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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8호]시민이 만든 아주 작은 무형의 도서관
_2017북인돗토리
지난 10월 29일, 돗토리현립도서관 세미나실에서 제30회 지역출판문화공로상 시상식 및 수상 기념 강연회가 열렸다. 돗토리 시에 자리한 돗토리현립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렸다. 도서관 입구가 아닌 돗토리현립도서관 직원이 일하는 도서선정실 쪽 통로로 들어서자 소독약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도서를 소독하느라 나는 냄새였다.
도서관에서 사이토 아키히코 심사위원장과 고타니 히로시 실행위원장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전 돗토리현립도서관 관장이었던 사이토 아키히코 씨 안내로 돗토리현립도서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1층 일반도서실과 어린이도서실, 2층 향토자료실과 환일본해교류실 그리고 지하서고까지 살펴봤다. 1층 로비에 재미있는 전단이 눈에 띄었는데 그중 하나를 들어 사이토 씨가 설명해 주었다. ‘이혼’이라 적힌 전단에는 이혼과 관련한 도서 위치와 상담이 가능한 관련 단체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돗토리현립도서관은 법률정보서비스, 의료·건강정보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도서관 네트워크를 강화해 시, 촌에 있는 학교나 마을도서관에 테마 별 도서를 모아서 플라스틱 박스에 담아 보내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도서관 직원은 모두 마흔여섯 명입니다. 잡지 이외의 도서는 110만 권으로 30만 권은 열람실에, 80만 권은 서고에 있습니다. 1년 자료비가 약 1억 엔입니다. 이는 전국에서 네 번째로 많은 금액입니다. 작년에 도서관인이 선정하는 도서관상 ‘라이브러리 오브 더 이어’를 돗토리현립도서관에서 수상했습니다. 현의 지사나 다른 분들이 도서관 활동을 인정하고 있어 예산 유지가 가능합니다.”
사이토 씨의 목소리에서 자부심이 묻어난다. 전국에서 인구가 가작 작은 현에서, 자료 구입비를 10억 원 가까이 쓴다는 건 놀라운 수치였다. 물론 비용으로만 따질 수는 없지만 현에서 그만큼 도서관을 중요시한다는 반증이다.
중국어, 한국어, 러시아어로 된 여러 분야의 도서를 비치한 환일본해교류실에서 배우 박신혜의 얼굴이 표지에 나와 있는 책이 눈에 띈다. 이외에도 각 나라의 관광정보를 알 수 있는 리플릿 등을 놓아두었다. 일반도서실에서 인상적인 곳은 ‘투병기’ 코너였다. 다양한 투병기를 한자리에 모아 병과 관련한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코너 한쪽에는 가발 업체의 리플릿과 샘플 가발이 놓여 있었다. 모든 정보를 한자리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도서실 한쪽에 2017북인돗토리에 출품한 지역출판물을 전시 중이었다. 마침 30주년을 맞아 역대 수상 도서도 함께 전시했다. 2016년 도쿄 23구와 돗토리 현을 제외한 지역에서 발행한 지역출판물을 10월 24일부터 10월 30일까지 전시했고 이 기간 동안 시민의 투표도 이루어진다. 이번에 전시한 도서 가운데, 지역의 추천위원 투표와 시민 투표로 10여 종이 내년 31회 지방출판문화공로상 후보작으로 오를 예정이다.
도서를 진열대에 지역별로 가지런히 놓았다. 그동안 보았던 도서전에 비하면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어쩌면 이 간결함이 오랜 시간 북인돗토리를 이어 올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 동안 일본 각 지역에서 출판한 300여 종의 도서를 한자리에 모았다. 돗토리현립도서관 방문객은 지난 29년간 해 온 것처럼 올해도 그 책을 살펴보고 투표할 것이다. 이 전시로 지역출판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매년 확인하는 셈이다.
II 셔터가드에 얽힌 일화를 설명 중인 사이토 씨. 도서관 이용객이 정보서비스의 도움을 받아 셔터가드를 개발했다고 한다
“1987년 당시 돗토리는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마을도서관이 없었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상적인 도서관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마을에 도서관이 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도 사서가 있습니다. 지역출판문화공로상 수상을 시작해 매년 수상식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돗토리는 30회가 되었고 한국은 제1회 한국지역도서전을 개최했습니다. 한국지역출판대상도 선정하였습니다. 돗토리에서 영감을 얻어 한국에서도 지역도서전을 개최해 감동입니다. 돗토리는 언론과 출판의 독립을 위해 보조를 받지 않아서 힘들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이 빠지고 있습니다.”
