인생을 곰곰 되돌려 보게 된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은 그래서 ‘살인자’가 인간으로 살아나는 이야기의 마법에 걸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김민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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