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7호]책은 죽지 않는다

책은 죽지 않는다
올해 1월 송인서적이 부도났다. 1998년 설립 후 지금까지 2천여 개의 크고 작은 출판사와 거래하고 있던 출판업계의 큰손이었다. 송인서적의 부도는 많은 출판사와 인쇄소 등의 연쇄 붕괴사태를 일으켰다. 국내 2위의 큰 규모로 운영되어 어떤 기업보다도 체계적이고 탄탄한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리라 믿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송인서적의 부도로 출판업계는 한동안 떠들썩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16 출판 산업 실태조사 결과, 출판 산업 매출액은 7조 5,897억 원으로 전년 대비 3.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반해 전자책 시장 규모는 약 1,258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25% 증가한 성장세를 보였다. 이 결과는 지속적인 출판 산업의 입지 축소 현상과 전자책 사용의 증가로 종이책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 준다.
대안은 있었다

그럼에도 서점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동네서점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고 ‘계간 동네서점’을 출간하는 퍼니플랜이 지난 2015년 9월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동네 서점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20개의 서점이 폐점하고, 2개의 서점이 새로 오픈해 전국에 있는 동네 서점의 수는 총 272개였다. 놀라운 점은 272개의 서점 중 대부분이 독립 출판물을 취급하는 독립 서점이라는 것이다. 올해 개업한 서점만 해도 37개로 상당히 많은 수의 서점이 생겼다.
이쯤 되자 계속해서 작은 서점이 생겨난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는 아마 불황기를 겪고 있는 출판 산업에 새롭게 떠오른 독립 출판물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독립 출판물이란 출판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1인이 출판한 작품을 의미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상업적 구조의 대형 출판사와 구별 지어 독립 출판, 인디 출판, 소규모 출판 등 새로운 개념의 출판사가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표현으로부터의 독립’에 집중해야 한다. 출판사에서 제작되는 기성 출판은 타겟층을 정하고 목표한 수익을 위해 독자가 기대하는 이야기를 기획한다. 하지만 독립 출판은 장르 구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의 형태로 만들어 표현한다. 제약이 없기에 틀에서 벗어난 독특한 디자인과 콘텐츠로 다양성과 차별성을 보여 준다.

성장을 돕는 사람들

이처럼 개성 있는 독립 출판물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독립 서점이다. 계속해서 독립 서점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사람이 독립 출판물을 찾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역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쏟아지는 전자기기와 쉽게 읽히고 빠르게 잊히는 스낵 콘텐츠에 권태를 느낀 소비자에게 신선함을 제공함과 동시에 종이 인쇄물에 대한 향수를 일으킨다.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작용해 독립 출판물의 인기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독립 출판물, 독립 서점과 함께 주목 받은 것은 ‘아트북페어’다. 맨 처음 서울에서 시작된 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에디션’은 독립 서점 ‘유어마인드’ 주최로 2009년에 시작되었다. 독립 출판물과 제작자, 소비자가 직접 만나 출판물에 대한 소개와 판매를 하는 자리다. 매년 방문자 수가 늘고 있어 독립 출판의 인기를 크게 실감할 수 있다. 독립 출판물에 대한 흥미로 독립 서점에 방문한다 해도 제작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아쉬움을 아트북페어를 통해 해소하게 되었고, 서울을 넘어 대구와 부산에도 자체적으로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II소규모 아트북페어 ‘마음이 깃든 모든 것’

상생의 관계를 잇다

그렇다면 대전에도 독립 출판물과 제작자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면 어떨까. 2014년 대전에 자리를 잡은 독립 서점 ‘도어북스’는 대전에도 아트북페어가 열렸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단지 판매와 소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소통할 수 있는 문화적 창구를 마련하고 싶었다. 도어북스에서 이루어지는 자체 워크숍을 통해 독립 출판물을 좋아하는 사람을 모았고 마인드라는 팀을 꾸려 아트북페어를 기획했다.

마인드 팀은 출판 산업의 불황으로 인한 중소서점과 인쇄소 등의 위기에 대한 대안을 독립서점에서 찾았다. 새로운 문화와 대안 문화로 떠오른 독립 출판물을 유통하는 독립 서점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것에서 발견한 대안책이었다. 나아가 소비자와 제작자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들은 대전문화재단에서 진행한 공모사업인 ‘2017 대전문화재단 첫술프로젝트’에 소규모 아트북페어를 제안했고, 대전문화재단으로부터 지원 받아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들은 제작자와 소비자의 소통을 넘어 인쇄소와의 접촉 또한 함께 묶어 내고 싶었다. 대전에는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 온 인쇄특화거리가 있다. 하지만 개인 창작자와 인쇄소의 심적 거리는 꽤 멀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마인드 팀은 이들의 거리를 좁히고 이어줄 매개체로 전시를 선택했다. 대전 인쇄특화거리에 있는 인쇄소를 지도로 제작하고 인쇄소 사장님이 직접 들려주는 인쇄소의 역사를 영상으로 기록한 전시였다.

가능성을 보다

마인드 팀이 기획한 소규모 아트북페어 ‘마음이 깃든 모든 것’은 작은 축제로 시작했지만 앞으로 중간 축제, 큰 축제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번 작은 축제의 목표는 대전의 창작자를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아트북페어가 아닌 대전 지역 창작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소개하며 응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기에 이름을 작은 축제로 정한 것이다.

행사 당일, 다양한 창작자가 공간 1919에 모여, 자신들의 창작물을 전시했다. 행사 오픈과 동시에 많은 사람이 방문했다. 행사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인파가 모였다. 공간이 협소했지만 방문객은 별다른 불만 없이 천천히 창작물을 관람했다. 창작자 역시 방문객의 작은 관심에도 집중하며 조곤조곤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대전 특유의 느긋함과 평온함이 녹아 있는 행사였다. 이틀간의 행사 동안 약 600명이 방문해, 대전에서 벌어진 생소한 축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계속해서 줄어드는 책의 수요와 하락하는 출판 시장을 보며 정말 언젠가는 한 장 한 장 공들여 읽는 종이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이가 많다. 책은 단순히 읽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계를 잇고,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무엇일 것이다. 이번 대전 독립 출판 작은 축제 ‘마음이 깃든 모든 것’은 책이 갖는 중요성을 담은 행사였고, 언젠가는 출판 시장이 호황기를 맞을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였다. 앞으로 대전의 독립 서점, 도서관, 인쇄소, 더 나아가 타 지역 창작자, 독립 서점이 함께 하는 축제로 성장하길 소망한다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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