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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1호]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다 118
김연희 저자 강연회 <시가, 안아주다>
김연희 시인은 저자 강연을 시작하며 위층에 사는 다섯 살 아이가 오늘 오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웃에 가까이 있던 한 아이의 느닷없는 죽음, 그녀는 울먹이며 말을 이어 갔다. 마침 그 부고를 전해 듣던 순간 그녀는 시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차였고 시를 한 편 쓴다. 아래의 시가 아이의 부고를 듣고 쓴 시다.
사박사박
나리는 눈
아무도, 아무도
모르게
나리는 눈
간밤에라도 누가
곧 아이가 떠날 거라고
사박사박 눈길 걸어
떠날 거라고
말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간밤에 아빠 엄마 할매
이마 위에 가만히
눈 나릴 적에
아이는 곁에 앉아
눈 덮이는 엄마 얼굴
재밌다 신기하다
쳐다보았을까
- 김연희, 〈곧 떠날 거라고〉
김연희 시인은 “충분히 사랑해 줬으면 눈물이 나지 않았을 거 같아요” 하며 맘을 추스르고 강연을 시작했다. 그녀가 시인이라고 말하면, “등단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등단은 언제, 어디를 통해서 했냐고 묻는다. 그녀는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소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녀는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다, 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가지고 있는 수도꼭지가 시인의 수도꼭지이다. “그 시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바로 그 시인의 시. 그 사람이 아니면 내뱉을 수 없는 숨결. 그러니 모든 시인은 각자 다른 시 수도꼭지를 갖고 있는 셈이다.(〈스스로 펴내는 자로서 시 쓰기〉 중에서)” 처음에는 감흥이 없다가 쓰다 보면 영감이 생기기도 한다. 왜 시를 쓰기 어렵냐 하면, 수도꼭지 가까이로 가지 않아서이다. 수도꼭지를 계속 틀어 놓아야 하는데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시 〈곧 떠날 거라고〉도 시의 수도꼭지를 열어 놓자, 자연스럽게 찾아든 이미지를 받아쓴 작품이다. “그저 나는 나만의 리듬에 집중하고, 거기에 올라타서 무엇이든 읊조리는 그러다 새로운 걸 포착하고 또 포착하는 생동감 있는 시쓰기가 좋다.(〈스스로 펴내는 자로서 시 쓰기〉 중에서)” 그녀는 아이를 재우고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매일 글을 써 나가는 일상을 차분하게 이야기했고, 1인 출판에 관심이 있는 사람, 아기를 안고 온 엄마 등 다양한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김연희 시인은 《엄마 시집》, 《작은 시집》, 《영원한 빛 속에 슈팅》 세 권의 시집을 펴냈으며 현재 만리동에서 ‘만유인력’이라는 책방을 남편 한받 씨와 함께 운영한다. (세 권의 시집은 독립서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저자 강연 후에 ‘야마가타 트윅스터’ 한받 씨의 공연이 이어졌다.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가사와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돈만 아는 저질〉을 북카페 이데 밖으로 나가 공연하며 거리를 휘저었다. 대흥동의 고요를 깨며, 자본주의를 질타하는 그의 노래와 퍼포먼스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저자 강연회는 충남대 백마사회공헌센터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모먼트가 주관한 ‘책방의 선물’이라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기획되었다. 2월 23일 북카페 이데의 김연희 저자 강연회를 시작으로 도어북스(2월 24일 오후 2시 이지희 저자와의 만남), 도시여행자(2월 27일 저녁 7시 30분 남궁인 작가와의 만남), 계룡문고(2월 28일 저녁7시 서민 교수의 저자 특강)에서 강연회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