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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7호] 낯선 길에서 나를 찾다
낯선 길에서 나를 찾다
배뉴질랜드 테아라로아 트레일 완주를 계획하기 전까지 하루하루가 늘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선택한 나의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왜 체육 선생님이 되고자 했는지 후회했다. 사범대학에 들어간 것도, 체육교육과를 선택한 것도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줄곧 생각해 왔다. 그러던 중에 오지탐사대라는 대외활동을 하게 됐다. 일정 기간 훈련을 받고 미국, 아프리카, 중국, 몽골 등과 같은 오지를 탐사하는 프로젝트였다. 대외활동을 하면서 인생에서 한 번쯤은 장거리 트레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원래는 세계 일주를 계획하고 기간제 교사 일을 하면서 1년간 돈을 모았어요. 그러던 중에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장거리 트레일이 생각나 계획을 바꿨어요. 전에 뉴질랜드 여행을 했었는데, 아름다운 자연과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추억이 떠올라 뉴질랜드에 다시 가기로 결심했어요. 그러다 테아라로아 트레일을 알게 됐고 도전해 보기로 했죠.”
도여행을 준비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국제구호활동가인 한비야 씨를 만나게 됐고,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평소 사회적 활동과 교육기부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단순히 자기만족을 위한 여행이 아닌, 좋은 의미를 담아 트레일 완주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꽃들에게 희망을’은 월드비전에서 진행하는 기부 프로젝트로 소비자가 면 생리대 키트를 구입해 제작한 뒤 월드비전으로 보내면 이를 케냐 여학생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아프리카 케냐에는 생리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는 여학생이 열 명 중 한 명꼴로 나온다고 한다. 위생용품을 구하지 못해 매트리스 솜이나 헝겊을 잘라 사용하는 학생이 대다수였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학교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고, 그러다 학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들은 사회진출의 기회도 잃고 조혼이나 아동 노동으로 내몰리게 된다고 한다.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기획안을 만들어 월드비전에 찾아가 면 생리대 키트를 지원받았다. 그리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km를 걸으면 1달러씩 총 3천 달러를 케냐 여학생에게 기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나 혼자였다
준비도 열심히 했고,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다. 트레일 시즌을 조금 넘긴 시기에 여행을 시작했지만, 그래도 여행객이 많이 있어 동행을 구해 첫 한 달을 함께 걸었다. 그러다 500km가 지난 오클랜드에서 일행들과 헤어져야 했다.
“아스팔트를 걷는 게 산을 걷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그래서 일행들은 아스팔트를 걷고 싶지 않다며 다른 길을 걷기로 했어요. 그런데 제게는 계획한 길을 끝까지 완주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잖아요. 그래서 일행과 헤어져 혼자 100km 정도의 아스팔트 길을 걸었어요. 발에 물집이 심하게 잡혀 걷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죠. 그래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버텼어요.”
할 수 있다 자신했지만 막상 진짜 혼자가 되니 겁이나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고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외로움이 찾아왔다. 트레일에 아시아인은 없었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고 인종차별을 당할까 두려웠다. 해가 지면 해코지 당할까 무서워 바로 텐트 안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무서움에 악몽을 꾸는 날도 많았다. 뉴질랜드는 도심을 벗어나면 인터넷이 끊겨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많았다. 그럴 때면 외로움과 무서움이 더 커졌다. 그래서 읽었던 휴대폰 메시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버텼다.
매일 쉬지 않고 걷는다는 건 굉장한 체력과 정신을 필요로 했다. 한 달 동안 함께 걷던 일행과 헤어지니 배로 외롭고 힘들었다. 물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이 힘든 일을 매일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게 가장 괴로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운이 좋은 날이 많았다. 그렇게 힘들어질 때면, 기다린 것처럼 ‘짠’ 하고 늘 누군가 나타났다.
“하루는 산에 텐트를 치고 있는데 한 노부부를 만났어요. 대화를 하다 보니 제가 안쓰러웠는지 집으로 초대하더라고요. 한창 경계심이 많을 때라 괜한 의심도 들고 무서워서 그냥 연락처만 받고 일이 생기면 연락 하겠노라 했죠. 그런데 마침 폭우가 쏟아져 어쩔 수 없이 연락을 했어요. 딱 한 번 봤는데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따듯하게 자식처럼 대해 주셨어요. 그때 외로움이나 두려움이 많이 사그라지고 여행이 한결 편안해졌어요.”
하루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도와준 어머니께 왜 나를 도와줬냐고 물으니, 자신의 딸이 나와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 도와줬으면 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나를 도와준 분들 덕에 별 탈 없이 얻은 것 많은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삼여행 초반에는 모든 게 어려웠다. 하지만 빨리 끝났으면 했던 고된 여행도 막바지에 이르니 괜히 아쉬워 더 천천히 걸었다. 이 길고 긴 여행이 끝나면 감동에 못 이겨 눈물이라도 잔뜩 쏟아낼 것 같았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여태껏 해 왔던 잘못된 선택과 후회가 다 지금을 위한 시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순간이 행복했어요. 걸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죠.”
문제가 생기면 변변치 않은 영어 실력으로 무작정 부딪쳤다. 내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은 나를 도운 사람들로 하여금 깨졌다. 내가 유색인종이라서 범죄 대상이 될 거라는 생각은 나의 편견에서 시작된 두려움이었다. 혼자라는 생각에서 나온 두려움이 외국인들에 대한 편견과 벽을 만들었다. 그래서 더 당당하게 행동했고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이야기했다. 내가 만들어 낸 벽을 스스로 허물었다. 그렇게 노력한 5개월간의 여행은 나를 훨씬 단단하게 만들었고, 어디서든 잘 살아갈 거라 자신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그리고 나의 오랜 생각으로 하여금 나는 좀 더 건강한 청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