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9호] 나의 첫 해외 출장, 따뜻한 온도 롬복

나의 첫 해외 출장, 따뜻한 온도 롬복 

유명 관광지 발리, 그리고 그 옆의 작은 섬 롬복이 있다.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 발리는 그 명성에 걸맞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가득 차 있는 도시다. 반면에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롬복은 아직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지역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과연 롬복이 훼손되지 않고 지금의 아름다움을 지켜 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쉽게 오해한다. 한 도시가 관광지로 유명해지면 상권이 발달하고 주민이 부유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시에는 늘어난 여행자만큼 쓰레기가 많아지고 그에 따른 처리비용도 증가한다. 뿐만 아니라, 돈 장사가 될 것 같은 건물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여행자가 소비하는 돈은 지역주민이 아닌 건물소유주, 즉 개인사업자 또는 기업에게 돌아간다. 결국 급격한 여행자 수요로 인한 쓰레기 발생, 소음공해 등으로 일상생활을 잃게 된 지역민들이 고향을 떠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이러한 여행으로부터 지구를, 사람을 지키고 싶어서 조금은 다른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롬복으로 여행을 떠나 보려 한다. 지역주민, 여행자들이 함께 행복을 누리는, 서로에게 플러스가 되는 여행을 만들어 가려 한다.​


II 아름다운 한적함과 조용한 멜로디를 가진 롬복, 단어 사이의 모순을 가져다주는 이 섬을 사랑한다.  나는 이 평온함을 지키는 건강하고 공정한 여행을 운영할 것이다.​  

인도네시아 롬복으로 첫 국외 출장을 다녀왔다. 그렇게나 가고 싶던 국외였는데 이상하게도 두렵고 긴장도 많이 했다. 아마 그냥 여행자 최효진이 아닌 공감만세 여행사업부 사원으로 떠난 여행이라서 그런가 보다.
약 세 시간의 대기 그리고 여섯 시간의 비행 끝에 롬복 땅을 밟았다. 장기간 비행에 지친 나를 따뜻한 온도로 안아 주던 롬복. 그 섬 특유의 향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첫 국외 일정을 소화하느라 하루 이틀 정신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어느덧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내 시야를 꽉 채우고 있는 건 롬복의 푸름이었다. 때 묻지 않은 맑은 롬복. 그리고 그 속에서 숨겨진 보물섬을 찾았다.
섬 속의 섬, 길리아사한은 롬복에서도 세 시간은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외지의 섬이다. 점점 좁아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거리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울퉁불퉁한 길에 맞추어 흔들리는 몸에 힘을 실으려는 딱 그때쯤 차가 멈추어 선다. 주차장도 표지판도 따로 있지 않다. 그곳에는 작지만 정교해 보이는 보트 한두 대와 보트 주인만이 있다. 예약도 영수증도 필요 없다. 그저 목적지와 사람 수만 말한다면 출항 준비는 끝난다.
보트에 올라타 엔진 시동 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비로소 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투명한 바다, 깨끗한 하늘, 시원한 바람, 푸른 야자수, 그 사이의 외딴 섬. 보트의 제일 앞머리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저 멀리 섬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카메라에 손이 간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망설임 없이 달리는 보트가 부러웠던 것 같다. 거침없이 물살을 가르며 달리니 멀게만 보였던 섬이 어느덧 수영으로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 다다랐다.


II 햇빛, 맑음, 구름, 비, 눈, 안개… 수많은 단어들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하늘에 사용하는 단어는 극소수이다. 우리의 하늘이 아닌 ‘나’의 하늘을 만나 보았다. 오늘 당신의 하늘은 안녕하신가요?​

길리아사한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의식하고 하늘을 바라보았던 게 언제더라… 그동안 놓쳐 왔던 수많은 하늘이 스쳐 지나갔다. 매일 이렇게 예쁜 하늘은 아니더라도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하늘은 항상 제자리에 있었는데… 앞으로는 하루하루 다른 하늘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할 듯싶다. 야자수 나무 사이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보이게 일명 ‘인스타 샷’을 찍어 보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위한 사진이 아니라 날 위한 사진이었기에 의도는 분명히 달랐다. 뒷목이 뻐근해 올 때까지 하늘을 실컷 구경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섬을 한 바퀴 걸어서 돌아보는 내내 바다가 곁에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깨끗하고 순수한 이 친구는 나의 마음에 여유를 찾아 주었다. 여유가 생기자 무언가에 홀린 듯 해안선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바닷가를 따라 위치한 나무로 만든 선베드를 보고 있으면 가만히 누워서 바닷가 소리를 감상하고픈 마음이 절로 든다. 시간이 멈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장소였다.​


II 폐교가 된 학교를 떠나지 않고 놀이터마냥 방문하는 아이들이다. 나도 따라서 어릴 적 놀이터를 기억해본다. 친구와 만나는 장소, 하루 즐거움의 장소, 싸우면서 성장하는 장소, 관계 배움의 장소.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지 않고 놀이터로 애용하는 이유를 금방 찾았다. 아이들은 학교를 그리워한다.​

그렇게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무작정 걷다 보면 예쁜 폐교가 하나 나온다. 예쁜 폐교라니, 두 단어의 대조성이 묘하게 안타깝다. 함께 간 현지인 인솔자에게 학교에 관해 물어봤다. 경제 사정상 학교에서 선생님의 월급을 보장해 줄 수 없었고 결국 선생님은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선생님 없는 학교는 유지될 리가 없었다. 이야기를 듣고 바라본 교실은 큰 흐트러짐 없이 운영 당시 모습 그래로다. 그래서였을까? 선생님 말씀을 따라 하는 아이, 작은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아이, 친구들을 보며 꺄르르 웃는 아이까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학교 주변을 꼼꼼히 둘러보고 있자 외부인의 인기척을 느낀 아이들이 학교로 찾아왔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졸졸 뒤따라오고 허름한 교실 문 뒤에 숨어서 가만히 나를 지켜본다. 순간 내 안에서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이 섬의 유일한 초등학교를 폐교로 방치할 수는 없다. 아이들은 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이 아이들을 위한 여행을 기획하고 싶다. 우리와 함께 롬복을 지키고 싶어 하는 당신이 여행을 신청한다면 비용 중 일부가 학교 재건에 기부되는 그런 공정여행. 한 번도 진 적 없다는 듯 활짝 예쁜 꽃을 피우고 있는 학교 정문의 나무처럼 아이들의 꿈이 구김 없이 펼쳐 졌으면 좋겠다.
새하얀 도화지 같은 롬복이 나에게로 하여금 다양한 색깔의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바쁘게 달려온 지난 몇 달간의 내 삶 속에는 진정 내가 존재하였는가 고민이 많았다.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숨을 돌리고 싶었다. 추워지는 날씨와는 반대로 행복감에 따뜻해지고 싶었다. 롬복은 이러한 나의 고민들을 한순간에 환기해 주었다. 이제는 이 아름다운 섬을 어떻게 보존하며 여행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차례다. 나에게 위로가 되어 준, 당신의 삶에 쉼표 하나를 선물해 줄 수 있는 힐링의 섬 롬복. 나도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싶다.

글 사진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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