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0호] 아코디언으로 당신을 위로합니다_아코디어니스트 우상임

아코디언으로 당신을 위로합니다
아코디어니스트 우상임
제주도를 ‘슬픔의 섬’ 또는 ‘침묵의 섬’으로 바꾼 근현대사의 비극적 이야기, 제주4·3사건.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대규모 학살로, 정부가 이념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학살하고 묵인한 사건이다.
지난 1월 12일 대전 북카페 이데를 찾은 아코디어니스트 우상임 씨는 치유 음악극을 통해, 올해로 70주기를 맞이한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관객과 함께 이야기했다.
설룬 사람들의 아픔을 연주하다

“내 이름은 황금녀입니다.
나는 1939년 제주도 함덕리에서 2남 1녀 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나는 아홉 살 때 4.3을 겪었습니다.”

붉은 풍금 소리. 이 음악극은 제주에서 평생을 살아온 한 여인의 이야기다. 주인공 황금녀는 대사에서처럼 제주도 함덕리에서 2남 1녀 중 맏딸로 태어나, 함덕국민학교를 다녔다. 그녀는 매일같이 동생들을 데리고 등교했다. 동생들은 누나를 기다리며 학교 운동장에서 하루를 보냈다. 동생들이 걱정되어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을 기웃거리며 수업을 들었다. 글을 쓰고 읽는 것이 가장 즐거운, 천진한 어린아이였다. 학교에서 배운 신기한 세상을 모래밭에 그려, 동생에게 알려주는 다정하고 듬직한 맏이이기도 했다.
평화롭던 아홉 살 어느 날, 주인공은 제주4·3사건을 겪는다. 이 사건으로 아버지와 외삼촌, 사촌오빠를 잃는다. 당시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 노년의 나이가 된 지금도 여전히 아픈 상처다.

“그때 마을 사람들, 숨이 막혀 벌벌 떨었습니다.
바닷가 숨비 나무도 겁에 질려 달달 떨었습니다.
붉은색 피 번지는 모래밭도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당시의 사건으로 당사자도, 지켜보던 이들도, 그리고 제주도 역시 함께 울며,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아픈 역사는 아직도 아물지 못해, 울컥울컥 피 흘렸고, 끔찍한 기억 속에 눈물 흘렸다. 그녀가 겪었던,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는 공연을 보는 관객에게 전달되어 분위기가 숙연했다.
제주4·3평화공원 안 전시장에는 제주4·3사건을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라고 기록했다. 일제강점기의 설움과 아픔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더 깊은 상처를 입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정부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이를 묵인했다. 선량한 사람을 빨갱이로 몰고, 장난감 삼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이 사건은 큰 아픔이었고, 누구보다 서러웠을 테다. 설룬 사람들, 그 모진 세상 어렵게 살아 낸 사람들. 공연을 보는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II 그녀의 아코디언 연주는 친근했고, 때로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II 단촐한 무대 위에서 그녀는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관객 가까이에서 이야기하다

“내 이름은 우상임입니다.
나의 어머니 이름은 황금녀입니다.
엄마는 제주어로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내 이름은 황금녀입니다. 나는 1939년 제주도 함덕리에서 2남 1녀 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라고 반복하던 대사는 공연 마지막에 다르게 읊어진다. 치유 음악극 ‘붉은 풍금 소리’는 아코디어니스트 우상임 씨 어머니, 황금녀 씨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음악극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우상임 씨의 목소리에는 드문드문 먹먹하게 눈물이 배어 있었다. 이제 와서야 말할 수 있는, 가슴에 박힌 채 빼내지 못하고 몇십 년을 그대로 두었던 상처를 딸이 대신해 뱉어냈다.
“연출가의 제안을 받고 ‘붉은 풍금 소리’를 기획했어요. 제주도민으로서 이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음악극으로 표현하면 좋을 것 같았죠. 무엇보다 어머니의 삶에서 4·3사건은 중요한 부분인데, 어머니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붉은 풍금 소리’는 다시 있어선 안 되는 이야기를 음악에 녹여, 역사를 돌아보고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그려보는 과정이에요. 공연을 보시는 관객 중, 그 시대를 겪은 분들이 많이 공감해요. 단순히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만은 아닌 거죠. 우리 주변에 당시의 아픔을 겪은 사람이 많아요. 그분들을 위로하고, 함께 아픔을 나누며 치유했으면 좋겠어요.”
우상임 씨가 지금까지 관객에게 선보인 음악극은 ‘나의 우산’과 ‘붉은 풍금 소리’ 두 가지다. 이 두 음악극 모두 그녀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와 부모님을 보고 느낀 것을 음악에 녹여 내,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우상임 씨는 원래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국립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다. 모스크바 생활을 마치고 제주도로 돌아와, 그녀가 자주 거닐던 모스크바의 자작나무숲을 생각하며 ‘자작나무숲’이라는 음악 단체를 만들어 활동한다. 클래식 음악가들과 함께 주제를 가지고 기획하고 공연을 진행하며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런 그녀가 아코디언을 집어 든 것은 관객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따분해하고 어렵게 생각하잖아요. 함께 활동하는 후배들과 좋은 공연을 기획하며 관객이 클래식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죠. 피아노는 아무래도 관객이 어려워하기도 하고, 이동에 불편함이 있어 많은 관객을 만나기 어려워요. 그래서 부피는 작지만, 음색이 풍부한 아코디언 연주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러다 아코디언 연주 안에 이야기를 넣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 음악극을 기획했어요.”
우상임 씨의 음악극은 많은 이에게 공감과 감동을 선사한다. 그녀는 제주4·3사건을 다룬 ‘붉은 풍금 소리’와 같은 음악극 공연이 제주도민으로서 자신이 해내야 할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더 많은 제주도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어머니가 제주어로 시를 쓰고 있고, 저 역시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민으로 살아가며 음악을 하고 있잖아요. 예술을 통해 제주의 이야기, 제주의 모습을 풀어내, 많은 사람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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