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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8호]나와 맞닿은, 루앙프라방의 숨결을 느끼다
라오스에 사는 한 선생님이 말했다.
“라오스의 단 한 도시만 여행해야 한다면 루앙프라방, 루앙프라방에서 단 한 곳만 봐야 한다면 꽝시폭포죠.”
그 선생님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꽝시폭포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에메랄드빛 계곡이 켜켜이 내려오는 신비한 광경은 여행자들이 반하기에 충분하다.
11월의 어느 아침, 나는 또다시 꽝시폭포로 향했다. 사실 올해 들어 루앙프라방은 통영에 계신 우리 부모님 집보다 자주 온 도시다. 친구들은 매번 가는 데가 뭐 재밌냐고 하지만 노우~ 매번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깜짝 선물을 안겨 주는 곳이 바로 루앙프라방이다. 왜 갑자기 내 글이 꽝시폭포로 향하다가 돌연 지루함을 이야기했냐면, 오늘 나는, 또, 매달 오는 루앙프라방에서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행자들과 함께 꽝시폭포로 향하는 숲길로 들어섰다. 여행자 중 한 분이 선암사에서 맨발로 거닐었던 것이 참 좋았는데 이제는 자갈길로 정비해 더는 맨발로 걸을 수 없다며 여기 흙길 산책로를 맨발로 걸어 보자고 하신다. 나도 그 말을 따라 신발을 벗었다. 와… 발에 닿는 찹찹한 감촉이 너무 좋다. 많은 사람이 밟은 산책로의 흙길은 단단하고 만질만질하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걸음으로 곱게 다져진 길이다. 발을 통해 전해져 오는 숲속 기운 덕분인지 일순간 여행 인솔 업무와 한국에 남겨 놓은 일들로 해무가 낀 것 같던 머릿속이 싹 정리되었다. 내가 걷는 걸음에 집중하고, 흙바닥의 감촉을 느끼다 보니 머릿속의 복잡함은 온데간데없다. 온 생각을 제쳐 두고 산책을 오롯이 즐겼다. 발이 직접 땅에 닿으니 감촉만 신선한 것이 아니라 시야도 달라졌다.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흙바닥에 드러난 나무 뿌리를 넘어가는 개미, 산책로 귀퉁이에서 쉬고 있는 도마뱀, 나무 계단 사이에 핀 이름 모를 빨간 꽃까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햇빛에 비친 나뭇잎사귀들이 살아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푸르르다. 여행 감수성을 가득 채워 주는 꽝시폭포를 사랑한다
II 꽝시폭포 여행자들의 신발
몇 개월 전부터 벼르던 ‘카이판’이라는 식당을 오늘 드디어 방문했다. 여행지에서 한끼 식사는 쓰린 위를 달래는 차원을 넘는다. 여행을 온몸으로 음미하는 일이다. 식재료를 통해 그 동네에서 무엇이 나는지 알 수 있고, 식기와 조리 방법을 통해서도 그 나라의 날씨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카이판’은 루앙프라방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메콩 강가에서 채취한 민물 미역을 김처럼 얇게 펴 만든다. 보통 참깨를 뿌려 심심한 맛을 보충하는데 ‘째우’라는 라오스식 쌈장에 찍어 먹는다. 이 루앙프라방 대표 음식을 식당 이름으로 내건 이곳은 프
랜즈인터내셔널이라는 비영리단체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요리학교를 운영하는 곳으로 실습생들이 요리와 서빙을 하는 기회의 장이다. ‘TREE’라는 브랜드를 공유하여 프놈펜, 시엡립, 비엔티엔에서 도 식당 이름을 달리하여 운영한다.
