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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1호] 무기력을 이겨 내는 힘
칼럼_너희들은 자란다
지수는 우울증에 빠진 아이다. 유년시절부터 아빠의 알코올 중독과 그로 인한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때론 알코올 치료 병원에 구금되어 치료받는 아빠에게 희망을 가져 보기도 했지만, 며칠이 못 지나 또다시 엄마를 때렸고 온 가족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그렇게 15년을 반복했다. 무엇이 긍정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기에는 가혹한 가정환경이었다. 지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빠에 대한 두려움은 분노로 변했다. 무능력하게 맞기만 하던 엄마에 대한 연민 또한 분노로 바뀌었다. 약물치료도 받았지만 분노의 감정은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가슴속에 품었던 분노가 이내 그 속을 긁고 긁더니, 급기야 자기 팔목을 커터칼로 긋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곧 신체에 대한 학대마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느꼈을 때, 이제 그만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자살할래요.”
내가 지수의 무기력을 만난 것은 작년 봄 즈음이었다. 그래도 생명이 솟아나는 계절에 만난 것이 무척 행운이었다. 추운 겨울을 견딘 후 솟아나오는 새싹처럼 지수도 새 학년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맡았던 수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또는 ‘무엇이든 해도 되는’ 이른바 ‘자유수업’이었다. 수업에서 내 역할은 자기를 억압하지 않고 자발적 의지로 배우고 싶은 것을 찾도록 돕는 조력자였다. 무엇을 배울지 몇 주를 고민한 끝에 지수가 선택한 것은 외발자전거였다. 초등학교 시절 피구부, 배드민턴부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운동에 대한 긍정적 기억을 가지고 있던 지수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운동 특기를 갖고 싶다고 했다. 주 한 시간 정도의 노력으로 남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운동이 바로 외발자전거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익숙하지 않아 그저 서커스만 연상하게 되지만, 일본 초등학교의 98%가 외발자전거를 의무교육으로 실시하고 있고, 유럽 선진국가에서도 다양하게 시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꽤 선진적인 교육이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 기초를 배우고 숙달되기까지 반복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피아노를 중도에 포기한 것도 미술학원을 다니다가 그만두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수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처음 두 달은 넘어지고 일어서기만을 반복했지만 꿋꿋이 버텨 냈다. 놀자고 유혹하는 다른 학생들의 손길도 뿌리치고, 학교를 빠진 날에도 외발자전거 수업에는 시간 맞춰 나타났다. 때론 가족문제로 우울감이 심해지는 날에도, 죽고 싶은 생각이 요동치는 날에도 어김없이 참석했다.
평소 무겁고 침울했던 지수의 모습은 외발자전거 위에서 완전히 달랐다. 마치 구름 위를 걷듯 사뿐히 페달을 밟아 가며, 넘어지면 금방 일어서고, 크게 넘어져도 가볍게 툭툭 털며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두 달이 지나며 벽에서 손을 떼고 타기 시작했을 때 더욱 탄력을 받았다. 자신보다 잘 타지 못하는 아이를 도와주기도 하고, 심지어 함께 배우는 교사를 격려해 주기도 했다. 심리적 멘토를 자처한 나에게도 지수는 의지되는 존재였으니 ‘청출어람’ 그 자체였다. 그리고 연말 발표회에서는 무려 200명이나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6개월간의 과정을 훌륭하게 발표하기도 했다. 발표도 훌륭했지만, 발표를 준비해 가는 과정 또한 무척 감동스러웠다.
대개 우울증상은 ‘어떤 것도 나아지지 않을 거야’라는 신념을 내포하기에 무기력한 상태를 나타낸다. 우울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어떤 것도’라는 신념을 무너뜨리는 것인데, 내적으로 동기부여해 시도한 외발자전거의 성공경험은 견고했던 우울의 벽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 냈다. 회복은 언제나 이 작은 균열로부터 시작한다. 방학만 되면 두문불출하고 집에만 있던 지수는 이번 겨울 방학에 자원봉사를 하며 보냈다고 한다. 균열이 만들어 낸 작은 변화였다.
오늘날 학교교육의 다양한 문제 중 하나는 학생에게 내적인 동기부여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상·벌점 제도를 통해 학생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입시 제도라는 일원화된 동기부여를 통해 가동의 학습의지를 만들어 낸다. 인간의 불안심리는 이런 현상을 유지하는 데 일조하고 악순환 고리를 완성한다. 교육 당국이 이런 문제에 대해 인식하며 자유학기제, 공립형 대안학교 등의 각종 실험을 해 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학교라는 틀 안에서 이런 노력이 얼마나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유수업’은 학교가 제도적으로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방임이라며 비판할 수도 있지만, 단지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내버려 둔다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방임이 아니다. 교사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관찰하고 필요한 경우 내적 활동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그런 사이에 학생은 자기 주제를 고민하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율적 탐구에 의한 자기 주제의 발견은 학생으로부터 지금껏 품어 보지 못한 열정을 품게 한다. 인간 성장은 이 열정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해냈을 때 일어난다. 그것이 크든 작든 상관없다. 작은 것이 쌓이고, 자신감이 쌓이면 자연스레 커지기 마련이다. 특히 좌절경험이 습관처럼 몸에 밴 사람일수록 작은 성공의 맛을 여러 번 봐야 한다. 무기력에 빠진 지수가 자기 스스로 원했던 체육활동(외발자전거)을 통해 무기력으로부터 회복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