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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1호] 이 친구들이랑 음악 하면서 즐거운 인생 사는 거죠
세 번째 정규앨범
버닝햅번은 1월 20일 서울 샤프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정규앨범 발매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대전, 광주, 대구 공연을 마쳤고 부산이 남았다.
“생각했던 대로 꿈꿔 왔던 대로/가고 싶던 곳으로 조금 느려도/가는 거야.” 〈Vertigo〉의 한 구절처럼 버닝햅번은 긴 항해가 될 그들의 음악 인생을 천천히 끌고 가는 중이다. 앨범 재킷에 송원석 씨가 손 글씨로 써 내려간 열두 곡의 가사, 거기에 불안과 두려움을 딛고,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걸어간 길이 보인다.
송원석(보컬), 정우원(기타), 한상우(베이스), 김희정(키보드), 오근택(드럼), 다섯 명의 멤버를 탄방동 락웨일컴퍼니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락웨일컴퍼니 스튜디오는 그들의 연습실이자 녹음실이다. 화요일 오후 5시, 연습을 위해 멤버들이 다 모인다 했다. 한적한 길가에 고래가 그려진 간판이 눈에 띈다. 지하 계단에 담배 냄새가 가득하다. 어둑하고 서늘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 두꺼운 문을 밀자, 계단의 느낌과는 다른 따뜻한 조명이 인상적인 깔끔한 실내가 드러난다. 거기 네 명의 남자가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다.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며, 게임에 몰두 중이다. 느긋하고, 제법 멋있는 아저씨들이다. (희정 씨는 저녁에 온다 했다.)
II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82년생 개띠 아저씨들
II 세 번째 정규앨범 〈She Is Seventeen〉
가장 좋았던 그때보다
2000년, 그들은 고3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대전 라이브클럽 ‘퍼지덕’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길거리에서 만나, 밴드 버닝햅번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들공원 자리, 의사회관 앞 도로에 항상 있었어요. 그렇게 모인 친구들이 스무 명 있었어요. 뭐했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모였는지도 모르겠어요. 학교도 다른데. 왜 모여 있었는지 모르는데, 모여 있었어요.”
2000년대 초, 펑크록이 뜨고 있었으며 대전에 40~50개 정도의 밴드가 있을 정도로 인디뮤지션들의 활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버닝햅번 멤버 가운데 나중에 합류한 한상우 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82년생 개띠로 고등학교 때 만나 2000년 펑크록밴드 버닝햅번을 결성했다.
“신기해요, 어떻게 17년을 할 수가 있나요?”
“저희도 신기해요.”
“감회가 어떠신지?”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저씨가 된 느낌은 있어요. 어느 날 문득 내가 아저씨네.”
“17년 했으니까 그만해야겠다, 그런 느낌은 없어요?”
“많아요.”
곁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상우 씨에게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느냐 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9년 했으니까, 별로 할 말 없어요. 17년 되면 말씀드릴게요.”
2010년부터 연습실로 사용했다는 이 공간의 이름은 ‘락웨일컴퍼니’이다. 원석 씨와 상우 씨가 인디레이블 겸 스튜디오로 운영하고 있다. 버닝햅번은 이곳에서 연습도 하고, 앨범도 만들고, 오락도 하고, 밥도 먹는다. 럭스, 극렬, 원조뫼를, 스모킹구스 등 지역 인디밴드들의 음반도 제작했다. 집주인이 너무 시끄럽다며 나가 달라고 하는 바람에 원석 씨와 상우 씨가 2016년부터 직접 방음 공사를 시작했다. 2017년 3월, 앨범 작업이 가능한 스튜디오가 완벽하게 만들어졌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녹음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하나의 장르만 좋아해서 그것만 계속 듣는 형식이었다면, 지금은 이 음악도 괜찮네 하며 다양하게 들으며 성향이 조금 바뀌는 거 같아요. 그전까지 녹음을 할 때 쫓겼어요. 돈, 시간에 쫓기고… 서울에서 녹음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저희 스튜디오에서 직접 하다 보니까, 시간적 여유도 있고 여러 가지 많이 시도를 했죠.”
이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덕에 비용도 줄고, 스트레스도 덜 받았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도 가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에서 지원도 받게 되었고 세 번째 앨범을 녹음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졌다. 그만큼 이번 앨범에 대한 멤버들의 만족도도 높다.
그동안 준비한 노래도 많이 쌓이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내게 되었어요. 저희 스튜디오에서 좋은 앨범 하나 만들었죠. 처음 나온 정규 앨범들이랑 느낌은 바뀌고 있긴 한데, 저희 나름대로의 아이덴티티랄까, 컬러가 공고해진 거 같아요.”
샤프에서 있었던 쇼케이스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었다. 관객들이 모두 ‘떼창’을 하고 있었다. 쇼케이스의 뜨거운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동영상이었다.
“앨범 내고 공연할 때가, 밴드하면서 제일 재미있는 시기예요.”
“재밌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요. 사람들이, 실제로 좋아서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좋다고 해 줄 때 뿌듯해요.”
“혹시, 음악이 아니고 비주얼 때문이 아닌가요?”
“왜 그러세요? 아까부터.(웃음)”
“좋았던 것도 있고, 안 좋았던 것도 있어요.”
“안 좋았던 건 뭐예요?”
“사고를 쳐서… 틀렸어요. 몇 번 아니고 매번.”
