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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8호]가치 있는 가짜를 만듭니다
빈티지공방 Vintage Wood 26 운영자 유현
2015년 11월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스였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그저 둥글게 잘 지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두 번째 이유는 그냥 내 것이 갖고 싶었다. 내가 일하던 회사는 젊은 사장이 운영하고 있었다.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사람이 벌써 자기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부러웠다. 나도 내 가게를 차려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욕심이 생겼다. 그 막연한 욕심만으로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처음에는 노점상을 했어. 뭐 별다른 이유는 없었지. 그냥 장사를 하자 생각했고, 마침 아버지가 쓰시는 트럭도 있어서 초기 자본도 많이 들지 않겠다 싶었어. 망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어. 종류도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팔릴 만하겠다 싶은 건 다 떼다가 트럭에 싣고 축제며 행사며, 그냥 다 돌아다니면서 팔았던 거 같아. 처음에는 그냥 시작한 건데, 생각보다 괜찮았어. 뭐, 몇 번 쫓겨나기도 했지. 사람들 보기에 안 좋으니까. 그렇게 두 달 정도 했어. 그런데 어느 날엔가 이러다 갑자기 큰일이라도 나면 한순간에 끝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안정적인 일을 해 보자고 생각을 바꿨지. 그래서 평소에 좋아했던 가구와 소품 제작을 해 보기로 했어.”
평소 빈티지 소품과 가구에 관심도 많았다. 카페를 가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곳곳에 놓인 가구와 소품이었다. 일부러 빈티지 느낌의 카페를 찾아가기도 했다. 기술을 배우고자 생각했을 때 떠오른 건 목공이었다. 평소 관심 있던 것이었기에 재밌게 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일단 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가구 제작 수업을 등록했다. 세 달 정도 수업을 들었다. 초반에는 제작에 쓰이는 도구와 기초적인 것을 배웠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어서 지루했지만, 아는 것도 다시 차근차근 배우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들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가구 제작 수업에 들어갔을 때 수업을 그만 듣기로 했다. 가르치는 선생님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남들과 똑같은 가구를 만들기는 싫었다. 수업을 그만두고 어릴 적 살던 집을 작업실로 만들어 간단한 소품 제작부터 시작했다. 혼자 하나하나 배워 가며 조금씩 만들어 나갔다.
“조금씩 만들어서 몇 개 없는 가구랑 소품을 들고 플리마켓에 나갔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여 주는 자리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창피해. 엄청 서툰 게 보이니까 어떻게 그걸 사람들한테 보여 줬나 싶어. 그래도 그때 플리마켓 참여한 게 나한테는 진짜 좋은 경험이었어. 플리마켓에서 만난 작업하는 친구들하고 친해져서 지원 사업이나 활동에 대한 조언을 많이 받았거든.”
시간에 시간을 덧입히는 과정
사실 어찌 보면 빈티지 가구와 소품을 만든다는 것은 가짜를 만드는 작업이다. 빈티지는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이 시간의 때를 입어 더욱 가치를 발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시간의 때를 입은 ‘가치 있는 가짜’를 만드는 셈이다.
“빈티지 가구의 매력은 유행을 안 타는 거라고 생각해. 유행을 안 탄다는 말이 상품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가치가 있어서 더 특별해 보인다는 거지. 일반 가구도 좋아. 깔끔하고 예쁜 것도 많고. 그런데 빈티지 가구는 오랜 시간 가치를 쌓아 온 거잖아. 그런 시간의 가치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거지.”
빈티지 가구를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빈티지 가구는 시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단시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기존에 빈티지한 느낌을 내는 가구들이 나와 있다. 하지만 그 가구들 역시 새 나무로 만들어져 생김새만 비슷해 이질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나무를 쓰기로 했다. 가구로 만들어 오랫동안 사용해, 시간의 때가 묻은 나무 말이다.
“요새는 사람들이 가구를 쉽게 버리잖아. 유행이 지나면 금방 새로운 가구를 사고 기존 가구는 버리는 거지. 그럼 나는 그걸 고물상이나 폐기물처리장 같은 곳에서 가져와. 사장님들도 되게 좋아하셔. 폐가구나 폐목재는 처리가 어렵거든. 많이 만드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재활용도 되는 거니 일석이조지.”
폐목재를 사용해 가구와 소품을 만드는 과정은 꽤나 번거로웠다. 페인트칠을 해도 원하는 색이 입혀지지 않아 몇 번의 반복 작업을 해야 했다. 적게는 두 번에서 많게는 여덟 번 정도 칠하고 벗겨 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래도 이 번거로운 작업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미 가구로 몇 년의 시간을 보낸 나무에 나의 시간을 덧입히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전문적이지 않았고 내 방식대로 작업했기에 시간은 배로 걸렸다. 그래도 나만의 방식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재밌는 결과물도 나왔다. 평소 영화를 보며 아이디어를 얻거나 순간 떠오르는 것을 모두 수첩에 빼곡히 그려 채워 넣었다. 기존에 비슷한 것이 있으면 내 색깔을 입혀 새롭게 디자인하거나, 그렇지 못한 것들은 포기했다. 매일 같이 공방에 출근해 작업하고 다양한 지원 사업으로 공방 운영을 이어 갔다. 그러다 올해, 생각만 해 오던 핸드메이드 페어에 나갔다.
“같이 지원 사업을 진행하던 친구들하고 핸드메이드 페어를 나갔지. 그런데 진짜 신세계였어. 더 눈에 띌 기회가 생긴 것도 있고, 방문하는 사람들의 반응 자체가 너무 좋았어. 플리마켓에서 사람들의 시선이나 반응이 엄청 좋지는 않았거든. 다들 비싸다면서 소품 구매하는 것도 망설이고. 뭔가 공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 특히 좋았던 건, 바이어나 MD를 직접 만난 거였어. 그 사람들 눈에 내 소품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여러 곳에서 입점 제의도 들어 왔어. 무작정 시작한 일인데, 생각보다 너무 잘 풀리는 것 같아.”
입점 제의가 들어온 곳 중 나와 맞는 곳을 신중히 선택해 입점을 준비 중이다. 공방을 운영하면서 지원 사업에 계속 의지해 왔다. 주변에 작업하는 친구들 역시 국가 지원 없이는 운영이 어렵고, 지원이 끊기면 바로 공방 운영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도 벌어졌다. 입점을 준비하는 것도 지원 사업에 얽매이지 않고 자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물론 내 소품과 가구가 잘 팔리면 더없이 좋겠지만, 이미 안정적인 일을 박차고 나왔기에 안정을 바라는 건 욕심이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운영이 어려워 그만두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