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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5호]나는 대체 무엇인가?_2
사하촌에서 마곡사에 오르는 길은 계곡물을 오른쪽에 두고 이어진다. 잘 정비한 계곡은 무척 길고 넓다. 잦은 겨울비 때문인지 본래 그런지 물이 제법 많다. 계곡물 건너 큰 덩어리로 자리한 마곡초등학교도 고즈넉하다. 매표소를 지나 조금 걸으면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금을 그어놓은 사찰이 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개 한 마리를 끌고 앞서 걷는 스님과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스님을 만난다. 모두 기존에 보았던 사찰에서는 흔히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경내에 통통거리는 변화를 주며 지루한 풍광을 흔든다.
교구본사답게 사찰은 무척 넓다. 백제 의자왕 3년(서기 643년)에 지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답다. 시간은 늘 그렇게 흔적을 남긴다. 남은 흔적은 때로 ‘무엇’으로 남아 시간을 보여준다. 문화재단지에라도 온 것처럼 검은 기와를 얹은 건물이 여러 채다.
기와는 물에 젖어 제 빛깔을 더욱 무겁게 드러내며 사찰 일대 공기 밀도를 한층 조밀하게 만든다. 마곡사 좌우를 훑어 내려가는 계곡물은 두 곳에서 흘러내려와 사찰 초입에서 합류해 아래로 흘러간다. 해탈을 바라며 해탈문을 지나고 어깨를 움츠린 채 천왕문도 마저 지난다. 극락교를 건너지 않고 바로 옆 명부전을 본다.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을 모신 건물이다. 지장보살은 구원의 상징이며, 시왕은 인간이 죽은 후에 지옥에서 죄의 정도를 가리는 열 명의 왕이다. 우리가 익히 들은 염라대왕은 그중 다섯 번째 왕이란다. 첫 번째 왕도 아닌데 왜 우리는 염라대왕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명부전 뒤에는 산신각이 있다. 산신각은 사찰에서도 더 산에 붙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산신각으로 오르는 길이 짧고 가파르지만 예쁘다. 자물쇠를 풀어 놓은 산신각 문을 열어보니 촛불을 켜두지 않았다. 들어서려다 말고 그냥 마당에 서서 사찰을 내려다본다. 그러기에 좋은 위치다.
산신각으로 올라온 길이 계속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서면 성보박물관 쪽이다. 그곳에서는 계곡물을 건너 대웅보전에 다다를 수 있는 돌다리를 놓았다. 크고 검은 돌을 잘 다듬어 물이 지날 수 있는 적당한 폭을 두었다. 돌다리를 건너면 2층 건물 형태의 대웅보전이 터를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조선 효종 2년(1651년)에 각순대사가 중수한 건물이다. 2층처럼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층고가 높은 단층 건물이다.
교구본사답게 사찰은 무척 넓다. 백제 의자왕 3년(서기 643년)에 지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답다. 시간은 늘 그렇게 흔적을 남긴다. 남은 흔적은 때로 ‘무엇’으로 남아 시간을 보여준다. 문화재단지에라도 온 것처럼 검은 기와를 얹은 건물이 여러 채다.
기와는 물에 젖어 제 빛깔을 더욱 무겁게 드러내며 사찰 일대 공기 밀도를 한층 조밀하게 만든다. 마곡사 좌우를 훑어 내려가는 계곡물은 두 곳에서 흘러내려와 사찰 초입에서 합류해 아래로 흘러간다. 해탈을 바라며 해탈문을 지나고 어깨를 움츠린 채 천왕문도 마저 지난다. 극락교를 건너지 않고 바로 옆 명부전을 본다.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을 모신 건물이다. 지장보살은 구원의 상징이며, 시왕은 인간이 죽은 후에 지옥에서 죄의 정도를 가리는 열 명의 왕이다. 우리가 익히 들은 염라대왕은 그중 다섯 번째 왕이란다. 첫 번째 왕도 아닌데 왜 우리는 염라대왕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명부전 뒤에는 산신각이 있다. 산신각은 사찰에서도 더 산에 붙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산신각으로 오르는 길이 짧고 가파르지만 예쁘다. 자물쇠를 풀어 놓은 산신각 문을 열어보니 촛불을 켜두지 않았다. 들어서려다 말고 그냥 마당에 서서 사찰을 내려다본다. 그러기에 좋은 위치다.