여기서 틀렸다는 건 ‘연주’를 조금 잘못 쳤다는 말인데, 어떤 파트인지는 비밀에 부치겠다.
“의도를 가지고 틀린 거 아니냐? 망해 봐라. 망해라… 이러면서.(웃음)”
II 쇼케이스 공연 중에
안녕
앨범 〈She Is Seventeen〉에는 서른 중반을 넘긴 로커들의 지난 시간에 대한 진한 감상이 느껴진다. 17년 감회를 물어봤을 때는 심드렁했지만, 청춘에 대한 아쉬움과 이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의 의지가 여러 곡에서 읽힌다.
“노래 〈O.R.S〉의 ‘O.R.S’는 올드라디오슈퍼스타라고, 제가 제일 처음 했던 밴드 이름이에요. 고2 때 희정(키보드)이랑 했어요. 밴드를 오래 하다 보니까 마음이 그때 같지 않아요. 지금은 생각이 많아요. 처음에는 재밌기만 했었는데 말이죠. 그런 마음을 담은 노래예요. 어릴 때는 좀 맹목적이잖아요. 지금은 현실적이에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기본적으로 가장 어려운 건 생활이 될까, 하는 거고요.”
청춘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다는 점에서 〈4619〉도 〈O.R.S〉와 닿는 지점이 있다.
“4619는 스타렉스 번호예요. 처음 가졌던 차이기도 하고, 2007년 즈음 차를 사서 그 차랑 투어를 많이 돌았거든요. 10년 정도 탔는데, 차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폐차를 시켰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노래로 만든 거예요. 아저씨가 번호판을 떼는데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사람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돌아다녔던 친구인데 짠했어요.”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한 시대에 안녕을 고하는 느낌이 든다. 서른일곱 즈음에 느끼는 ‘청춘아, 안녕~’ 하는 기분. “좀 더 멀리 달리고 싶었다”는 가사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열아홉, 처음 시작할 때의 순수하고 저돌적인 마음과 서른 중반을 넘겨 음악을 대하는 마음은 조금 다르다.
“그게, 꿈의 크기가 작아졌다고 하면 좀 슬픈 건데, 멋이 없을지 모르지만… 음악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작아졌다고 해야 하나… 군대 가기 전만 해도 록스타가 될 거야, 하다가, 지금은 우리가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까? 어떻게 하면 오래 할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 원동력은 아마도 공연을 하고 곡을 만드는 시간들이겠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나요? 언제 그렇죠?”
“어느 순간, 너무 또렷하게 현실이 보일 때.”
밴드에서 유일한 기혼자인 원석 씨의 딸아이는 올해 유치원을 졸업한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을 갈 때마다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이 그를 흔들리게 할지도 모르겠다.
“경제적 이유도 없진 않지만요. 앞이 불안하면 더 힘들잖아요. 근데 항상 불안하지 않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항상 불안해요, 우리 내년쯤 뭐하고 있을까.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나.”
“10대 때는 음악이 탈출구, 해방감, 모든 걸 해 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20대 때는 별 생각 없이 살았고, 30대는 막막한 게 있죠.”
“밴드가 중요하고 소중한 건데, 나를 증명한다고 생각했는데, 30대에는 초라함이 있어요. 다른 사람은 직장 같은 걸로 증명하는데 저희는 밴드밖에 없어요. 내 인생을 증명하는 건 이거 하나인데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거에 비해서 여기에 너무 많은 걸 쏟아붓고 있고.”
“우리가 만약 음악 그만둔다 해도 셋이 뭔가를 같이하긴 할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내가 누군지,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질 거 같아요. 그러면 아무런 의미도 없이 도망가다가 죽을 거 같은, 그런 생각이 들죠.”
하지만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말이 결정적이다.
“저희의 즐거운 인생을 위해서 계속해야겠죠.”
즐거운 인생을 위해, 버닝햅번의 음악을 계속 듣고 싶은 이들을 위해, 그들은 음악을 계속하고 있고, 계속해야 한다.
조금 느려도
대전에서 음악 하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좋고 나쁘고 그런 거 없다고 한다. 집이고, 어딜 가도 편한 내가 사는 곳이니까. 대전 목척교에서 버스킹하는 영상을 봤다. 그 영상을 보며, 이 지루하고 심심한 도시에 버닝햅번이라는 걸출한 펑크록 밴드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 아니었어요. 술 취한 아저씨가 5만 원짜리 꽂아 주고 가고.” 한적한 오후, 그날 목척교를 오가는 사람들은 신이 났을 거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 바라는 게 뭐냐는 질문에 근택 씨가 말했다.
“계속하는 거죠. 이 친구들이랑 음악하면서 즐거운 인생 사는 거죠.”
원석 씨도 말한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주인공들처럼 ‘겁나 늙어서’도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꿈이 너무 크면 그만두게 되는 거 같아요. 우리도 만약에 록스타가 되는 게 목표였으면 그만두지 않았을까? 망했네, 그만하자 이러면서.”
“그러면 뭐가 꿈이었죠?”
“처음에는 록스타가 꿈이었죠. 음악만 하고 먹고 살고.”
지금은 록스타가 아닌, 그저 음악을 하며 사는 것이 그들의 로망이다. 그만큼, 17년, 20년, 30년, 무언가를 일관되게 해 나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곡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