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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9호] 만유인력, 만리동에 있어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책방
한받
‘만유인력’은 올해 8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14년 넘게 동네 주민들 머리를 만져 주던 정희미용실이 이사를 가고 그 빈 건물에 새롭게 터를 마련하였습니다. 와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직 책방 같은 느낌은 덜 납니다.
‘만유인력’은 다른 책방들과는 다르게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 십시일반)으로 보증금을 마련해서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140명이 넘는 사람들의 고운 손길과 입김으로 문을 열게 된 의미 있는 책방입니다.
‘만유인력’은 마포구 아현동과 중구 만리동의 경계에 있는 봉학산 언덕 위에 서 있는데 서울의 중심에 있는데도 해발고도가 높아서 동네 주민 외에는 찾아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려면 한번 맘을 먹어야 하죠.
간혹 책방에 오시는 분들은 서울에 이런 옛 느낌 물씬 나는 동네가 있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만유인력’의 양대 책지기(음악가 한받과 시인 김연희) 중 하나인 저는 ‘홍대 앞’에서 주로 활동하던 자립음악가1) 입니다. ‘상수동’에서 10년 넘게 살아오다가 ‘만리동’에 예술인주택이 생겨서 2년 전에 이사를 왔습니다. 만리동에 살다 보니 동네에 문화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봉제공장에서 밤낮으로 미싱 돌리며 일하기 바쁜 부모들 밑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함께 모여 놀 수 있고 배움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랑방 같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그런 공간으로 우선 ‘책방’을 생각했습니다.
상수동에 살 때 우리 부부에겐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홍대 앞에 24시간 책방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신혼여행으로 간 대만 타이베이에 24시간 책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술 마시다가도 책을 읽고, 춤추다가도 책을 읽고, 노래하다가도 책을 읽는 그런 곳. 너무 멋지지 않나요? 그렇죠. 불야성을 이루는 홍대 앞에 24시간 책방을 열자는 것입니다. 워낙 제가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갈 곳 모르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뻔한 술집이나 식당이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게 전부가 아니라, 책을 붙잡고 생각을 붙잡고 휘청이며 가던 길을 새롭게 다시 갈 수 있는 그런 곳. 멋있는 공간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수중에 돈이 없어서 그저 생각만으로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만유인력’입니다.
기적처럼 일주일 만에 1,200만원이 넘게 모였습니다.
이렇게 보증금을 마련해 순조롭게 계약이 진행되나 했지만 원래 봐 두었던 공간은 여러 가지 문제로 계약하지 못하고 다른 공간을 찾아야 했는데 다른 공간들은 권리금을 당연히 요구하거나 월세가 너무 비싼 공간들이라 계약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이후 약 7개월간의 기다림 끝에 앞서 말씀드린 정희미용실 자리가 났고 저희가 들어가서 책방의 문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 여는 날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해 주시고 여기가 ‘빈 들’이라 했습니다. 하루는 구역장님이 또 후원금을 주셔서 무사히 실내의 인테리어 작업을 하고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몇 달이 지난 현재 드는 생각은 ‘잘돼도 고민, 잘 안되어도 고민’입니다.
잘되면 입소문으로 방문객이 증가하여 주변 땅값이 올라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될까 봐 고민이고 안되면 원래의 사랑방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것이고 또 월세 내기에도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몇 달 아니지만 책방을 운영해 보니 사람들을 책방으로 이끄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만유인력이라는 이름처럼 잘 끌어당겨지면 좋으련만.
하지만 책방은 ‘무인책방’으로 늘 열어 놓고 있습니다.
책방에서는 여러 가지 모임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처음의 소망대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간으로서 쓰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만유인력을 통해 한 번의 학예회 공연이었지만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봉래전자음악단’이라는 전자음악그룹이 결성되어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책방 만유인력이 24시간 늘 열려 있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언제나 열려 있어서 배고픈 자 가난한 자 쫓겨난 자 모두 이곳으로 와 책을 듣고 음악을 들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책과 음악이 잘 팔리길 바라야겠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우선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저항의 기운을 흠뻑 맞이하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여기 만유인력에 와서 힘을 주고 얻어 가면 좋겠습니다.
기꺼이 기꺼이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벗이여 친구여 책을 사랑하는 이 세상 사람이여, 언제든 이곳으로 놀러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