산신각으로 올라온 길이 계속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서면 성보박물관 쪽이다. 그곳에서는 계곡물을 건너 대웅보전에 다다를 수 있는 돌다리를 놓았다. 크고 검은 돌을 잘 다듬어 물이 지날 수 있는 적당한 폭을 두었다. 돌다리를 건너면 2층 건물 형태의 대웅보전이 터를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조선 효종 2년(1651년)에 각순대사가 중수한 건물이다. 2층처럼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층고가 높은 단층 건물이다.
사찰의 중심 건물이라 할 대웅보전에 들어설 때는 가운데 문을 이용할 수 없다. 좌우측에 있는 옆문을 이용한다.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선다. 예불 시간을 빗겨난 때인지 법당 안은 텅 비었다.
2층 규모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나무 기둥이 천왕문에서 본 사천왕보다 더 강한 인상을 준다.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고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둥은 미끈하고 반듯하지 않다. 약간 안으로 휘고 울퉁불퉁한 기둥은 단순한 건축재로 전락해 버렸을 지도 모를 나무를 여전히 살아 있도록 만든다. 땅 밑에 두었던 뿌리를 거둬 대웅보전 바닥으로 옮겨 수백 년을 넘겨 그렇게 살아 있다.
나무 마루는 반질반질 윤이 난다. 얼마나 많은 중생이 걷고 무릎 꿇고 합장하며 마음을 뚝뚝 떨어뜨렸으면 저런 빛을 낼까 싶다.
중심에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아미타불, 약사불을 모셨다. 사찰에서 마주하는 불상의 눈은 크지 않지만 늘 눈꺼풀을 온전히 올리지 않고 가늘게 뜨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마주쳐오는 눈빛은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하다. 자리를 틀어 앉아 외로 보아도 그 눈빛을 피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눈을 감을 수밖에(정지용 <얼굴>)’.
2층 규모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나무 기둥이 천왕문에서 본 사천왕보다 더 강한 인상을 준다.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고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둥은 미끈하고 반듯하지 않다. 약간 안으로 휘고 울퉁불퉁한 기둥은 단순한 건축재로 전락해 버렸을 지도 모를 나무를 여전히 살아 있도록 만든다. 땅 밑에 두었던 뿌리를 거둬 대웅보전 바닥으로 옮겨 수백 년을 넘겨 그렇게 살아 있다.
나무 마루는 반질반질 윤이 난다. 얼마나 많은 중생이 걷고 무릎 꿇고 합장하며 마음을 뚝뚝 떨어뜨렸으면 저런 빛을 낼까 싶다.
중심에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아미타불, 약사불을 모셨다. 사찰에서 마주하는 불상의 눈은 크지 않지만 늘 눈꺼풀을 온전히 올리지 않고 가늘게 뜨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마주쳐오는 눈빛은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하다. 자리를 틀어 앉아 외로 보아도 그 눈빛을 피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눈을 감을 수밖에(정지용 <얼굴>)’.
목탁소리와 불경 외는 소리는 높은 대웅보전 천정에 올라앉아 와불처럼 누워 있다. 법당 안은 깊은 물속처럼 고요하다. 왠지 불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무기둥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는다. 그 딱딱한 물성이 등에 강한 자국을 남긴다. 싫지 않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올 때 떠올랐던 ‘무엇’에 관한 해답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처음부터 욕심이었다.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가 본 적도 없고 들어갔더라도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인큐베이터 안의 포근함이 어쩌면 이럴 것이라는 생각만 막연히 든다. 시간이 흐르며 머릿속을 어지럽게 기어다니는 수많은 상념이 구체적인 형태를 그리며 떠오른다. 무념무상의 상태가 아닌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책을 집어 책꽂이에 꽂아 넣는 것처럼 무언가 분명해진다.
