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8호] 너와 나의 거리, 당신과 책의 거리 _가까운 책방

너와 나의 거리
당신과 책의 거리
가까운 책방 
하교 시간이면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뒤섞이는 대전여중 앞, 오랜 시간 문구점이었던 소박한 공간에 책방이 들어섰다. 대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래픽노블 전문점이다.
책과 독자의 적당한 거리에 놓여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적당한 거리가 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이 거리는 점점 줄어든다. 적당한 거리는 서로의 존재를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하고, 때로는 이 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가까운 책방’을 운영하는
김신일 대표는 책과 독자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친 일상에서 위로받고 숨통을 틀 수 있는 적당한 거리, 그 거리가 담긴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서점에 ‘가까운 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난 11월 8일 가까운 서점이 문을 열기까지,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났다. 지인을 만나기 위해 대흥동에 들른 김신일 대표는 우연히 대전여중 앞을 지나가다 비어 있는 지금의 공간을 발견했다. 책을 좋아하는 누구나 편하게 들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터라 한눈에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흥동이 문화예술의 중심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어 지금의 공간에 자리를 마련했다.
“그래픽노블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요. 책을 보고 단순히 만화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죠. 모든 장르가 마찬가지지만 그래픽노블은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여전히 만화는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다양한 그래픽노블 서적을 통해 이런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그래픽노블 서적이 한정적이라는 점도 가까운 책방을 열게 된 이유였다. 김신일 대표는 여러 서점을 방문하면서 하나의 예술 문학으로 인정받는 그래픽노블이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하다는 걸 알게 됐다. 제법 규모가 큰 대형 서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분명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디자인이 만나, 눈길을 사로잡는 책을 더 많은 사람에 게 알려 주고 싶어 그래픽노블 전문점을 열었습니다.”

책이 가진 힘을 그래픽노블로 전달하다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김신일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이 책을 한 권 꺼내 든다. 책의 줄거리부터 자신이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이 책을 통해 어떤 생각을 전달하고 싶은지까지 책 한 권에 담긴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그렇게 추천하는 책이 한 권에서 두 권이 되고, 금세 두 권이 네댓 권이 됐다.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작품으로 공간을 메우는 만큼 책 한 권에 담긴 의미도 크다. 김신일 대표는 오랫동안 사뿐히 책장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어요. 지금은 다양한 만화 전문 잡지가 있지만 학창 시절에는 다양한 문학 장르가 담긴 어린이 잡지 중 일부에 만화가 담겨 있는 게 전부였죠.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쯤, 《보물섬》이라는 만화전문잡지가 등장했는데 당시에는 꽤 신선했어요.”
만화와 함께 유년기를 보냈던 김신일 대표가 그래픽노블에 애정에 쏟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000년대 후반, 처음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를 접하면서 어른을 위한 만화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편의 소설처럼 세계관이 담겨 있고, 삶이 이어지는 그래픽노블을 접하면서 만화는 하나의 매개체일 뿐 어떤 이야기를 담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다른 이야기를 가진 등장인물을 통해 역설적이게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공감하는 순간, 책이 가진 이런 힘을 그래픽노블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
“많은 소설이나 드라마가 영화로 제작됩니다. 이야기에 감동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죠. 만화도 다르지 않습니다. 감동하고 공감하게 되죠. 만화라는 매체의 편견을 버리고 많은 독자가 다양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숨겨진 즐거움을 찾는 매개체가 되다  

김신일 대표에게 그래픽노블은 책을 넘어 하나의 애장품이다. “아름다운 게 좋잖아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김신일 대표는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백치》에 남긴 ‘아름다운 것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구절에 깊이 공감한다.
그의 말처럼 가까운 책방에는 아름다운 소품도 가득하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풍기는 눈이 쌓인 작은 성부터 트리, 고흐의 얼굴이 담긴 에코백까지, 공간을 두르고 있는 벽장 곳곳에 놓인 소품 모두 그가 직접 선별한 물건이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덕인지 길을 지나가던 학부모와 선생님도 종종 책방에 들려 공간을 둘러보곤 한다.
김신일 대표의 바람은 가까운 책방이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최근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독서모임이 부쩍 늘어났다. 대형 출판사와 일부 인기 작가가 이런 호황의 혜택을 누렸지만, 출판시장 전면에 큰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김신일 대표는 인기 있는 일부 베스트셀러 책이 아닌 더 다양한 책이 독자를 만나고, 그 만남의 매개체가 가까운 책방이 되길 바란다. 책이 예뻐 우연히 들어왔다가 이야기를 읽게 되고, 숨겨져 있던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알려 주고 싶다.
또 다른 바람은 겨울방학을 맞아 청소년 독서모임을 여는 것이다. 공간에 맞게 소규모로 책을 읽고 아이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다.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닌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을 함께 읽고 나누고 싶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라면 어떤 책이든 좋다.
하교 종소리가 울리고, 학생 몇몇이 서점 앞으로 모여들었다. 선뜻 가까운 서점에 들어선 아이들과 열린 문틈 사이로 한 발을 내디딘 채 서 있는 아이,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밖에 서서 서점 안에 있는 친구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수업 후의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신일 대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글 사진 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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