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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7호] 배우 한기윤 만나다
아무 목적 없이 갈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복정역은 꽤 멀었고,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는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와 히히덕거리며 새 벽을 맞이하는 건 오랜만이었고, 목적 없이 갔더라면 낭만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기 더 없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엔, 그가 보내온 아이스크림 가게 사진이 컸다. 조그만 공간에 냉장고 몇 개가 줄지어 있는 사진은, 그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궁금해진 나는 한걸음에 달려갔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얻어먹고는 그와 나란히 카운터에 앉았다. 하지만 연거푸 녹음을 중지시킬 만큼 장사는 잘됐고, 손님이 뜸해지길 기다리다 보니 같이 보기로 한 정해성 감독(월간토마토 118호 인터뷰)이 도착할 시간을 넘겼다. 그는 민망하지도 않은지 내리 아이스크림 두 개를 뜯고는, 기윤과 나 사이에 앉아 인터뷰에 참여했다. 그렇게 가게 마감시간을 넘길 때까지 셋이 앉아 카운터를 지켰다.
2014 〈아벨라〉 영기 역
2014 〈고등어〉 더듬남 역
2013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민 씨 역
경원 난 깜짝 놀랐어.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박스 째 사 먹는다는 걸 여기 와서 처음 알았어. 이거 500원짜리 팔면 얼마나 남아?
기윤 28~35% 정도? 종류마다 달라요.
경원 가게는 어떻게 하게 된 거야?
기윤 저는 나름대로 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 보시기엔 그게 아니었던 거죠. 배우 일하면서 단순하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몰래 알아보신 거예요. 그러다 아이스크림 전문점이 인테리어도 별 게 없고 창업비용도 얼마 안 드니까 하게 된 거죠.
경원 공간이랑 냉장고만 들여오면 되니까.
기윤 알바 겸, 직원 겸, 주인 겸, 해 볼래? 그래서 저는 여기서 시나리오도 보고, 영화도 보고, 책도 볼 수 있겠다 싶어서 하게 됐죠. 일 있을 때는 부모님이 봐 주시고요.
경원 시작한 지 3개월 됐으면, 미쟝센 단편영화제 끝나고 나서인가?
기윤 끝나고 나서죠. 저희 이 동네 이사 온 지도 얼마 안 됐어요.
경원 그래, 원래 천호동 살았잖아.
기윤 네, 한 5개월 정도 됐죠. 그때 살던 집은 오래됐었거든요. 여름에 덥고, 겨울엔 막 껴입고 자고. 여긴 새집이라 좋아요. 처음 왔을 땐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경원 그래도 여기 목이 좋다, 그치?
기윤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없으면 망한대요. 여긴 단지 있고, 롯데시네마도 있으니까.
경원 나는 오면서 되게 좋았거든. 복정역에 내렸는데 여행 온 느낌이 드는 거야. 작은 환승터미널에서 버스 기다리고 있는데 기분이 되게 좋았어.
기윤 다들 그러더라고요, 여행 온 느낌이 들어 좋다고.
경원 담배는 하나 팔면 얼마가 남아?
기윤돈 안 돼요. 마진율이 5~10% 정도? 한 갑에 4,500원이니까 현금 결제하면 400원 정도 남죠.
경원 담배 가게가 돈 번다는 건 옛말이구나.
기윤 그래도 담배권 신청받아서 들어온 거라, 50m 이내에는 다른 판매점이 못 들어와요. 언젠가 부동산 아저씨가 와서 담배권 천만 원에 팔 생각 없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최소 5천만 원 아니면 안 판다고 그랬어요.
경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거야?
기윤 장사할 때 가치라기보다, 가게를 넘길 때 비용을 많이 받고 팔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런 걸 몰랐어요. 이거 시작하면서 은행 상담하는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천천히 설명해 달라 그랬어요. 그래도 장사보다는, 빨리 연기하고 싶죠. 이번에 미쟝센 단편영화제랑 인디포럼에 갔다 온 후에, 몇몇 감독님들이 시나리오도 보내 주시더라고요. 설렜죠.
경원 기윤은 들어 온 시나리오가 맘에 안 들면 어떻게 해?
기윤 제 위치를 봤을 때 소위 말하는 상업영화, 누구나 알 법한 영화라면 작은 역할이라도 무조건 하죠. 근데 독립영화 중에서 저하고 안 맞는 것 같은 작품은 이게 저한테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조금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땐 정중히 이야기하죠. 물론 감독님이 주관적인 기준에서 괜찮은 분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해요.
경원 〈동명이인〉은 왜 했어?
기윤 〈동명이인〉은…
경원 기윤이 말 고를 때 되게 조심스럽거든. 그런데 지금 그러고 있어.
