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0호] 2018 토마토 영화 찍기로 결심하다 _ 시나리오편

2018 토마토 영화 찍기로 결심하다
시나리오 편
낙타와 자무쉬, 포포가 북카페 이데에 모여 앉았다. 이들이 나눈 대화의 중심은 시나리오다. 제주도와 유럽으로 떠난 땅콩과 개주 없이 회의가 진행됐다. 두 사람은 모르는 어마어마한 미션이 이날 결정됐다.
#1

북카페 이데 안. 카페 구석에 낙타, 자무쉬, 포포가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다.

낙타 (노트북을 열어 둔 채, 노트북 화면의 빛이 낙타의 얼굴을 조명처럼 밝힌다) 기술적인 조언을 받기 전에 프리프로덕션 기획에 대해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아 모이자고 했어. 우리는 기획보다 프리프로덕션이 더 오래 걸릴 테니까. 가장 중요한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시나리오 누가 쓰지? (서로 쓰겠다는 설전이 벌어지길 기대하며 자무쉬와 포포를 번갈아 바라본다)

자무쉬 (차창 밖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듯) 지난 번 강의에서 영화가 재밌으려면 주변 인물을 관찰하고, 그 사람의 특징을 살린 인물을 어떤 상황과 공간에 넣어야 한다고 했잖아.

낙타 우리 모두 이데가 가장 편한 공간이지 않아?

자무쉬 (진심이 묻어나는 말투로) 난 그런 생각 안 해 봤는데. 나는 오히려 의외인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아. 창작센터라든가?

낙타 맞다. 너 창작센터 좋아하지?

자무쉬 회사에서 멀지도 않고, 좋지 않아? 이데는 그냥 카페잖아.(웃음)

낙타 (의자에 반쯤 누여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킨다) 그냥 카페라니?! 여기는 이데야!

한동안 이데가 그냥 카페가 아니라는 설전이 벌어진다. 

포포 나는 사무실에서 영화를 찍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회사에서 뜨개질하는 영화 있잖아.

낙타 (어이없는 웃음) 그건 임금체불 이야기잖아. 난 다큐 말고 다른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어.

자무쉬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 목소리 톤이 밝아진다) 우리 사무실에 있는 직원 중에 한 명을 주인공으로 하자. 얌얌이 어때? 얌얌이가 주인공이면 재밌을 것 같은데. 캐릭터가 개성 있잖아.

낙타 (높은 목소리로) 캘리도 만만치 않아.

이어 사무실 내에서 주인공을 찾아 헤맨다 

자무쉬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생각해 봐. 얌얌이를 대전여중에 세워 놨다가, 창작센터로 장소를 이동해서 다시 세워 놔. 갑자기 대전천도 가고. 대전의 곳곳을 담는 거지.

낙타 (단칼에) 난 반댈세.

자무쉬 (의아하다는 듯, 열정적으로) <브로큰 플라워>있잖아. 그런 이야기를 담아 보는건 어때? 주인공한테 자신이 모르는 아들이 편지를 보내서 그동안 만났던 여자들을 차례대로 찾아가는 내용이야. 그러다 결국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도 만나고. 사실 별 이야기 아닐 수도 있는데 난 정말 재밌게 봤거든. (신이 난 목소리) 얌얌이가 주인공인데 고1때 사귀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구치소에 간 거야. 남자친구가 편지를 보내는데, 너무 외롭고 힘드니 고등학교 때 자기와 정말 친했던 친구를 찾아서 함께 면회 와 달라는 내용이야. 그래서 얌얌이가 옛 남자친구의 절친을 찾아다니는 내용인 거지.

포포 (조심스레) 내가 생각한 내용은 좀 우울한데. 갑자기 회사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 그래서 중간 관리자가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결국 제일 막내를 자르는데. 그다음 날 막내가 죽은 거야.

자무쉬 (박장대소) 야! 너는 도대체 그동안 어떤 회사에 다닌 거야. 너무 우울해.

