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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8호] 외로운 자리를 비추는 지역출판의 길
외로운 자리를 비추는
지역출판의 길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의 의미
2018년 9월 6일(목)부터 10일(월)까지 수원에서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이 열렸다.
세계문화유산 행궁광장과 행궁동 일대가 책놀이터로 변신했다.
2017년 5월 25일(목)부터 5월 29일(월)까지 제주에서 열렸던
첫 번째 한국지역도서전인 ‘2017제주한국지역도서전’에 이은
두 번째 한국지역도서전 개최였다.
2019년은 전북 고창군이다.
도서전의 시작, 비 그러나 그침
도서전 첫날 목요일(6일), 비가 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걱정했던 비였다. 넓디넓은 수원 화성 행궁광장에 비바람이 들이치자 속수무책이었다. 도서전 첫날, 최근 이어지던 급작스런 폭우가 도서전 기간에도 몰아닥칠까 걱정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몽골 텐트에 마련한 지역도서 부스에도 비가 들이쳐서 테이블을 급히 안쪽으로 당겨 놓았다. 문제는 행궁광장 중앙의 지역책 전시관이었다. 국형결 건축가가 재생 팔레트로 꾸며 놓은 지역책 전시관에는 천장이 없었다. 잘못하면 책이 모두 비에 젖을 수도 있어 도서전 자원봉사자들과 관계자들이 지역책 전시관에 달려들어 책을 걷어 냈다.
다행히 비는 그리 오래지 않아 그쳤다. 그리고 그것이 도서전 기간 마지막 비였다.
지역책 전시관과는 별도로 광장 한쪽에는 지역출판사들의 도서판매부스를 마련했다. 부스마다 출판사의 이름을 걸고 지역에서 바리바리 싸 온 책 보따리를 풀어 독자들과 만날 준비를 했다. 경상대학교 출판부, 피플파워, 브로콜리숲, 빨간집, 산지니, 상추쌈, 어쩌다보니, 영남대학교 출판부, 펄북스, 학이사, 한티재, 부카, 호밀밭, 대도대한, 책마을해리, 심미안, 전라도닷컴, 흐름, 온하루, 달아실, 산책, 이음, 문화통신, 각, 담론, 꿈틀, 더페이퍼, 우리글…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경기도. 전국 각지에서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직원이 한 명에서 두서넛 정도인 소규모의 출판사에서 4박 5일 일정의 도서전 부스에 참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어려운 사정 속에서 짬을 내준 한국출판문화잡지연대 회원들 얼굴 하나하나가 반가웠다.
한바탕 비에 어수선했던 부스를 정리하느라 다들 여념이 없었다. 겨우 다른 부스를 돌며 반가운 얼굴들에 인사를 하고 월간 토마토 부스를 지켰다. 오후 5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자판기커피숍’의 음악이었다. 행궁광장에 마련된 야외공연장에서는 지역출판사와 지역밴드가 함께하는 ‘북적북적공연’이 벌어졌다. 그 첫 번째 공연이 바로 시작되고 있는 참이었다. 이용원 월간 토마토 편집장이 자판기커피숍을 소개하고, 뒤이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대전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대동 산 1번지〉였다. “세상에 에펠탑 하나만이/세상을 알려주진 않아/우주에 지구에 이곳에/대동 산 1번지 놀러와요”
바람은 불고 하늘은 넓고, 노래와 책이 행궁광장을 가득 채웠다.
제주에서 수원까지, 환하게
간간히 비가 듣고 날이 흐리던 어제와 달리 둘째 날인 금요일(7일) 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화창한 하늘이 넓은 행궁광장 위로 펼쳐졌다. 눈앞에 걸리는 것 없이 트여 있는 광장에 지역책이 우뚝 자리했다. 광장으로 한가로이 사람들이 오고 갔다.
4박 5일의 도서전을 준비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간을 애써 온 사람들이 있다. 2017제주한국지역도서전을 시작으로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까지, 이 도서전을 개최하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과 노고가 있었다. 그 중심에는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가 있다.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는 지역출판사와 잡지사, 학계가 모여 지역출판문화발전을 위해 결성한 단체이다. 2016년 9월 창립총회에서 한국지역도서전을 해마다 개최하기로 의결했다.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의 전신은 ‘전국지역문화잡지연대’이며 2013년부터 수원 《골목잡지 사이다》, 인천 《옐로우》, 대전 《월간 토마토》, 광주 《전라도닷컴》, 부산 《함께가는예술인》 등 지역잡지사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문화와 관련된 활동을 해 왔다.
