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8호] 산내 사람들 집너머 왔으니

대전여지도 116
산내 사람들 집너머 왔으니​
대전광역시 동구 판암1동 집너머 
짙은 파랑과 연한 하늘색이 격자무늬를 이룬 동구청사는 담을 넘는 구렁이처럼 보인다. 오래전부터 그곳에 서 있기보다는 크게 꿈틀거리다가 조금 전에 멈춘 것 같은 모습이다. 이곳에 동구청사가 신축 이전한 때는 2012년. 방금 멈췄다고 하기엔 제법 오랜 시간 서 있는 중이다. 판암동 집너머로 향하는 길, 멀리서부터 동구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오동의 아파트 단지들과 학교를 지나 판암동 쪽으로 향하다 보면 어느새 신도심의 모습은 사라진다. 그리고 낮은 지붕에 하늘을 고스란히 이고 있는 주택과 골목길이,  몇 안 되는 감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들이 도심의 풍경을 바꾼다. 이곳의 이름은 집너머다.
아파트 단지 밑 조용히 이어지는 마을

철도를 따라 길게 형성된 마을. 집너머의 첫인상은 멀리 지나는 기차 소리가 만들어 주었다. 가오동과 마주한 판암1동 집너머의 북쪽으로 경부선 일반철도와 고속철도가 이어진다. 이곳으로 기차가 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음벽 때문인지 보는 것보다 소리가 더 멀게 느껴진다. 슉, 하고 한 번에 막힘 없이 흐르는 기차 소리는 집너머에 약간의 생동감을 불어넣는 신호다. 
마을은 조용했다. 오고 가는 사람 하나 없는 자리를 까치나 까마귀가 제 울음으로 채운다. 걸음을 옮겨 몇 집을 지나니 붉은 벽돌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집너머마을회관이라고 쓰인 목간판과 무더위 쉼터임을 알리는 노란 판넬 사이, 건물로 들어가는 문은 미닫이다. 유리창에는 ‘10월 19일 경로당 뒤편으로 이전했음. 뒷집으로 오세요’라고 누군가가 말끔한 정자체로 알림말을 써 놓았다. 문장을 마치고도 아쉬웠는지 마침표 옆으로 웃는 표정을 그려 두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약도도 그렸다.
새로 지은 경로당은 약도를 보지 않고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난 10월 26일에 개소식을 했는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개소식을 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구태여 현수막을 떼어 내지 않았다. 잔칫날 같았을 그날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넓은 마당 한 켠의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 이는 올해 아흔다섯 김순예 할머니다. 집너머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열아홉 살에 시집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래서 할머니는 자신을 이 마을 본토배기라고 소개한다. 잠깐씩 다른 지역에서 살기도 했지만 또다시 집너머로 돌아오고 돌아오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경로당 안으로 들어가는 김순예 할머니를 조용히 따랐다. 먼저 와 뜨신 바닥에 누워 간간이 이야기를 나누던 두 할머니가 알은체를 한다. 올해 여든다섯, 아흔둘, 이제는 마을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그 전의 시간보다 더 길다. 할머니들은 아침, 점심을 차려 먹​고 느지막이 경로당에 나올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 어디 어디가 안 좋다고는 하지만 이만큼 건강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건강하긴 한데 눈이 어둬. 여기 경로당에서 내가 나이가 가장 많지.”
“경로당에서만 많아? 동네에서도 고참이지. 동네에서 아흔다섯 먹은 사람 없어.”
김순예 할머니의 말을 자르고 불쑥 끼어드는 할머니는 여든다섯 이양자 할머니다. 열 살 차이가 나지만, 이제는 10년 세월의 무게는 별것도 아닌지 서로 티격태격 막역한 친구처럼 지낸다.​

II 멀리 식장산 자락이 보인다​

누구보다 산감이 무서웠던 시절, 집너머 오다

집너머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45년 광복을 전후로 마을이 형성됐으니 7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셈이다. 김순예 할머니의 남편, 20년 전쯤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는 했으나 정확히는 집너머가 아닌 근처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짝은 대전시고 저짝은 산내면이었어. 이짝은 배급을 주고 저짝은 안 줘서 배급 타려고 8·15 때 집을 뜯어 와서 이사했어. 그래서 집너머야. 원래 여기가 산이었는데 해방 전에 마을이 생겼어.”
6·25전쟁 때 시집을 왔다는 이양자 할머니가 집너머의 유래에 관해 이야기한다. 시어머니, 시아버지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다. 마을이 처음 생길 때만 해도 사람들은 산 밑에 초가집을 짓고 모여 살았다. 그때 모인 사람 대부분이 여태껏 한마을에서 산다.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면서 어렵게 살았던 시절이다. 도랑에서 빨래를 하고 우물물을 퍼다 마셨다. 해가 지면 촛불에 의지해 살다가 40년 전쯤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 초가집도 슬라브집으로 모습을 바꿨다.
“가난했지. 죽 끓여 먹고. 고생들 많이 했어. 지금은 세월이 이러니 낫지. 산에 가서 나무 해다 팔다가 산감한테 들키기도 하고 그랬어. 토막나무를 가지고 오다가 산감한테 들켰는데 작은애가 했다고 해서 저녁 5시까지 조사를 받았어. 지가 했다고 그러대. 산감이 ‘엄마가 그랬지?’ 해도 ‘아니유’ 하면서. 해전 조사받았지.”
각자의 경험은 다르지만, 모두가 가난했다는 건 같았다. 그런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 마을 사람 모두가 한 식구처럼 돈독하다. 2000년대, 근처 가오동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동안, 집너머에는, 집을 뜯어 이고지고 삶의 본거지를 옮겨 마을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오래도록 살고 있었다.