낙타 난 혹시몰라 팀 노래 가사를 풀어놔도 재밌을 것 같아. 나는 쟤를 좋아하고 쟤는 다른 애를 좋아하고, 다른 애는 또 다른 애를 좋아하는 복잡한 관계. 롱테이크 안에 그 아이들의 모습을 담는 거지. 아. 아니면 액션영화! <다찌마와 리> 같은 코믹 요소를 가미한 액션은 어때?

자무쉬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옥상에서 카메라를 놓고 올라오는 애들마다 찍는 건 어때? <담배와 옥상> 한명씩 교대로 옥상에 올라오는데 거기서 캐릭터가 살아있는 많은 이야기가 이어지는 거야.

낙타 (손뼉을 치며) 재밌다. 해가 떠오르고 모든 이야기가 옥상에서만 이뤄지는데 인물은 바뀌어. 옥상이 우리 회사에서 스트레스와 압박을 분출하는 공간이잖아. 옥상이라는 공간을 재해석하는 거야.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괴물이 살기도 하고 말이야.

포포 옥상 이야기, 재밌을 것 같아.

낙타 (신이 나서) 누군가가 사내연애를 하는 거야. 옥상에서 몰래. 그래서 사내연애를 하는 그녀가 누군지 찾는 거지.

자무쉬 그러다가 갑자기 아이가 올라와. 이 아이는 누구의 애인가. (재밌다는 듯이) 궁금증이 증폭되는데 알고 보니 공감만세 여행 강의를 들으러 온 부모의 아이인 거야.

낙타 내가 옥상에 있는데 갑자기 귀신도 나타나고 막. 어때?

자무쉬 (목소리가 커진다) 사람이 옥상에 죽어 있어. 그다음부터 사건을 수습하려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소방 점검하는 사람도 갑자기 올라오고.

낙타 그래 옥상 좋은 것 같다. 건물 중 일부인 옥상을 해석해서 매번 다른 에피소드를 엮는 거야.

자무쉬 우리가 돌아가면서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말이야.

낙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 그럼 옥상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에피소드를 연재하듯 진행하는 건 어때? 같은 공간의 계절감이 두드러지게 말이야. 자연광을 담으면 공간의 느낌도 달라질 거야. 하늘과 주변 풍경도 함께 담고. 일반적인 회사 옥상에서 있을 법한 재밌는 에피소드를 상상해서 쓰는 거야.

자무쉬 (고개를 끄덕이며 격한 공감을 표한다) 재밌겠다. 그럼 계절별로 한 사람씩 시나리오를 쓰자. 작가에 따라 영화 분위기도 달라지지 않을까?

낙타 그럼 난 여름 에피소드 시나리오 쓸래. 옥상에서 선탠하는 이야기를 쓰는 거야. 우리 중 누군가가 갑자기 회사 옥상에서 비키니를 입고 선탠을 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수군거리다가 비치체어가 하나씩 늘어나는 거야. (흥분해서) 그러다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심지어 누군가가 풀장까지 가져다 놓는 거지. 동네 애들이 와서 신나게 놀고.

포포 재밌겠다. 그럼 4월에 첫 촬영을 시작하는 거로 하자.

자무쉬 그래. 그럼 난 봄 할래.

포포 난 가을. 그럼 개주가 겨울 시나리오를 쓰면 되겠다.

낙타 그런데 우리 촬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잖아. 그래서 말인데 이경원 감독이 옥천에서 영화를 찍는데. 우리 영화 스태프로 참여해 보는 거 어때? 현장을 직접 경험해 보는 거야.

포포 그거 좋다! 그럼 촬영과 편집 스태프로 참여할 파라랑 키키도 같이 가자.

긴 기획 회의 끝에 시나리오를 집필할 작가가 정해졌고, 본인들은 모르지만 촬영과 편집 스태프로 참여할 파라와 키키가 섭외됐다. 과연, 이들이 쓰는 시나리오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을까? 월간 토마토의 밑도 끝도 없는 영화 찍기 프로젝트는 첫 번째 작은 고비를 무사히 넘었다. 큰 고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글 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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