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31호] 낯선 곳에 서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가야금 버스킹 연주자 김민정
“우연히 친구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간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워킹 홀리데이가 뭔지도 잘 몰랐는데 말이에요.”
김민정 씨는 한 치의 고민 없이 호주행을 결정했다. 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한 후, 가야금 연주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였다. 연주자가 설 무대는 한정적이었고 예술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많았다. 목표를 얼마나 이룰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문제였다. 음악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진지하게 자문했다. 그동안 제법 오랜 시간 가야금 연주자로 수많은 무대에 올랐었다. 공연을 위해 음악을 만들고 연습을 반복했지만 내 음악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음악과 현실 사이에 괴리감이 생기던 순간,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알게 됐다. 기회라는 확신이 들었다.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찾아보고 떠날 준비를 마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호주로 떠나면서 그녀가 꼭 챙겨야 할 것은 가야금, 단 하나였다. 가야금으로 버스킹을 하며 호주 곳곳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행복할 것 같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바랐는데 워킹홀리데이 얘기를 듣자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민 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었어요. 가야금으로 버스킹을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호주에서 음악 하는 친구도 사귀고 더 다양한 예술 교류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드넓은 호주에서 그녀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브리즈번이었다. 이곳에 국악 단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연주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한국과 달리 브리즈번에서는 오디션에 통과한 팀이 정식으로 버스킹을 펼칠 수 있었다. 오디션은 생각보다 치열했다. 180팀이 참가해 시간대별로 심사를 진행했다.
“오디션 스케줄 시트를 봤는데, 팀이 너무 많았어요. 전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이 참여했더라고요. 오디션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심사 결과를 기다렸죠. 오디션에 통과하면 합격 통지서를 보내 주고, 탈락하면 아무런 연락이 안 온대요. 결과를 기다리면서 정말 걱정 많이 했어요.”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열흘이 더디게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다행이 김민정 씨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합격통지서였다. 편지를 받아 든 그날부터 그녀는 매일 같이 가야금을 들고 거리로 향했다.
낯선 악기를 든 그녀는 단연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가야금을 가방에서 꺼내기도 전에 먼저 다가와 악기에 대해서 물어보곤 했다. 가방에 들은 게 혹시 서핑보드냐고 물어 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가야금이라는 악기는 낯선 존재였다. 주섬주섬 버스킹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녀에게 눈길을 보냈다. 먼저 다가와 언제 버스킹을 시작하는지 물어 오는 사람도 있었고, 낯선 악기의 연주를 듣고는 선뜻 큰돈을 지불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연주를 들은 후 꽃을 살포시 내밀었고, 어떤 이는 자신이 처음으로 접한 가야금 소리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어느 날 제가 버스킹을 하고 있는데 한국 여자 분이 다가와서는 자신은 캘리를 쓴다며 혹시 같이 공연해 보지 않겠냐고 물어 오셨어요. 영화와 광고 작업을 하셨던 최루시아 선생님이셨어요. 가야금과 캘리? 너무 재밌을 것 같아 선뜻 하겠다고 대답했죠.”
다음 날 두 사람은 한국에서도 낯선 공연을 호주에서 펼치기 시작했다. 김민정 씨가 가야금은 연주하면 그 옆에서 최루시아 씨가 한지에 붓글씨를 쓰는 행위예술을 펼쳤다. 김민정 씨는 두 예술이 소통하는 순간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호주에서 버스킹을 하면서 예술교류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다양한 사람이 모인 만큼 다양한 악기와 함께 갑작스럽게 공연을 하곤 했는데 그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해요.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연주가 더욱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예술교류를 통해 관객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욕심이 없는 편이었던 김민정 씨지만 호주생활은 예술에 대한 욕심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하며 즐거운 공연을 펼치고 그 메시지를 전달받은 관객이 호응하니 예술에 대한 욕심이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 깊어지며 호주에 체류하는 기간도 길어졌다. 1년 만료인 비자를 연장해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을 가야금과 함께 거리에서 보냈다. 브리즈번에 이어 시드니에서도 공연은 이어졌다.
“호주에 다녀와서 인생의 방향이 잡힌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무대공포증이 심했어요. 모순이잖아요. 사람들이 보는 직업인데 떤다는 게. 그런데 버스킹을 하면서 무대공포증을 떨쳐 냈어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게 좋고, 나의 연주를 들어 주는 게 너무 행복해요. 마음이 편해지니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음악에 담을 수 있고, 제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됐어요.”
입국한 지 채 한 달이 안 된 김민정 씨는 벌써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다. 또 다른 곳에서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