한국지역도서전은 지역문화를 지키기 위한 뜻을 모아 시작했다. 서울과 파주를 중심으로 한 출판 환경에서 지역출판을 이어 가기란 쉽지 않다. 좋은 책이 나와도 알리기 힘든 지역책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행사가 바로 한국지역도서전이다. 한국지역도서전은 매년 같은 지역에서 개최되는 것이 아닌 전국 순회로 진행되는 도서전으로 기획했다. 지역에 힘을 실어 주자는 취지이다.
2017제주한국지역도서전은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와 (사)제주출판인연대가 주최하고 (사)제주출판인연대가 주관하여 행사를 개최하였다.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은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와 수원시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 조직위원회에서 주관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후원을 통해 참여했던 2017년의 도서전과 달리 수원시가 공동으로 주최하며 도서전 내용이 보다 풍성해졌다. 한라도서관이라는 한 장소에 국한되었던 도서전 공간 역시 수원 행궁광장과 선경도서관, 그리고 행궁동 일대로 확장되었다.
‘지역 있다. 책 잇다’를 주제로 한 이번 도서전은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잇다’와 지역출판이 여기에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날아라, 지역도서전’, ‘책과 놀다’, ‘활자의 발견, 출판이 있다’, ‘수원특별전’, 네 가지 섹션으로 서른세 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날아라, 지역도서전’은 60여 개 지역출판사들의 지역책 전시, 천인독자상 시상, 마을기록전 등 지역출판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와 행사로 구성했고 ‘책과 놀다’는 어린이책 놀이터, 누구나 책방, 북적북적공연 등 남녀노소 누구나 책을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그밖에 ‘활자의 발견, 출판이 있다’는 책의 학교, 작가와의 만남, 인쇄 박물관 체험 등 지역출판사 대표, 작가와 독자들이 만나 지역출판을 이야기하고 ‘수원특별전’에서는 도서전 개최지인 수원의 역사와 기록물을 펼쳐 보였다.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은 민관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는 비영리단체이다. 사무국에는 상근 직원이 없이, 자원봉사로 모든 업무가 이루어진다. 순수한 뜻을 가지고 십시일반 모은 회원비와 후원으로만 단체를 운영하는 실정에서, 2017제주지역도서전도 스토리펀딩을 통해 ‘천인독자상’ 상금을 마련하고 각종 후원으로 도서전을 개최했다.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은 문화 마인드를 갖춘 수원시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로 보다 확장된 기획을 선보이며 3만 명 방문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규모와 예산이 커지는 것만이 중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지역출판을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다는 점에서 이번 도서전은 인상적이었다. 또한 수원 화성이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지역출판문화의 장을 선보였다는 것이 뜻깊다.
쨍한 가을 하늘과 무관하게,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지역출판사 관계자들은 부스를 운영하느라 분주해서 여유롭게 도서전 전체를 즐기기는 힘들었다. 그 와중에 반가운 이가 깜짝 방문을 했다. 바로 김정숙 여사가 행궁광장에 바람을 몰고 나타난 것이다. 행궁광장이 한바탕 들썩였다.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의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부스에도 깜짝 방문해서 지역출판에 대한 애정을 몸소 보여 주었던 김정숙 여사였다. 지역책 전시관을 황풍년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대표(전라도닷컴 대표)의 안내로 둘러보고, 지역출판인들과 함께 단체사진도 찍었다. 김정숙 여사는 지역 편집자들이 건네는 지역도서를 하나하나 받아 들며 편집자들을 격려했다.
한바탕 설레는 바람이 지나가고서 오래 그늘진 자리에 볕이 드는 순간처럼 광장이 일시에 밝아졌다.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외로운 자리의 기록
도서전 셋째 날인 토요일(8일), 바로 선경도서관으로 향했다. 싣고 갈 짐이 있어 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차 없는 거리 운영 때문에 시간 안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선경도서관에서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기념 지역문화와 지역출판 컨퍼런스〉, 〈2018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정기총회〉, 〈제2회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시상식〉, 〈한국지역도서전 차기 개최지 선포식〉이 연이어 열릴 예정이었다. 선경도서관 야외마당에서도 도서관 만화가게와 마음여행전이 운영 중이고, 1층 로비에서는 제2회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도서를 전시했다.
