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0호] 오래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_<대전 블루스>전

오래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대전 블루스>전
으능정이네거리, 그 모퉁이에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창작센터가 있다. 1958년 농산물 품질 관리를 위해 건축한 건물로 등록문화재 100호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충청지원이 옛 선화동 검찰청사로 자리를 옮긴 후 비어 있었다.
그곳을 대전시립미술관이 활용 계획을 제시한 후 2008년부터 대전창작센터로 활용한다. 대전창작센터 초창기, 그곳에서는 크고 작은 포럼과 세미나가 열렸고 흥미로운 전시도 이어졌다. 문턱은 낮고 동네에서 지나다 들를 수 있을 것만 같은 편안함이 특징이었다. 화이트큐브라 표현하는 전시관을 목적으로 건축한 건물이 아니라 아담한 사무실이었기에 내부 구조가 훨씬 친숙했다. 어린 시절 다니던 학교 계단과 난간을 닮아 있고 천장을 모두 떼어 내 훤히 드러나는 지붕 목재구조물은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텍스트였다.
이곳에 상주하는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사는 작가들과 수시로 대흥동 골목을 쑤시고 다니며 다양한 작당모의를 한다. 현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미술을, 전시를, 작가를 좀 더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지난해 봄, 건물 소유주인 문화재청이 사무공간으로 쓰겠다며 건물을 비워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시와 미술관이 강하게 반발하며 일단은 지켜 냈다. 이런 소란스러움 속에서 걱정스럽게 지켜본 공간이 다시 1년 가까이를 잘 버텨내며 기어코 10주년 기념 전시를 개최했다.
다양한 공간 다양한 색깔

지난 1월 17일 개관해 오는 4월 8일까지 계속 이어지는 <대전 블루스>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대전창작센터와 대전아트시네마, 극단마당과 소제창작촌, 월간토마토와 공감만세가 함께 참여했다. 대전창작센터와 10년을 함께 하며 크고 작은 작당모의를 펼쳤던 이웃을 초대한 셈이다.

1층 정문 오른쪽 공간에는 대전창작센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전시물과 그동안 대전창작센터에서 진행한 전시 도록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펼쳐 놓았다.

개관식이 열리기도 한 1층 너른 방에는 대전아트시네마가 전시를 진행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영사기가 한쪽에 앉아 존재감을 과시하고 극장 문을 열 때 지역 작가가 제작해 선물한 ‘목어’를 떠올리게 하는 간판도 한쪽 벽에 걸렸다. 유명한 영화 포스터를 확대하거나 리디자인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대전창작센터를 비롯한 원도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트시네마 강민구 대표가 제작한 인터뷰 영상 내용은 무척 흥미롭다. 대흥동에서 나고 자랐으며 대전문화연대 창립에 힘을 쏟았던 충남대학교 김선건 전 교수의 대흥동 이야기, 대전창작센터의 건축학적 의미를 해설해 주는 한남대학교 한필원 교수 이야기, 어린 시절 선친이 농산물품질관리원에 근무했으며 자신은 현재 인근에서 이공갤러리를 운영하는 전형원 관장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게 이어진다.

본격적인 전시공간인 2층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소제창작촌이 공간을 채웠다. 소제창작촌은 2012년부터 대전광역시 철도문화유산활용프로그램의 하나로 소제동에 공간을 만들고 의미 있는 전시와 레지던시 등을 기획해 진행했다.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 만들어 낸 공간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들의 다양한 설치작품과 사진작품 등을 통해 소제창작촌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건너편에는 극단 마당이 전시를 구성했다. 대흥동 일대에서 펼쳐진 축제 ‘대흥동립만세’는 시사점을 던지며 많은 사람에게 영감과 문제의식을 심어 주었다. 시작부터 깊숙히 개입해 축제를 진행한 극단마당 손종화 대표는 대흥동립만세 포스터와 붓글씨 천 등을 통해 그 역사를 보여 준다. 또한 1971년 창단한 극단 마당에 관한 소개와 함께 원로 연극인 진규태 선생이 소장한 포스터와 팸플릿 등을 전시한다.

중앙 전시 공간에는 월간 토마토와 공감만세가 함께 공간을 채웠다. ‘종이와 글씨, 그리고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전시를 기획했다. 공책에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쓰는 글씨를 따라가는 영상은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흔들린다.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져 따라 읽기가 힘들다. 글씨를 쓴다는 행위를 동음 이의어를 가져다 해석한다. 전시 공간 중앙 천장 부근에는 창간호 편집장 글과 10주년 기념호 편집장글을 발췌해 전시했다. 그 아래 놓인 둥근 소파에 누우면 편하게 글씨를 읽을 수 있도록 배치했다. 이외에도 월간 토마토가 운영했던 북카페 이데 테이블과 소파, 각종 소품을 전시했다. 공정여행을 진행하며 모아 온 각국 소품과 월간 토마토가 출판한 잡지와 단행본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이번 전시에서 또 눈에 띄는 것은 전시 공간은 물론이고 층계참과 구석 공간 등에 대전창작센터와 함께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박대규와 홍상식, 이인희 등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을 발견하는 것은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작품 중 월간 토마토 전시공간에 전시한 이인희 작가의 퍼포먼스 사진 작품은 대전창작센터 리모델링 완성 전 현장에서 벌인 퍼포먼스를 촬영한 작품이다. 어렴풋하게나마 오래전 건축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II 연극인 진규태 선생이 소장한 포스터

원도심 안 복합문화공간

월간 토마토가 전시 초대를 받았을 때, 친하게 지내다 잠시 잊고 있었던 오래전 친구에게서 생일 초대를 받은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느 시점부터 대전창작센터는 개관 초창기 강하게 지녔던 지역 친화력을 많이 잃고 있었다. 만나면 반갑지만 어느새 대화가 뜸해진 친구처럼 말이다.

대전창작센터는 문턱 높은 미술관이 아니라 동네 안에서 주민과 함께 호흡하며 다양하고 새로운 전시를 기획해 선보였던 곳이다. 그러기에 무척 적절한 위치와 공간을 가졌다. 전시 리플릿에 대전창작센터를 소개하며 밝힌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정체성은 원도심이라는 공간 위에서 제대로 완성할 수 있다.

II 천장에 설치한 《월간 토마토》 창간호 권두언과 통권 120호 권두언

II 영상 옆에는 릴레이 소설을 쓸 수 있는 노트를 마련해 두었다

글 이용원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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