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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1호] 만유인력에 우리가 있었다
칼럼_만유인력 책방 이야기
작년 8월에 문을 연 책방 만유인력은 12월에 만유인력만의 연말파티라 할 만한 ‘만년 2017’(뭐든 제목 짓기 좋아하는 제가 지은 이 이름은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는 마음이 작용했음을 아시겠지요)을 개최하였습니다.
매달 밀려드는 월세의 압박 속에서 조금은 많은 손님을 맞이하고자(=책방으로 끌어들이고자) 급하게 기획해 보았습니다.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연말이니까 근사한 행사를 기획해서 많은 손님(으로부터 뭔가)을 맞이하고(얻고) 싶은 욕심에 급하게 일을 꾸며 보았습니다.
실은 그 손님은 대부분 제가 아는 사람일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책방이지만 엉뚱하게 책보다는 ‘영화’를 보여 주자고 메인 행사로 야심차게 영화제를 기획했습니다.
지금은 저를 자립음악가로 자칭하고 있지만 실은 90년대, 저의 20대 시절에는 단편영화를 많이 만들던 영화광이었죠. 누벨바그, 특히 고다르 감독을 추종하여 만든 영화들은 실험적인 작풍 탓에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못하였고 영화감독의 꿈을 쉽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포기하기 전까진 열정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죠. 반면 아내도 작년에 의욕적으로 만들어 놓고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 못한 단편영화가 있어서 이참에 두 사람의 영화를 만유인력에서 상영하자 마음먹었죠. 만리동에서 하니까 ‘만리우드 영화제’라 지었어요.
이 영화제를 중심 행사로 하고 책방의 공간에선 아내가 지난 몇 달간 진행한 ‘창조성(글쓰기) 워크샵’에 참여하시는 분들의 작품을 전시하였지요.
우리 첫째 ‘은빛선율’이가 1학년에 다니고 있는 봉래초등학교는 우리 책방과 아주 가까운 초등학교로 역사가 100년이 넘는답니다. 책방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봉래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어머니 한 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해 4학년 아이들을 모아서 뭐라도 좀 재밌는 거 해 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당시 유튜브(youtube)에서 인상 깊게 본 영상-대구 어느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Daft Punk의
혈기왕성한 아이들(특히 남자아이들!) 열 명을 데리고 연습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죠.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의 연습이 끝나면 한동안은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중간에 제가 남미 아르헨티나 공연도 갔다 오는 등, 여러 가지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 2개월의 짧은 연습 끝에 11월 교내 학예회에서 마침내 뜨거운 공연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책방이 있는 동네(만리동과 아현동)는 오래전부터 남대문 시장에 의류를 납품하는 봉제공장이 모인 곳으로 유명합니다. (현재 재개발로 동네가 사라지며 공장도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봉제공장은 만리동 고개 주변으로 많이 있습니다.) 어머니 중 한 분이 이런 계통의 옷 만드는 일을 하셔서 아이들의 공연의상도 어머니들이 책방에서 공연 전날 밤을 새며 직접 만드셨어요.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어머니들이 더 신났던 것 같습니다.
절대적으로 연습시간이 부족하였고 음향 상황도 열악했지만 교가를 나름 댄스음악 풍으로 편곡한 것이라든지 어머니들이 밤새 열심히 만드셨던 ‘4차산업혁명적공연의상’이 한몫을 해서 교내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답니다. 그런 첫 함께함의 인연으로 이제 책방에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었어요.
봉래초등학교의 전설이 될 뻔했던 ‘봉래전자음악단’의 유일한 교내공연과 해산 이후, 만유인력의 요청으로 ‘차차’씨(홍대 앞에서 활동하던 ‘캐비넷 싱얼롱즈’의 멤버, 피망으로도 불렸다)는 ‘만차모’(‘만유인력 차차 이모’ 줄임말)가 되었고 ‘다시 한 번 더’의 갈증을 느끼던 4학년 아이들을 모아 ‘봉래밤산책탐사대’를 조직해 동네탐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짧은 탐험이었지만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대원들의 작품을 만유인력에 함께 전시하여 책방은 이제 훨씬 더 풍성해졌답니다.
‘만년2017’의 첫째 날, 탐사대원 아이들의 어머니들께서 뜨끈한 오뎅국과 푸짐한 전도 책방 앞에서 직접 요리해 주셨는데 아이들과 찾아 준 손님들, 동네 이웃 주민이 함께 나누어 먹으며 동네에서 잃어버린 정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책방지기가 너무 욕심을 부려서일까요. 급하게 기획해서일까요. 아니면 연말이라 다들 바빠서 그랬는지 아니면 거듭된 추위와 미세먼지로 인함이었는지 기대만큼 많은 사람이 만유인력을 찾아 주지는 않았습니다.
코드 진행이 슬픈 느낌의 진행이라 그랬는지 부르다 보니 마음이 복받치면서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일순간 책방 안 분위기가… 저도 참 주책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흐느끼며 울어 버렸는지. 140여 명의 후원금으로 마련한 이 소중한 언덕 위 공간이 뭐가 어때서 울고 말았던지…
기도도 듣고
말씀도 듣고
손바닥 들어서
찬 배를 시계방향으로
살살 만져 주고
따듯한 물에 타서
마시게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러면
기도도 듣고
말씀도 듣고
노래는 한받의 사운드클라우드계정 https://soundcloud.com/vad-hahn/oc2etucvqhwp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