풍성한 체구를 지닌 고타니 히로시 실행위원장의 마지막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제과회사 깃코야(亀甲や)의 사장이기도 한 고타니 씨 인사말로 제30회 지역출판문화공로상 시상식 및 수상 기념 강연회를 시작했다. 고타니 씨는 지난 5월 25일~5월 29일까지 제주에서 열린 제1회 한국지역도서전에 방문해 강연을 했다. 당시 실행위원회의 한 명인 우에다 교코 씨도 동행했는데 고타니 씨의 카스테라 빵 선물은 인기가 대단했다.
일본의 지역도서전 북인돗토리는 1987년 ‘책의 국체(本の国体)-일본의 출판문화전’으로 시작했고, 지역출판문화 공로상은 1988년에 처음 수상자를 선정했다. 북인돗토리는 도쿄 중심의 정보와 출판이 주를 이루는 현실에서 지역자치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스스로 생각하는 시민을 육성하고, 도서관 진흥과 지역출판 진흥 그리고 네트워크 확대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독서운동의 일환이었다. 일본의 출판산업의 80%가 도쿄도에 집중되어 있고 남은 지역 46개 도부현에 약 20%의 출판사가 분산되어 있는 현실에서, 북인돗토리는 지역출판을 응원하기 위해 출판문화전과 지역출판문화 공로상의 수상을 시작한 것이다.
1972년 11월 돗토리 현의 이마이서점 100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시민도서관을 만들고 지역출판물을 키우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시작으로 이마이서점은 시민도서관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에 참가, 1977년에는 돗토리 현 안에서 출판한 서적을 대상으로 우수작품을 선정하는 ‘돗토리 현 출판문화상’을 제정했다. 출판문화상의 주최는 지역이었지만 이마이서점의 제창과 협찬이 시발점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돗토리 현의 시민들은 1987년 전국의 지역출판을 대상으로 북인돗토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난 30년 동안 북인돗토리는 지역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돗토리현립도서관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인구 60만의 작은 현의 도서관에서 전국에서 네 번째 규모로 도서구입비를 지출하고, 민간이 주도하여 정부의 도움 없이 북인돗토리를 꾸릴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정신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한 북인돗토리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지역출판문화공로상으로 장려상 《스시의 역사》, 특별상 《아이누 여성 치사토 유키에의 생애》와 특별상 《군함도의 기록》을 선정했다. 제30회 지역출판문화공로상은 2017년 6월 18일 최종 심사에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20일부터 10월 29일 요나고시립도서관에서 열린 2016북인돗토리에 출품 전시된 전국의 지방 출판물(350종) 가운데서 각 지역의 추천위원 및 일반 방문객 투표로 최종 후보작 10종을 올려 아홉 명의 심사위원이 심사한 결과이다.
II 돗토리현립도서관 내의 2017북인돗토리 지역출판도서 전시 ⓒ박갑철
30년 동안 시민이 지켜 온 지역출판
지방출판문화공로상 표창식 및 수상자 기념 스피치가 있은 후, 기념 심포지엄이 펼쳐졌다. ‘한국에서 펼쳐 가는 Book in Tottori’라고 이름 붙인 1부 시간에 이문학 한국출판학회 회장(인천대 교수)이 〈한국지역 출판의 현황과 의의〉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했고 황풍년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대표(전라도닷컴 대표)가 〈한국지역도서전과 한국지역출판대상에 대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이 모든 사업과 머릿속의 복잡한 아이디어들이 불과 2년 전 북인돗토리를 만나면서 막힌 물꼬를 트듯 쏟아져 흘러왔다는 점이 새삼 믿기지 않습니다. 한국지역도서전은 지역출판사와 지역책의 존재를 강력하게 인식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지역책의 위상 또한 달라지고 있습니다. 고타니 위원장님을 비롯한 여러분들께서도 보람과 기쁨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황풍년 대표는 힘을 실어 연설문을 읽어 갔다. 2015년 10월 지역문화잡지연대(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의 전신), 지역출판 관계자와 한국출판학회 회원들이 북인돗토리를 처음 방문했고, 이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2017한국지역도서전을 제주에서 개최했다.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도서관 밖에서는 내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은 4시가 다 되어갔다. 행사 시작 전,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와 2018한국지역도서전 개최 예정지인 수원시 관계자, 그리고 북인돗토리 실행위원 간의 만남이 있었다. 한일교류전을 하고 싶으며, 북인돗토리 실행위원들을 초청하고 싶다고 한국 측에서 제안하였지만, 실행위원들은 확답하지 못했다.
