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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2호] 본토배기는 집 안 짓고...
본토배기는 집 안 짓고, 다른 데서 들어온 사람은 집 짓고
어릴 적, 아버지는 종종 학하리정신병원 이야기를 하셨다.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도, 생김새도 몰랐지만 어린 나는 학하리정신병원이 무섭고 어두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학하리정신병원에서부터 한밭대학교 인근까지가 이번 대전여지도에서 찾은 학하마을이다. 취재를 위해 찾은 학하마을은 어린 내 상상 속의 모습과 달랐다.
처음 마주한 정신병원은 상상 속의 모습과 달랐다
학이 내려앉은 모습이라 해서 학하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마을주변에서 청동기 시대 유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모여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오래된 마을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까. 이제 막 서른 고개를 넘은 나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밭대학교 인근 대신, 정림동에서 대정동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학하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입구 어귀에 다다르자 신생병원·대전광역시립정신병원으로 향하는 안내표지판이 눈에 띈다. 대전토박이들이 통칭 학하리정신병원이라 부르던 곳의 정식명칭이다.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부터 굽이굽이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좁은 길에서 제법 많은 차가 나를 스쳐 지나갔고, 내 뒤를 따라오는 차도 여럿 있었다. 이 길이 닿는 행선지는 정해져 있으니, 이들이 향하는 곳은 모두 같은 곳이었다.
신생병원은 지난 1986년 대전시신생정신병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했다. 1994년 병원을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이 대전광역시립정신병원을 위탁받아 운영하면서 원명을 지금의 신생병원으로 변경하고 치매병동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말로만 듣던 상상 속의 대전광역시립정신병원을 처음 마주했다. 한낮의 강한 햇빛 때문인지 병원은 생각과 달리 평온하고 차분했다. 병원 잔디밭에 둥그렇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무리도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보였다.
저는 보건소 직원이 아닙니다만
차를 돌려 좁은 길을 따라 다시 대로변으로 나왔다. 마을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금세 학하초등학교가 보이고, 초등학교 골목에 들어서자 학하1통마을회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오가 조금 지난 오후, 마을회관에는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낯선 이가 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았는데 이들은 오히려 반갑게 나를 반긴다. 해맑게 인사한 내가 제법 마음에 들었던 걸까. 나를 반기는 할머니들 사이에 넉살좋게 앉았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점심은 먹었어? 혈압은 언제 재나?”
내가 마음에 들어 먼저 말을 건넨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 보건소에서 혈압 재러 오는 날인데. 보건소 아가씨 아닌감?”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주인공이 나타기 전까지 나는 주인공 행세를 한 이상한 젊은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빨리 사태를 파악하고, 내가 마을을 찾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마음씨 좋은 할머니들은 “그래서 뭐가 궁금해서 왔데?”라며 별일 없었다는 듯 군손님인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옛 마을의 흔적이 남은 곳은 일부분이었다
“이 동네 개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 한 12년 정도 됐나? 원룸 생기기 시작한 건 조금 더 됐고. 학하마을이 옛날부터 굉장히 컸어. 집이 드문드문 있어서 범위가 넓었지. 옛날에는 사람들이 봉명동이랑 계산동 조금 지나면 학하마을 왔다고 했었어.”
홍점분 할머니가 두 팔을 양 옆으로 쭉 뻗으며 마을이 얼마나 큰지 몸소 보여 준다. 현재 큰 마을에서 고유한 옛 마을의 흔적을 간직한 곳은 일부분이다. 옛 마을 대부분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도로와 아파트, 원룸, 공업시설이 드문드문 놓여 있다. 지난 2006년 대전시가 학하지구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는 게 어려운 세대는 마을이 간직한 이야기보다 하늘 높이 솟아올라야 할 아파트에 더 관심을 가졌다. 항상 싱그러운 녹색 마을, 미래지향적으로 인간중심적인 환경, 주민이 화합하는 정감 있는 전원도시를 건설하겠다며 대전시는 학하마을을 바꾸어 놨지만 그 모습은 여느 택지개발 마을과 크게 다른 게 없었다.
“개발하면서 마을 바뀌고, 여기 살던 사람이 싹 나갔지. 개발되고 나서 돌아온 사람도 몇 있긴 한데, 여기 회관에 있는 사람이 옛 마을사람 전부야. 이 동네가 학하리잖아. 옛 어른들이 이 동네에 이사 오면 학처럼 부자 돼서 나간다고 했었어. 옛날 부자 다 나갔잖아. 이제 여기 안 살지. 본토배기는 집 안 짓고, 다른 데서 들어온 사람이 집 짓고, 그러고 살지 지금은.”
정신이 그런 거지 육신은 멀쩡해
“여기가 순 고구마밭이었어. 학하리 고구마가 유명했지. 고구마 캐서 나가서 팔고 그랬어. 요즘은 밭이 다 없어졌지만 잘 팔렸지 예전에는. 저기 정신병원은 우리 쪼끄마할 때 생겼어. 많이 변했지. 엄청 커졌어. 옛날에 이북사람이 피난 와서 아무것도 없이 다리 밑에 살았거든, 먹을 게 없으니까 우리가 가서 먹을 거 주고 그랬어. 그이가 신생병원 세웠잖아. 아픈 사람 데려다가 치료해 주고 하다가 저렇게 커졌지. 그이 죽고 아들이 물려받았는데 지금은 시에서 관리해.”
정신병원에 대해 묻는 게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는데, 문창성 할머니는 거리낌 없이 병원에 대해 대답한다. 병원을 지나 조금만 더 들어가면 처음 병원을 세운 이가 살던 초가집이 있다며 한 번 가 보라는 말도 붙인다. 주민들은 병원을 몸이 아픈 사람이 가는 여느 병원과 다를 바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 사람들이 정신이 그런 거지 육신이 얼마나 멀쩡한데, 옛날에는 우리 농사짓는 데 와서 도와주기도 하고 그랬어. 그럼 우리가 고마우니까 밥해다가 주고. 근데 요즘은 그러면 큰일 나. 강제노역이라고 난리가 나. 뭐 그러니 교류가 있나. 이제 전혀 없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법 시간이 흘렀다. 슬그머니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방을 나오니 승용차 한 대가 회관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젊은 여성 두 명이 내리는 거로 보아, 주인공이 나타난 듯했다.
학하마을 이야기를 엮는 이가 많지
마을회관을 나설 때쯤 마을 토박이이자 노인회장인 김용경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이 동네 이야기를 제일 많이 안다고 말하던 분이었다. 할아버지에게 마을에 대해 묻자, 마을회관 2층으로 향한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김용경 할아버지는 이내 자료집을 펼치고 학하마을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학하마을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이가 많지”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슬며시 묻어났다. 제법 어려운 마을 역사 이야기와 학하마을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이 성전세의회를 결성해 1년에 두 차례 재밌는 행사를 진행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작년 6월에 어르신 체육대회를 해 80여 명이 모였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올해 5월에는 학하초등학교에서 70세 이상만 참여하는 전국대회 규모 체육대회를 할라고. 남녀평등 시대니까 남녀가 꼭 한 팀으로 출전해야 자격이 있어. 진잠, 유성, 계룡 일부까지 어르신들이 다 모여서 할 거니까. 꼭 놀러 와.”
할아버지의 기분 좋은 초대를 받은 후, 마을 한 바퀴를 돌아봤다. 조금 전까지 전래동화를 들은 것 같았는데 마을 반대편에서는 아직 공사를 마치지 않은 아파트가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