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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9호] 끊임없는 쉼표를 던지다 _ 강철규 작가
강철규 작가
강철규 작가의 작품은 시리즈로 이어진다. ‘수면자들’, ‘방랑자들’, ‘생존자들’, ‘공유자들’ 네 개의 시리즈로 작업을 진행했다. 작품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절실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이름을 지닌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 모두 강철규 작가 본인이다. 강철규 작가는 작품 속에 자신을 집어넣어 수많은 자신을 위로한다.
강철규 작가는 스스로를 쉼이 부족한 사람이라 말한다. 그의 부족한 휴식과 불확실한 미래, 연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은 불면증이라는 병을 낳았다. 평소 사람과 곧잘 어울리지만, 불편한 사람과의 대화가 싫어 혼자 있길 자처한다. 일상 속에서 겪는 고민은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끊이지 않는 고민과 불안은 그를 지치게 했다. 강철규 작가는 일상 속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고민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바로 ‘수면자들’ 시리즈다. ‘수면자들’ 시리즈 <Happiness>는 붉게 물들어 있다. 넥타이 멘 사람들은 일상의 피곤과 스트레스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지친 사람들은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 있기도 하다. 왠지 억지로라도 영원히 눈을 뜨지 않을 것만 같다.
‘수면자들’ 시리즈는 작가 자신이 가진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담았다. 그가 지니고 있던 검은 것들을 응축한 형태다. 불안으로 인한 수면 장애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바람을 그렸다. 하지만 ‘수면자들’은 그의 불안을 해소시키지 못했나 보다. 강철규 작가는 갖은 스트레스를 떠안고 버티기 힘들어 스스로 그림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니 숲으로 뛰어들었다.
“부족한 휴식을 그림 속에서 찾으려 했어요. 그래서 작품 속 인물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냈죠. 이 시리즈가 ‘수면자들’ 시리즈예요. 제가 갈구한 휴식을 그림 속 인물이 대신해 주는 거죠. ‘수면자들’ 시리즈는 그리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 편안할 수 있도록 초록색을 많이 썼어요. ‘수면자들’의 색감 대부분은 회색, 붉은색이고 작품 속 인물들이 회사 안에 갇혀 있는 그림이 많아요. 자극적인 색감이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끌 수는 있지만, 오래 보기는 힘들죠. 그래서 녹색을 많이 쓰고, 인물들의 포즈도 최대한 루즈하게 그렸어요. 마음의 쉼표를 두기 위한 요소인 거죠.”
그의 생각처럼 ‘수면자들’ 시리즈는 보는 사람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가장 주목을 끈 시리즈였다. 하지만 짙은 녹음에 뛰어든 강철규 작가는 지속적인 안정을 얻지 못했다. 자연이 주는 안정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또 다시 방황했다. ‘수면자들’ 시리즈 작업을 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휴식을 취했지만, 일상 속에 다시 묻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서웠다. 똑같은 작업과 똑같은 쉼은 그를 나태함 속으로 내던졌고, 일상은 지루해지고 대화할 사람이 없어 외로워졌다. 그의 도피처는 외로움으로 뭉그러졌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쉼이 자신을 극단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듯했다. 그래서 시리즈 작업을 빨리 마무리했다.
II happiness. 130.3x162.2cm. oil on canvas 2014
II Mr.Lonely, survive. 45x53cm. oil on canvas 2016
빠르게 외로움의 숲에서 벗어난 강철규 작가는 다음 시리즈로 ‘생존자들’을 그렸다. 극에 달한 외로움이 자신을 죽일 거라 생각해 살아남고자 시작한 시리즈다.
“도피처에서의 생활은 도피가 아닌 일상으로 전락해 버렸어요. 진짜로 바라 왔던 것이 계속해서 무너지고 묻혀 가는 게 혼란스러웠어요. 자연에서 쉬는 것도 나 스스로를 충족하지 못하면 더 이상 무엇을 더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원했던 건 편안함과 마음속 안락함이었지, 외로움은 아니었으니까요. 외로워지려고 녹색을 쓰고 자연을 찾은 게 아니라 단지 편안하고 싶어 자연을 찾은 건데, 그것마저도 저를 외롭게 만들었죠.”
‘생존자들’ 시리즈는 그의 현실과 작품 세계의 과도기였다. 강철규 작가가 그토록 찾던 것이 진짜가 아닌 순간 그는 방황했다. 그의 방황은 ‘생존자들’ 시리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생존자들’ 시리즈에 나오는 인물들은 점점 사람의 형태를 벗어났다. 밝은 빛을 뿜어내는 듯한 모습으로 머리도 옷도 없이 형태만 남았다. 일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코다마’라는 캐릭터와 비슷하다. 그는 이 인물들을 영혼 또는 마음이라 표현한다. 거추장스러운 것은 다 떼어 내니 원형만 남았다. 테크닉에 집중하지 않고 강철규 작가가 생각한 날것 그대로를 전달하고 싶어 그렸다. 이 인물은 그의 방황이 절정에 달하면 나타난다.
수많은 ‘생존자들’과 함께 몇 차례의 방황 끝에 강철규 작가는 ‘공유자들’ 시리즈로 넘어온다. 이제 방황하지 않고 완전한 자연도, 일상도 아닌 그 사이 중립적인 위치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가 생각하는 작가로서의 위치는 ‘이도 저도 아닌’ 그 어디쯤이다. 일상과 자연, 이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며 중립적인 위치에서 관객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휴식을 제공하고자 했다. ‘방랑자들’ 시리즈에서 자신의 휴식에 집중했다면, ‘공유자들’ 시리즈에서는 타인의 쉼에 집중한 것이다. 그는 비로소 그림 속에서 벗어났다. ‘공유자들’ 작품을 보면 전에 없던 온기가 묻어 있다.
“더는 혼자 있는 그림은 그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누군가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공유자들’ 시리즈의 마지막 그림은 연인이 나오는데, 아마 이와 비슷하게 작품을 이어 가지 않을까 해요. 외로움은 그냥 추억하는 것에서 끝내고 앨범처럼 꽂아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네 개의 시리즈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어요. 글을 쓰면서 크게 느꼈던 게 제가 바라던 것은 사람들의 온기였고, 특히나 연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편안함이었던 거죠. 자라면서 쌓아온 관계가 어느 순간 무너지는 것이 그림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흔히 사람들은 연애소설, 연인을 주제로 한 그림을 유치하다고 치부하지만 인생에서 연인과의 관계는 분명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저도 잘 몰랐던 때라 여태까지 외로움을 그림에 퍼부었는데 글을 쓰니까 생각이 확실해졌죠. 다음 시리즈 작업은 내가 관찰하는 사람,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어요.”
II Hippie(처녀작). 45x53cm. oil on canvas 2016.
II 영원 속에(공유자들 처녀작). 45.5x53.0cm. oil on canvas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