II 지붕 뒤 감나무 너머로 SRT가 지나간다​

멀리로 기차가 지나는 집너머의 하루 

“그 전엔 기차가 없었는데 건민 아버지가 노가다 들어가서 길을 논 거여. 건민 아버지가 괴산서 형수 밑에서 살다가 도망 나와서 노가다 들어갔다지. 자기가 이리로 장가올 줄 알았으면 여기에 길을 안 놨다는 거지. 건민 아버지 총각 적이었으니까. 그 양반이 살았으면 백몇 살이여. 그러니까 기찻길이 생긴 지 80년쯤 됐을 거여. 그 전에는 기차가 얼마나 시끄러웠다고. 쿠카쿠카 연기도 나고 달려드는 것 같았지. 기차에 깔려 죽은 사람도 많았어.”
이양자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건민 아버지는 할머니 사촌 시누의 남편이다. 마을 앞으로 지나는 경부선은, 1905년 개통됐고 1939년 경부선이 복선화됐다. 할머니 이야기와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건민 아버지는 복선화 공사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판암동 일대에는 경부선 일반철도와 고속철도가 지난다. 과거 증기기관차가 냈던 소리와 내뿜는 연기에 비하면 지금의 기차는 “당기는 것도 몰라”라고 할 만큼 조용하고 깔끔하다.
“형님, 나도 같이 늙어 가.”
시간이 지나며 할머니들이 하나둘 경로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몸이 불편한지, 한 할머니가 앓는 소리를 하며 인사한다. 형님이라는 말은, 그저 나이 많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 아닌 친족 호칭이다.
“경주 최씨 집안 형님이여. 형님은 아흔둘이고 나는 여든셋인데, 젊을 때는 내가 젊었거든. 이제는 같이 늙어가.”
경주 최씨 이야기에 경로당이 일순 술렁인다. 집너머는 경주 최씨 집성촌이라고 할 만큼 최씨들이 모여 살았다. 경로당에 모인 할머니 중 몇을 제외하고는 경주 최씨 집안 며느리로 일생을 살았다.
“나는 최씨 하라고 해도 안 해.”
“여태 자식 낳고 잘 살고 왜들 그런대.”
“며느리는 최씨 족보에 올라가 있어. 걱정 마. 딸은 안 올라가도 며느리는 올라가. 며느리가 더 좋은 거네. 사우는 올라가도 딸은 안 올라가.”
“며느리가 무슨 최가여?”
“최가 물 먹고 살았잖아.”
이야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최씨 집안 며느리는 최씨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벌어진 작은 실랑이였다. 큰소리도 몇 번 오갔는데, 이내 호탕한 웃음이 경로당을 채웠다.
“최씨 며느리들끼리 싸우는 겨? 이기는 편 우리 편.”
언제 서로 아웅다웅했냐는 듯, 어느샌가 바닥엔 화투판이 깔린다. 하나로는 부족해 두 개를 깔았는데도 몇 사람은 끼지 못하고 구경할 수밖에 없다. 저쪽 말소리가 큰 것 같으면 이쪽에서 지지
않겠다는 듯 “시끄러워. 떠들지 마” 하고 소리친다.
“아니, 안 떠들 거면 경로당에 왜 나오는 겨? 떠들고 놀려고 나오지.”
몇십 년 전, 산내에서, 근처 오리울에서 집을 뜯어 이곳으로 와 집너머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자식들이 이제는 집너머를 오랜 터전으로 알고 살아간다. 참 호강들 한다고. 따뜻한 장판에서 고구마도 먹고 커피도 마신다고. 교회
에서 담가 준 김치가 맛있으니 저녁에 먹자고, 옛날 어른들은 이런 꼴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고,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저 멀리에서는 몇 번이고 기차가 지나갔을 것이다. 이제는 당연한, 집너머의 일상이다.

II 마을 곳곳에 아이들의 흔적이 보이는 듯도 하다​

글 성수진 사진 성수진,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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