꽝시폭포에서 한껏 여유를 즐긴 우리 일행은 루앙프라방 구시가지로 오는 동안 허기가 심해졌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거침없이 음식을 시킨 우리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자세히 보니 벽 곳곳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 액자가 걸려 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캄보디아에 있는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식당 한 켠에는 작은 기념품도 판매한다. 서빙을 하는 사람들이 입은 티셔츠에는 ‘Teacher’, ‘Student’라는 단어가 찍혀 있다. ‘Teacher’라는 단어가 찍힌 티셔츠를 입은 점원에게 요리 선생님이시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식당을 둘러보며 함께 온 사람들과 수다를 떠니 얼마지 않아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오~ 분위기도 좋고, 이들이 하는 활동도 마음에 들어 이것만으로 계속 오고 싶은 곳인데 맛도 훌륭하다. 그린 파파야 샐러드는 여행자들의 입맛에 맞게 매운기를 덜어냈고, 레드치킨커리는 부담스럽지 않은 부드러운 맛이다. 바게트에 버펄로 스테이크와 각종 채소를 넣은 샌드위치는 한입 베어 물자마자 재료의 신선함이 느껴진다. 소스와 신선한 야채의 조화가 입안을 즐겁게 한다. 카이판에서 맛과 의미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우리는 풍요로워진 마음으로 루앙프라방의 다음보물을 찾아 떠났다.
II 카이판 식당 한 켠에 공정무역 제품들도 판매한다
11월 10일 루앙프라방을 여행하는 모든 자는 오후 5시 2분 푸시 전망대에 모였다
루앙프라방은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라오스에서 내로라하는 관광지이지만 세계문화유산 지구로 지정되어 높은 빌딩이 없다. 그 덕에 도시 어디를 거닐든 햇살을 마음껏 받을 수 있다. 루앙프라방에서 도시의 전망을 볼라치면 푸시에 올라야 한다. 그래서 푸시 전망대라고도 한다. 푸시는 신성한 산이라는 뜻이다. 전망대 바로 옆에는 탓 쫌시라는 불탑이 있다. 쫌시를 받치고 있는 바위 군데군데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놓은 초 자국이 있다. 높은 곳에 올라 소원을 빌면 신이 더 잘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에서일까. 사실 말이 좋아 산이고 전망대지 300여 계단을 오르면 정상에 닿는다. 느린 걸음으로는 15분쯤 걸린다. ‘얼마나 올라야 해?’하며 숨이 가빠 오를 즈음 정상에 도착해서 ‘응? 벌써?’라는 싱거운기분이 든다. 이 또한 루앙프라방소박한 매력이다.
여러 번 푸시에 올랐지만 일몰 시간에 맞춰 간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여유를 부리며 감상하고자 일몰 한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망대 벤치는 만석이고 탓 쫌시를 받친 바위와 계단에도 사람들이 다닥다닥 앉아 있다.
사람들의 엉덩이 사이에 도도하게 앉아 있는 두 마리 고양이는 사람들을 귀찮아하는 것처럼 심드렁한 얼굴인데 표정과 다르게 사람들을 떠나지 않는다. 나도 탓 쫌시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 왼쪽에는 과일 셰이크를 나눠 마시며 일몰을 기다리는 프랑스인 노부부가 자리를 잡았고 오른쪽에는 젊은 일본인 아가씨 두 명이 앉았다. 일몰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사람이 많아진다. 루앙프라방 야시장보다 더 북적인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여행자들을 보는데 순간 웃음이 터졌다. 옆에 앉은 노부부에게 말을 건넸다. “루앙프라방에 온 모든 여행자가 여기에 온 것 같죠?” “하하, 네 그렇네요. 정말.”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지는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루앙프라방을 둘러싼 칸 강과 메콩 강이 반짝인다. 산 너머로 넘어가는 해는 대단한 빛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고요한 울림을 준다. 그 아름다움을 보러 이곳에 오른 여행자들에게 왠지 모를 애정이 생긴다. 루앙프라방만의 감성을 알아챈 여행자들이 귀하게 여겨진다. 대단히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자들의 필요를 딱딱 맞춰 주지도 않지만 라오스 사람들의 여유를 따라 나만의 속도를 찾을 수 있는 도시. 삶을 살며 나는 온데간데없고 사람들의 요구만 남은 순간에 위로받을 기억이 생겼다
II 푸시 전망대 일몰을 보러 온 여행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