종일 행사가 있을 1층 강당으로 들어가 백월을 설치하고 행사 준비를 시작했다.
〈지역문화와 지역출판 컨퍼런스〉는 (사)한국출판학회와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후원했다. 이문학 한국출판학회 회장과 황풍년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대표의 인사말 후에 코타니 히로시 북인돗토리 실행위원장, 사이토우 아키히코 지방출판문화공로상 심사위원장,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가 기조강연을 했다. 기조강연에서는 일본에서 30년을 이어 온 지역출판도서전인 ‘북인돗토리’의 사례와 더불어,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의 한국책을 번역해 일본에 소개하는 활동에 대해 듣는 시간이었다. 기조강연이 끝나고 지역출판에 대한 발제가 이어졌다. 〈지역출판의 현재와 미래〉 강수걸 산지니 대표, 〈지역 책, 지역도서전의 사회문화적 의미〉 최낙진 제주대 교수의 발제 후에 김정명 신구대 겸임교수, 유현옥 문화통신 편집위원, 한대성 출판문화산업진흥원 문화지원본부장 직무대행이 토론자로 나섰다. 부길만 동원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토론을 진행했다. 강수걸 산지니 대표는 출판인과 독자의 교류공간을 통한 네트워크 사례로 지역출판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고, 최낙진 제주대 교수는 지역분권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역출판의 당위성과 미래에 대해 논했다.
〈제2회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시상식〉은 한국지역도서전이 존재하는 의미를 보여 주는 자리였다. 천인독자상은 천 명의 독자가 주는 상으로 그 의미가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원 지역을 중심으로 십시일반 천인독자들의 응원이 이어졌으며 1만 원 이상 후원자들에게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 기념도서 《나는 지역에서 책 지으며 살기로 했다》를 증정했다.
지역출판사 및 저자의 활동을 격려하는 목적으로 제정된 천인독자상은 서울, 파주, 수원(도서전 개최지) 발행도서를 제외하고 2017년에 발행된 도서를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지역출판사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책, 출판사의 기획과 작가의 치열함이 돋보인 책, 작품으로서의 독창성과 완성도가 심사의 기준이 되었다.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심사위원회는 홍일선(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 위원장, 시인), 윤수천(동화작가), 이문학(한국출판학회 회장), 최낙진(제주대 교수), 한동민(수원화성박물관 관장), 권영란(작가), 이영남(한신대 교수), 양훈도(경희대 교수), 이은숙(수원시 도서관 운영위원)으로 구성했다. 심사위원회는 제2회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대상에 대구 한티재 출판사의 《들꽃, 공단에 피다-세상을 바꾸는 투쟁,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이야기》(저자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한국지역출판대상 공로상에는 부산 빨간집 출판사의 《청사포에 해녀가 산다》(저자 배은희, 최봉기)와 강원도 춘천 도서출판 산책의 《정약용, 길을 떠나다》(저자 권혁진)를 선정했다.
대상을 받은 《들꽃, 공단에 피다-세상을 바꾸는 투쟁,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이야기》의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공동 저자 가운데 네 명의 조합원이 참석했다. 조합원 조끼를 입은 저자 가운데 한 분이 대표로 나와 수상소감을 밝혔다.
“저희도 상처받는 인간이라는 걸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쫓아낼 수 있는 일회용이 아니라는 것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전체 조합원이 각자의 삶을, 생각들을 담은 책입니다. 아사히글라스에서 노조를 만든 후 170명이 하루아침에 문자 통보로 해고되었고요, 4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22명이 남았습니다. 이 책에는 노동자들이 각자의 아픔을 담았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이 쓴 글을 보고 굉장히 울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다들 힘들게 싸우고 있었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노동부는 불법이라 하고 17억 4천만 원의 과태료도 부과했지만 잘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법은 사회적 약자를 지켜 주지 못하고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힘에 굴하지 않고 싸워서 반드시 우리가 옳고 사회적 약자들이 매번 당하지만은 않는다는 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반드시 불법을 바로 잡기 위해 싸우는 데 천인독자상이 큰 힘이 될 거 같습니다.”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담겨 있었다. 오래 외로운 자리에서 싸웠을 목소리였다. 시상식을 진행하는 강당이 잠시 먹먹해졌다. 뒤이어 한티재 출판사 오은지 대표의 담담하지만 결의에 찬 수상소감이 이어졌다.
