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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6호] 새로운 삶의 지도를 그리는 방식
새로운 삶의 지도를 그리는 방식
정덕재
여자, 귀촌을 했습니다(이사 토모미, 열매하나, 2018)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을 보여 주는 종편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은 여러 종편의 제작물 중에서 장수프로그램으로 꼽히고 있으며 시청률도 높은 편이다. 이 프로그램은 별다른 예능적 기교 없이 산속에서 텃밭을 가꾸고 약초를 캐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담는다. 출연자는 대부분 남자, 건강을 잃었거나 사업에 실패하는 등 나름의 애환을 갖고 있다. 살아온 이력이 제각각 달라도 그들은 공통적으로 ‘편안한 마음’을 자주 얘기한다.
주인공들은 도시의 삶이 쌓아 가는 삶이었다면 자연의 삶은 내려놓고 버리는 삶이라고 말한다. 출연자는 대부분 남자이다. 산속 생활이라는 게 특성상 여성 혼자 살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측면에서 《여자, 귀촌을 했습니다》는 제목부터 눈길이 가는 책이다. 저자인 이사 토모미는 책 편집자 겸 작가이다. 이 책은 작가가 만난 매력적인 귀촌여성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사는 곳이나 직업, 만나는 사람, 이 모두가 한꺼번에 바뀌는 것을 귀촌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 여성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농사, 사냥, 유치원, 강사 등 그들은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한다.
직업명에 계절 아르바이트라고 적은 와타나베 가나코는 도시에서는 전문직이나 정규직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시골에 오면서 여러 일을 병행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30대 중반의 그녀는 귀촌을 결심하고 월 10만 원의 임대료를 내는 단독주택을 구했다. 그러면서 느긋하게 일을 시작했다.
도시에서 어떤 사업도 해 본 적 없던 니시무라 씨는 귀촌해 숲속 유치원, 대안학교 등을 운영하는 경영자가 됐다. 그녀는 자연과 더 가까운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며 귀촌을 결심했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 선택이었다. 작은 마을에 유치원이 생기면서 귀촌 인구가 하나둘 늘어났고 마을은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없던 빵집이 생기고 창작자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들어섰다. 그녀는 예전부터 살아온 마을주민들의 배려와 자연을 지키려는 귀촌자들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마을의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고 믿는다.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귀촌의 삶을 전하는 히비노 게이코 씨는 불안을 희망으로 바꾸는 방법과 귀촌 장소로 적합한 데가 어디인지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이 설레면서도 역시 불안과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는 마음은 당연하잖아요. 작물을 기르는 땅과 우리의 삶 모두, 자신의 마음을 쏟고 오랜 시간을 들여 맞춰나가는 일이 필수적이죠. 그런 각오를 다짐하고 희망을 걸 수 있는 곳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회사원에서 초보 사냥꾼으로 변신한 하타케야마 치하루 씨는 귀촌을 단숨에 하지 말고 서서히 하라고 충고한다. 그녀는 변화에 맞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몸에 익히고 싶어 귀촌을 결심했다. 이 귀촌여성은 사는 방식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슬라이드식 귀촌을 선택했다. 셰어하우스와 농사지을 장소를 정하고 나름대로 생활경비를 줄이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면서 회사를 그만두었고 프리랜서의 길을 걸었다. 그녀는 귀촌을 한 뒤 하루하루 창의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의 귀촌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사이다. 우리나라의 ‘2017 귀농어·귀촌인 통계’를 보면, 귀농·귀촌인 및 가구원은 51만 명을 넘어섰다. 귀농·귀촌인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3년 이후 처음으로 50만 명을 돌파한 숫자라고 한다. 의미 있는 통계는 귀촌인 연령대도 전체 51%가 40세 미만을 차지하는 등 40세 미만 젊은 귀농가구와 여성 귀농가구주 비율이 지속적인 증가세를 나타냈다는 점이다.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여성 귀농가구주는 4천 명을 넘어섰고, 여성 귀농가구주 비율은 32.9%로 2016년 대비 0.7%P 상승했다.
도시에서 보내는 삶의 리듬과 농어촌 생활의 시간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공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간을 운영하는 방식 또한 달라지기 마련이다. 귀촌이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사실은 귀촌자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인터뷰한 귀촌여성들은 저마다 매일매일 행복하다고 말을 한다. 자연의 흐름에 가까운 삶이기에 그렇다. 필요한 일을 스스로 찾고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과정을 배울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나도 일주일에 하루는 시골에서 지낸다. 귀촌은 아니지만 몸의 일부는 시골에 포함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맑은 별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다. 풍경소리에 묻어나는 바람의 결을 느낄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순응하거나 거스르는 모습을 함께 발견할 수 있기에 성찰의 시간을 갖기에도 충분하다. 아직은 정착한 단계가 아니라서 일과 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서툴지만 공간의 긍정성은 체감을 하고 있다.
《여자, 귀촌을 했습니다》는 귀촌한 일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한국의 여성은 물론 남성들에게도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줄 수 있는 책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게 어떤 변화로 이어지는지, 그 변화가 만들어 내는 놀라운 실체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순간, 삶의 지도가 혁명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덕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