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0호] 권두언 - 존엄을 지키는 삶은 개인만의 몫인가

존엄을 지키는 삶은 개인만의 몫인가  
권두언 

이번 호 <시대를 탐하다> 주제는 ‘노동’입니다.
그동안 사회에서 많은 논의를 일으킨 최저임금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이슈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이것에 천착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고의 폭도 제한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펼치는데, 노동과 관련한 논쟁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의 변화 속도로 보면, 지금은 노동 시스템에 관한 매우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때입니다. 좀 더 근원적이며 광범위하게 말입니다. 준비 없이 시대의 변곡점이 도래하면, 우리는 1811년 영국에서 일어났던 러다이트 운동보다 훨씬 더 심각한 혼란을 겪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노동’에 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원한다는 것을 전제로 정책을 수립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간 안에 의미 없어질 수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한 후 결혼을 하고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고 교육을 시키고 노후를 준비하는 삶의 사이클이 정답이지 않은 세상입니다. 이런 단순한 과정을 밟아 가며 살아가기에 적절한 세상도 아닙니다. 이런 삶의 과정에 누구나 동의한다고 전제하거나 그리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는 세상 또한 아닙니다.
우리가 오랜 시간 상식이라 믿었던 삶의 방식이 다양한 조건 속에서 균열을 보이고 있습니다. 균열이 생길 만큼 기존 틀이 낡았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 혹은 가족(무리)을 위해 수렵과 채집이라는 노동행위를 통해 삶을 영위한 시대를 지나 다양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또는 조건 속에서 새로운 노동(형태)이 태동하고 다양한 형태로 분화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형태로 고착화한 시간이 너무나 길었습니다. 기술과 환경, 문화 등 노동 형태를 규정하는 다양한 조건이 변화하고 그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집니다. ‘인류와 노동’에 관한 논쟁을 펼치며 이에 걸맞은 제도와 시스템 정비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2020년으로 예정한 시급 1만 원 인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이 더욱 깊게 들었습니다. 2020년을 준비하며 2018년 이미 가파른 시급 인상이 있었고 이는 산업현장에서 크고 작은 논란과 함께 혼란도 가져오고 있습니다. 현재의 불균형하고 왜곡된 구조를 시급 인상이 해결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현재 우리 시스템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거나 낭만적으로 바라본 결과입니다. 물가 인상 우려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잔인한 착취구조를 자본가와 노동자로 양분화해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사회가 아닙니다. 자본가와 자본가, 노동자와 노동자 간의 끊임없는 착취가 일어나고 시급인상은 오히려 가지지 못한 자들 간의 착취를 더욱 강화하는 경향성을 보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최저시급에 관한 논의에 앞서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를 더욱 진지하게 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수준에서의 삶을 온전히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지금 사회 시스템에서 너무 무책임하고 폭력적입니다. 지금이 수렵채취 시대도 아니고 기술력의 발전으로 다가온 잉여의 시대, 개인의 노동과 존엄을 지키는 삶을, 이제는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이 모든 고민의 전제는, 존엄을 지키는 삶을 온전히 개인의 노동에 책임지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본래 그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2018년 2월호
편집장 이용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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