“살아가는 자기 자리에서 지역의 목소리를 담으라는, 좋은 책을 만들라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아사히 비정규직지회는 2015년 5월 구미공단에 최초로 설립된 비정규직 노동조합으로 아사히글라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조를 만든 지 한 달 만에 170명 조합원들이 문자로 해고통보를 받았고, 그 가운데 현재 스물두 명의 조합원들이 남아서 사측의 부당해고에 대해 투쟁하고 있다. 《들꽃, 공단에 피다-세상을 바꾸는 투쟁,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이야기》는 조합원들 하나하나가 저자가 되어 투쟁하는 이야기, 개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구미라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한티재라는 대구의 지역출판사에서 발굴하고 그 기록을 책에 담아, 이 자리까지 왔다. 단상에서 상을 전해 주는 이도, 상을 받는 이도, 이를 지켜보는 독자들도 모두 느꼈다. 그들이 변방에서 홀로 지켜 왔을 그 시간들을.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의 심장이 그곳에서 뛰고 있었다. 수상소감을 말하는 저자의 떨리는 목소리에 도서전을 개최하고, 독자를 만나고, 천인독자상 후원금을 모았던 그 모든 노력이 하나로 모아지는 느낌이었다.
수상소감을 듣고 선 황풍년 대표의 눈시울이 붉었다. “지역의 한, 설움 모든 것은 지역출판이 아니면 기록으로 남지 않고 역사로 남지 않습니다.” 황풍년 대표의 시상식 환영사 말처럼 그들의 설움이 기록이 되었다.
수원선언문을 함께 읽다, 행궁 안 유여택에서
수원 화성은 아름답지 않을 때가 없었다. 도서전 기간 함께 열렸던 수원 문화재 야행에서도 화성 내의 모든 거리와 풍경은 아름답고 화려해 꿈길 같았다. 도서전이 끝날 무렵 어느새 행궁 주변의 풍경과 골목이 마음속에 새겨졌다. 행궁 유여택에서 열린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의 밤도 그랬다.
8일 저녁, 지역출판사와 도서전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의 밤을 함께했다. 특히 이날 염태영 수원시장과 조명자 수원시의회 의장, 황풍년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대표, 최서영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수원선언문을 낭독했다. 최서영 집행위원장은 “책을 통해 이야기를 공유하며 함께 그려야 할 미래를 상상합니다.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사는 이 지역, 이 도시의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함께 읽는 수고를 기꺼이 마주해야 합니다”고 낭독했다.
역사의 도시 수원에서 4일 밤과 5일 낮을 보내며 우리가 마주한 것은 단순히 지역출판이라는 한정된 영역이 아닌 ‘지역의 미래’였다.
지역(地域)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하게 구획된 어느 범위의 토지, 그리고 전체 사회를 어떤 특징으로 나눈 일정한 공간 영역”을 가리킨다. 여기서 지역은 단순히 서울을 제외한 장소를 일컫는 지방(地方)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 누구든, 특정한 지역에 살며 자신의 삶터 안에서 일정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 안에 주어진 문화적·사회적 환경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모두 지역민이다. 개인의 삶을 어떻게 그려 가느냐는 곧, 지역의 문화지도를 어떻게 그려 가느냐와도 연결된다. 지역출판의 의미는 여기에 놓인다. 개인의 삶, 지역의 삶을 기록하고 그것을 축적해 나가는 일은 그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근간이 된다. 시장성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먼저 생산하는 것이 주가 아니고, 보다 간절한 삶의 순간들을 포착해 기록하는 일, 그 가치를 발견해 나가는 일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역출판은 계속되어야 하고, 지속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사히 비정규직지회가 그러했듯이, 그늘진 자리를 기록해야 한다.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은 그 화려한 막을 내렸지만, 2019년 고창에서도 그 가치와 방향성은 여전하다. 규모와 크기와 방문자 수에 상관없이, 어떤 그늘을 밝히고 숨어 있던 지역의 가치를 얼마만큼 끄집어냈느냐가 지역의 심장을, 지역출판의 심장을 뛰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2019년 고창이 기다려진다.
글 이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