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7호] 장벽이 사라지자 마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전여지도 115
장벽이 사라지자 마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2동
도시 재개발 계획에 따라 마을의 온도가 달라졌다. 평온해 보이던 대전 곳곳에 불어온 재개발 바람이 도마동에도 불어오자 마을은 한동안 정체됐다. 건물을 개보수하는 이도 없었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도마·변동재정비촉진계획이 해지되자 마을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룸 사이로 오래된 주택이 얼굴을 내민다

배재대학교 앞, 여느 대학가와 다름없는 모습이 펼쳐진다. 술집이 죽 늘어서 있고 골목골목을 원룸이 메우고 있다. 원룸마다 ‘빈방 있음’과 집주인의 번호를 적은 종이가 붙어있다. 시험 기간을 맞은 학생들은 바쁘게 오르막길을 따라 캠퍼스를 오가고 교정에는 취업, ACE 사업 선정과 같은 문구가 큰 현수막에 인쇄돼 나풀거린다.

배재대학교가 있는 도마2동은 대학교를 기준으로 첫 블록이 대학가다. 배재대학교에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어나가다 수많은 빌라 중 중원빌라라고 이름 붙인 골목에서 멈춰 섰다. 누군가가 열심히 낙엽을 쓸어 모으고 있었다. 지금은 서른두 살이 된 큰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던 해부터 이곳에 살아온 아주머니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빗질을 하며 마을의 변화에 관해 “예전보다 원룸이 많이 늘어났다”라고만 말한다. 아주머니 말처럼 벽돌에 크고 작은 흠집이 생긴 주택 사이사이로 커다란 가림막을 한 공사 중인 건물이 곳곳에 보인다. 건물의 크기와 높이로 보아 모두 원룸인 듯하다. 그래도 작은 골목 사이로 시간이 켜켜이 쌓인 건물이 아직 버젓이 건재하다.

원룸이 즐비한 거리에서 조금 벗어나 어린 은행나무가 심긴 도로를 지났다. 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주거 블록이 모습이 드러냈다. 은행나무를 따라 늘어선 빛바랜 간판이 마을의 켜켜이 쌓인 시간을 대변한다. 원룸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마을을 떠났지만 토박이 주민은 몇년째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랫동안 마을을 형성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벽화를 막은 동네엔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도마동은 1963년 대전시 구역이 확장함에 따라 하나의 동네가 되었다. 단독주택이 많은 부촌이었던 도마동은 인구가 늘어나며 도마1동과 도마2동으로 나뉘었다. 배재대학교, 서대전여자고등학교, 대전삼육초등학교, 대전제일고등학교 등 10개의 교육기관이 자리한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였다. 배재대학교 인근으로 자연스레 상권이 형성되고 도마4거리에 병원 단지가 들어서며 서구 지역에서 나름대로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둔산동에 신시가지가 형성되며 점점 주민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가 사라진 마을은 발전이 더뎠다.

지난 2009년 8월 도마·변동재정비촉진계획이 수립됐다. 도마동 일대와 변동 일부를 11개 구역으로 나누어 지역을 재개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업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은 채 장기간 시간만 흘렀고 주민은 이에 따른 불편을 모두 떠안아야 했다. 재개발로 건축행위가 제한되자 오래된 건물을 보수하는 일이 주인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낙후된 건물을 손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이도 많지 않았다. 낙후된 시설은 더욱 낙후되어 갔고 비어 버린 공간은 그대로 폐허로 변해 갔다. 주민은 이에 따른 불편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2015년 4월 지역주민의 설문과 공청회를 통해 사업추진이 불투명한 촉진구역을 해제했다. 현재는 서부교육지원청 뒤편에 자리한 11구역만이 유일하게 재개발 공사에 착수했다. 대형 건설사가 건설하는 대규모 아파트가 이 자리에 들어설 계획이다.

주민은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 

배재대학교 원룸촌과 주민의 주거 단지를 가르는 도솔로를 따라 대전역으로 향하는 계백로 방향으로 걸어나갔다. 햇빛에 제 몸을 내어 준 흔적이 역력한 삼일 철문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정옥 씨는 28년간 도마동에 자리 잡고 살아왔다. 그는 도마동이 초·중·고등학교에 대학교까지 있고, 도마시장이 가까이에 있어 정말 살기 좋은 동네라고 말했다. 원룸이 많아지며 주차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동네가 마음에 든다. 

처음 도마·변동재정비촉진계획이 거론되기 시작했을 즘, 이에 대한 주민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다. 도시를 새롭게 계획하는 일이니 잘 되면 좋겠다만 과연 지역 주민과 상인의 의견을 얼마나 포함할지 의문이 들었다. 주민과 상인에게 개발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김정옥 씨는 어려운 이야기를 유쾌하게 술술 풀어냈다.

“개발된다고 해서 여기서 오랫동안 산 우리가 먹고사는 게 나아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개발한다고 해도 십여 년은 흐른 후에 마을이 바뀌기 시작할 테고, 그마저도 어찌 될지 모르는데요. 서민은 지금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해요. 당연히 지금 행복한 게 더 중요하죠. 대박이 나서 돈 방석에 앉는 거, 꿈도 안 꿔요.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사는 게 우린 더 중요해요.”

도마·변동재정비촉진계획이 해제되고 마을에는 원룸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임대사업을 하는 사람은 수익을 위해 원룸을 지어대고 있는데 그 수익도 예전만치는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으니 보증금 500만 원에 월 35만 원 씩 세를 놓곤 했었는데 요즘은 보증금 200에 월 20만 원에 세놓는 집도 많아졌다. 학생에 비해 원룸이 계속 늘어나니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단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원룸을 짓고 있다

삼일 철물점을 나와 다시 걸음을 옮기다 보니 이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이용원 하나가 은행나무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 일류이 원이라고 이름 붙인 공간에 들어 자 손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이발사 김종규 씨와 이발사의 손길에 모든 걸 내맡긴 손님 한 명이 고요히 제각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이용원을 개업한 지 올해로 13년이 된 김종규 씨는 재작년에 도마·변동재정비촉진계획이 폐지되고 날마다 동네에 원룸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배재대학교 앞에만 주욱 늘어서 있던 원룸이 길을 건너 주택만 있던 동네에까지 세워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개발해야 한다고 가스 설치 하나도 제대로 안 해 주더니 지금은 원룸 짓는다고 난리죠. 앞, 뒤 다 집 짓는다고 정신없어요.”

그는 목소리 톤 한 번 변하지 않고 연신 가위를 움직이며 나지막이 말한다. 오래된 주택을 가지고 있던 주민이 하나둘 업자에게 집을 팔고 떠났다. 업자는 대부분 이동네에 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수도권 등 타 지역에서 온 사람이 재테크용으로 오래된 주택을 사두었다가 재개발이 풀리자 원룸을 짓기 시작했다.

“건물이 바뀌며 마을이 많이 변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젊은 세대가 살던 주택이 원룸으로 바뀌니 주변 학교도 어떻게 될지 모르죠. 배재대학교도 학생이 많이 줄었어요. 애들이 없으니 앞으로 더 줄겠죠. 안 팔려서 애물단지
된 집도 많은데 그래도 원룸이 계속 올라서요."

글 사진 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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