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1호]상상할 수 있는 권리, 상상할 수 있는 자유

상상할 수 있는 권리, 상상할 수 있는 자유
권두언

참으로 많은 것이 사라지는 시대입니다. 신화도 사라지고 사유도 사라지고 이야기도 사라지고 흙땅도 점점 사라지고, 많은 것이 사라집니다. 

꼭 특정 시대의 특징만은 아닐 듯합니다. 형태를 달리하며 영속성을 갖는 것도 있지만, 어느 시점에 나타난 것이 그 본래 모습을 잃은 채 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거나, 사라지도록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 중 하나는 ‘상상’입니다. 지금껏 인류가 지나쳐 온 순간은, 그 이전 순간 인류가 상상했던 모습의 반영입니다. 이 상상의 합에 보편타당하게 모든 인류가 참여했는지를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럼에도 모든 인류는 끊임없이 상상했고 그 상상은 다양한 순간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더는 상상하지 않습니다. 상상은 일반적으로 지금이 아닌 다가올 시간을 전제로 합니다. 상상하지 않는 표면적 이유는 현재의 삶에 얽매여서입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적절하게 밸런스를 유지하며 존재해야 하는데, 삶에서 현재가 차지한 범위가 과하게 넓습니다. 물론 강한 의지로 두터운 현재 삶의 속박을 끊고 왕성하게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럴 수 있는 힘을 잃었습니다.

이제 상상은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특정 집단의 이해와 욕망만을 반영합니다. 보편타당하지 않은 그 상상의 결과가 탐탁지 않습니다. 이미 상상을 독점한 특정 집단은 인류 전체가 일상적으로 상상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빼았습니다. 이를 위해 법이나 제도를 만들고 상식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 인류 전체에 바이러스처럼 퍼트립니다. 혹은 상상을 대체할 가공할 물건이나 행위를 만들어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인류’라는 거창한 범위를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로 좁혀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시의 미래는 당대를 함께 사는 시민이 후대를 생각하며 펼치는 상상의 총합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대가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당연한 권리와 자유를 되찾기 위해 격렬하게 싸웠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자유와 권리의 영역 중 중요한 영역을 다시 빼앗기고 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권리, 상상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다시 빼앗아야 합니다. 이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시민이 상상하는 미래가 도시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현실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정치와 행정은 이를 가능케 하는 유용한 도구여야 합니다.

이제 시민이 ‘상상’하기 시작합니다. 상상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누구나 정상회담이라는 깜찍한 이름으로 도시 곳곳에서 크고 작은 테이블을 만들었습니다. 가칭, 구민 총회를 준비하는 곳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서로의 이야기는 허공에서 부딪히며 엄청난 에너지로 증폭할 것입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시작입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그릴 준비를 합니다. 그냥 당연하게 그쪽으로 흘러가는 줄 알았던 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키를 손에 쥐었습니다. 이제 힘닿는 데로 돌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순간을 손에 땀을 쥐는 순간, 이라고 말했던 모양입니다.

지금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상상은 그곳에 있습니까?


2018년 2월 26일
월간 토마토 편집장 이용원​

글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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