고타니 히로시, 나가이 노부카즈(이마이서점 회장), 우에다 교코. 북인돗토리의 주축이 되었던 이들은 이제 70대의 노인이 되었다. 북인돗토리의 재원은 모두 실행위원들과 시민의 후원으로만 마련한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협찬으로 꾸리는 독서운동이자 책과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마을만들기 운동이었던 북인돗토리는 이제 세대교체를 할 시기다. 전국적인 출판시장의 감소, 지역출판의 상업화, 젊은 세대의 무관심 등 여러 가지 변화된 환경에 직면했다. 2008년 중단하자는 의견이 한 번 있었고, 현재도 여건이 좋지만은 않다. 그들은 조금 지쳐 보였다.
황풍년 대표는 “여러분들께서도 보람과 기쁨을 가지셔도 좋겠다”고 힘을 실어, 이제 막 태동한 돌맞이 한국지역도서전의 패기를 전하는 말을 하였다. 선배에게 보내는 간절한 응원의 메시지였다.
북인돗토리는 애초에 지역순회전으로 기획했으나, 이를 이어 나갈 지역이 없어 돗토리에서 계속 진행했다.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는 ‘한국지역도서전’을 제주에 이어 수원으로, 지역순회를 추진한다. 조금 다르지만, 북인돗토리가 처음 가졌던 지역순회의 꿈이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지역도서전은 어떤 면에서 북인돗토리와는 다르다. 시민이 주체가 되어 추진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으려는 북인돗토리와 달리 한국지역도서전은 지역에서 단행본과 잡지를 만드는 지역출판사가 주축이 되었고, 각 자치단체의 지원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국을 순회한다. 시민이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지역출판에 먼저 관심을 가져 준다는 점에서 북인돗토리는 매우 부러운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기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지역출판 당사자들이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를 결성하고 그 뜻을 모아 한국지역도서전을 어렵게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독자들의 스토리펀딩, (사)제주출판인연대, 한국출판학회, 제주민예총 등 다양한 이들의 관심과 후원도 더해졌다. 그런 맥락에서 1,000명의 독자들이 응원을 담았다는 의미로 한국지역출판대상에 ‘천인독자상’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지역’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서울 이외의 지역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전체 사회를 어떤 특징으로 나눈 일정한 공간 영역’이라는 사전의 뜻과 같이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중한 삶터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북인돗토리로 일본 사람은 자신의 삶터를 만난다. 그리고 한국지역도서전으로 한국 사람은 자기 지역의 이야기를 만난다. 비록 그것이 ‘도서전’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짧은 시간일지라도, 책에는 그보다 기나긴 시간과 커다란 공간이 담길 것이다. ‘지역출판’이라는 그릇의 실체를 모두가 확인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북인돗토리이자, 한국지역도서전이다. 그렇게 지역의 삶과 문화가 서로에게, 다음 세대에게 흘러간다. 북인돗토리가 이렇게 우리에게 흘러왔듯이.
돗토리현립도서관과 바로 곁에 자리한 현민문화회관 사이의 작은 정원, 그곳에 고인 빗물에 단풍이 떨어졌다. 단풍이 지는 동안 우리는 함께 있었고 그렇게 만나자마자 다시 헤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것만 같았다. 언어가 달라, 서로 읽지 못하지만 그 다름 사이에 놓인 ‘책’이라는 것을 매개로.
북인돗토리는 30년 동안 돗토리의 시민이 만든 아주 작은 무형의 도서관이었다.
II 시상식 후 간담회에서. 왼쪽부터 고타니 히로시, 나가이 노부카즈, 황풍년 ⓒ박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