그 다음은 선택이다. 명료하게 정리된 상념을 마주할 것인가 피할 것인가다. 살며시 눈을 떠 석가모니불의 눈을 응시한다. 내처 아미타불과 약사불의 눈도 마주치며 들어가 보지만 금세 고개를 숙인다. 명료해졌다 믿었던 상념은 다시 흩어지며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빨간색 등산복을 차려 입은 중년의 여성 둘이 법당 문을 열고 들어선다. 자리를 비켜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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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아래에는 바로 대광보전이다.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이다. 역시 임진왜란에 불탄 것을 순조 13년(1813년)에 다시 지었다. 그 대광보전 앞에는 마곡사 5층석탑이 서 있다. 2층 기단에 5층의 몸돌을 올렸다.대광보전이 불 탈 때 훼손되어 일부를 화강암으로 보수했다. 전체적으로는 보존상태가 양호해 고려시대 석탑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경내에 오로지 홀로 서 있는 오층석탑을 돌며 이리저리 살펴볼 때 노부부가 대광보전 앞마당에 올라선다. 노부인은 오층석탑 앞에 손을 모으로 허리를 굽히더니 다시 대광보전 앞에 가서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그 움직임이 무척 느리다. 그 느림이 경건함을 더한다. 조금 떨어져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경건함의 바탕에 놓여 있는 건 겸손함이었다.
그 다음은 선택이다. 명료하게 정리된 상념을 마주할 것인가 피할 것인가다. 살며시 눈을 떠 석가모니불의 눈을 응시한다. 내처 아미타불과 약사불의 눈도 마주치며 들어가 보지만 금세 고개를 숙인다. 명료해졌다 믿었던 상념은 다시 흩어지며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빨간색 등산복을 차려 입은 중년의 여성 둘이 법당 문을 열고 들어선다. 자리를 비켜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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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아래에는 바로 대광보전이다.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이다. 역시 임진왜란에 불탄 것을 순조 13년(1813년)에 다시 지었다. 그 대광보전 앞에는 마곡사 5층석탑이 서 있다. 2층 기단에 5층의 몸돌을 올렸다.대광보전이 불 탈 때 훼손되어 일부를 화강암으로 보수했다. 전체적으로는 보존상태가 양호해 고려시대 석탑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경내에 오로지 홀로 서 있는 오층석탑을 돌며 이리저리 살펴볼 때 노부부가 대광보전 앞마당에 올라선다. 노부인은 오층석탑 앞에 손을 모으로 허리를 굽히더니 다시 대광보전 앞에 가서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그 움직임이 무척 느리다. 그 느림이 경건함을 더한다. 조금 떨어져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경건함의 바탕에 놓여 있는 건 겸손함이었다.
허리 숙여 기원하는 노부인의 모습을 보며 문득 ‘무엇’인지를 알려하는 것이 무척 불경스런 오만함으로 느껴졌다. ‘무엇’이란,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 지도 모른다. 자전거 타는 스님과 삽살개를 끌고 가는 스님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사하촌이 울긋불긋 옷을 차려입은 관광객으로 넘쳐나지 않는 것이 현실감 떨어진다고 재단하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할 짓이었다.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는 사람, 한 발치 떨어져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 팔랑팔랑 경내를 뛰어다니며 감탄을 쏟아내는 사람, 부슬부슬 내리는 빗줄기에 우산을 쓰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스님. 그들은 모두 비에 젖은 태화산 마곡사에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 ‘무엇’도 아니면서, 중요한 그 ‘무엇’이기도 했다.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는 사람, 한 발치 떨어져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 팔랑팔랑 경내를 뛰어다니며 감탄을 쏟아내는 사람, 부슬부슬 내리는 빗줄기에 우산을 쓰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스님. 그들은 모두 비에 젖은 태화산 마곡사에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 ‘무엇’도 아니면서, 중요한 그 ‘무엇’이기도 했다.
글 사진 이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