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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1호] 일상의 순간을 담습니다
이주연 기자의 필름로드
보시는 것처럼 정말 별것 없는 실력입니다. 누군가는 번거로운 걸 뭐 하러 돈 들여 가며 하냐고 묻기도 합니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닙니다. 완전한 디지털 시대가 되어 버린지도 한참인데, 필름 카메라를 제대로 접한 세대도 아닌 제가 필름 카메라라니요. 돈도 돈이지만 개중에는 설치고 다닌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즐거우면 장땡 아닌가요? 저는 즐겁지 않으면 이런 귀찮은 짓은 절대 하지 않는 부류입니다. 잘 찍혔는지 확인도 못 한 채, 비싼 돈 들여 현상을 맡기고 최소 4일을 기다립니다.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벌써 때려치웠을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죠.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선물 받은 필름 카메라를 시작으로 제가 다닌 학교를 찍고, 친구들의 얼굴을 담았습니다. 누군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사진 속에 담아 둔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지 않나요? 매력이 귀찮음을 이겨, 저는 지금도 더 좋은 필름 카메라를 찾아다닙니다.
제가 처음 필름 카메라를, 아니 카메라를 손에 들고 사진을 찍은 건 아마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누군가 손에 쥐여 준 일회용 카메라였죠. 조심스레, 괜히 창피한 마음에 몰래몰래 찍었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 제가 찍은 건, 죄다 손과 발, 그리고 흔들리게 찍은 지나가는 자동차가 전부였습니다. 그날 찍은 사진은 집구석 어딘가에 소중히 묻어 두었습니다. 저조차도 찾을 수 없게요. 그래도 설렜던 그날의 기분은 따로 떼어 가슴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매일같이 작은 자동 필름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 다닙니다. 매일같이 찍진 못하더라도 중요한 순간, 기쁜 순간, 마음이 조금은 무거운 순간, 그 순간순간을 담습니다.
사실 이번처럼 순간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순간을 찍어 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주야장천, 매일같이 하루에 몇 번이고 생각해 봤습니다.
처음 내린 결론은 아, 순간이라는 게 결국 말장난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차피 순간이란 건 눈 깜박하는 새에, 침 한 번 삼킨 새에 지나가 버린 시간이니까요. 그래서 조금은 얄밉고 서글펐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조금 더 들여 다시 생각해 봤죠. 이 얄궂은 말장난을 조금 더 뚜렷하게 기억하기 위해,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 게 아닐까 하고요. 가끔 저는 제가 찍은 사진을 보면 그날의 냄새가 떠오릅니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은 진짜입니다. 몇몇 사람이 계절과 시간을 냄새로 기억하듯 저 역시 그렇습니다. 언젠가 찍어 두었던 사진을 보며 그날을 냄새까지도 기억해 내는, 그 값진 시간을 갖기 위해 어쭙잖은 실력으로 사진을 찍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찍지 않으면 내일은 없어’라는 생각으로 오늘 본 것, 오늘 담고 싶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습니다. 물론 게으른 탓에 놓친 어제도 많았습니다. 오늘도 두 번을 놓쳤습니다. 아무래도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게 정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 되었든, 제가 찍은 별 볼일 없는 일상의 순간들은 지금도 우리 집 작은 상자에 켜켜이 쌓여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