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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2호] 시선이 머무르는 곳
시선이 머무는 곳
대흥동에 반가운 이웃이 생겼다. 전시 공간 ArtSpace128(이하128)이다. 지난 3월 3일 〈2018 미디어아카이브-싱글〉 展으로 문을 연 ArtSpace128은 12.8artist-run space의 안권영 대표가 새롭게 문을 연 전시 공간이다. 인터뷰 이전에 먼저 128을 찾았다. 좁다란 문을 통해 조금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128이 반겨 준다. 두 공간으로 나뉜 전시장에서 차례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을 둘러보다 의자에 앉아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중간부터 영상을 보기 시작해 이 작품 제목은 무엇인지, 작가는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하나의 영상이 끝나길 기다렸다. 어느새 영상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화면에 나타났다. 얼마 뒤 하나둘 조용히 사람이 찾아왔고, 자유롭게 앉거나 서서 영상을 바라봤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후 안권영 대표를 128에서 만났다.
공간에 이야기를 불어넣다
다시 128을 찾았을 때 개관전을 마치고 다음 전시를 위해 공간은 비어 있었다. 작품이 빠져나간 후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공간을 보니 문득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하나의 작품이 공간 안에 새로운 이야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안권영 대표는 퇴근 후 막 도착한 모습이었다.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사무실과 전시장, 작업실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공간은 무인갤러리처럼 운영하고 있다. 전시 중에는 출근길에 갤러리 문을 열고, 퇴근 후에 갤러리에 들러 문을 닫는다.
“ArtSpace128은 시각 미술을 중심으로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세 번에서 네 번 정도 기획전시를 계획하고 있어요. 대관 전시도 진행할 계획이고요. 개관전인 〈2018 미디어아카이브-싱글〉 展을 잘 마무리했고, 4월 1일부터는 육은경 작가의 전시를 시작으로 5월 첫 주까지 젊은 작가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2018 미디어아카이브-싱글〉 展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스물일곱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작가의 비디오 초기 영상부터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만날 수 있었다. 작품에 관한 설명을 배치하는 대신에 보는 이가 영상을 통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작품을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렵게만 느껴진다”라고 안권영 대표는 이야기한다. 작가의 의도를 고민하려 애쓰기보다는 작품을 본 후 나름의 감상이 생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과 사람을 잇다
128은 권위적인 미술관과 상업성을 띤 상업 갤러리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한다. 사실 개인이 비영리 공간을 운영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다. 그래도 이러한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안권영 대표는 이야기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대안 공간 스페이스 씨(Space SSEE)에서도 일했었고, 공간도 운영했었어요.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공간은 문화를 다층화하는 역할도 하지만, 전방위적이거나 소모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작업을 선보이는 공간이기도 해요. 공간을 통해 관객은 물론이고 작가도 소통하고 비평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다시 공간을 시작했죠.”
안권영 대표는 공간을 운영하는 대표이기 이전에 작가이기도 하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온전히 작업에만 집중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쩌면 이것도 다 핑계”라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공간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작가들과 소통하며 그 안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좋은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공간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기도 한다.
나의 쓰임새
안권영 대표는 월간 토마토와 인연이 깊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월간 토마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벌써 세 번째 인터뷰에 안권영 대표는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2013년 첫 인터뷰 이후 벌써 햇수로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흐른 시간만큼 공간도 사람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달라졌다.
“근래 ‘이 지역사회에서 내 쓰임이 뭘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라는 사람의 쓰임새에 대한 고민이죠. 그만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나의 쓰임새에 관한 고민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공간을 열게 된 것도 가지고 있던 고민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일이죠. 제가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엄청나게 베풀고 살 자신은 없는데, 쓰임새가 많은 사람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