기윤 (웃음) 아니요, 지금 진짜 솔직히 하려고 해요.
경원 (웃음) 알았어.
기윤 지인이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고 소개해 주면서, 영화 〈나무 뒤에 숨다〉 링크를 걸어 줬었어요. 근데 제가 그 영화를 한참 전에 어디선가 봤거든요? 신기해서 감독님 필모그라피를 찾아봤죠. 그리고 영화 형식으로 제시해 놓으신, 안 끊고 10분 동안 간다는 것, 그게 좋았어요. 그 자체로 배우한테 굉장히 메리트 있었어요.
정해성 감독이 등장했고, 자기 가게인 양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는다. 손님이 많아 해성과 둘이 밥을 먹고, 다시 가게로 돌아와 인터뷰를 이어갔다.
경원 근데 이거 수익은 부모님이랑 어떻게 해?
기윤 저는 용돈 받죠.
해성 야, 너도 인제 인생을 살아야지. 돈을 모아야 나중에…
경원 (웃음) 니 인생이나 잘 살아. 넌 모았어? 얘 아까 밥 먹으면서 뭐라는지 알아? 친구한테 1,200만 원 정도 빌려야겠대. 120도 아니고 1,200.
해성 (웃음) 한 달에 100만 원씩 1년.
경원 (웃음) 근데 기윤이 정해성 감독 작품에 나왔었어? 나 왜 모르겠지?
해성 〈내가 했습니다〉에 나왔어요. 형사2인가?
경원 다시 봐야겠다. 이번 영화 〈마이 케미컬 러브〉는 어땠어?
해성 저는 기윤의 연기가 일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원 (웃음) 얜 진짜 가식적이야. 나는 그 영화에서 밤새우던 술집 장면, 너무 힘들었겠다 싶었어.
기윤 그 신이 제일 힘들었어요. 마지막 날 밤새워 가면서 찍었어요, 해 뜰 때까지.
경원 보면서 조마조마했어. 기윤이 감독에게 ‘이건 이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 했을 법한 장면들이 있다고 느꼈어. 분명 배우 탓은 아닌데, ‘이거 왜 이렇게 찍었지?’ 하는 것들. 고개를 돌리고 나서 어떤 표정을 짓거나 그런 건 오래된 연기란 말이야
해성 힘이 너무 들어가 있었어.
경원 영화에서 감독이 한 축이면 배우도 한 축이잖아. 그러면 아니다 싶을 때 싸워서 만들어 나가야지. 이번 작품 보면서, 기윤이 앞으로는 싸워 줘야 하는 부분이 있겠다 싶었어. 연출할 때 가장 무서운 게 그거잖아. 배우가 ‘감독님.이거 OK 맞아요?’ 할 때. 나도 그말이 진짜 무섭고 싫거든.
해성 나는 그럼 ‘어, OK인데? 왜. 뭐가 문제야.’ 그럴 것 같은데요. 배우가 이유를 대면, ‘그거? 됐어, 괜찮아.’ 이렇게 가는 거지.
경원 너는 진짜 뻔뻔하게 잘하고 있는 거지.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돼. OK 맞냐고 하면 진짜 멘붕이 와. 그러니까 배우에게서 나에 대한 모든 믿음이 사라지는 기분 있잖아
기윤 근데 〈동명이인〉 때도 그랬어요? 저희가 진짜 OK냐고 계속 물었잖아요.
경원 경우가 달랐지. OK가 아닌 것 같아서 묻는 것과, 촬영이 너무 빨리 끝나니까 다들 기쁘고 어리둥절해서 묻는 거랑은 천지차이지.
기윤 느낌이 다르죠.
경원 이런 상황도 있어. 새벽까지 촬영하면서 배우 연기가 더 안나오잖아. 그때 감독이 계속 NG만 불러 댈 순 없다고. 배우한테 내가 본 걸 다 설명해 줄 순 없으니,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면 OK로 가야 된다 싶을 때가 있다고. 그래서 Keep 중에서 이걸로 오케이가자고 하고 끝내는데, ‘감독님 오케이 맞아요?’ 그러면 난감한 거지. 배우 입장에선 한두 번 더 하면 더 잘할 것 같거든. 근데 피곤해서 눈 반쯤 감긴 상태에서 계속 다시 하자 그러면 난감한 거야. 기본적으로 감독이랑 배우가 서로를 안다고해도 알 수가 없는 것 같긴 해. 두포지션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짓을 하고 있지만, 입장은 하늘과 땅 차이잖아. 근데 시간이나 여력이 안돼서 배우에게 마음을 덜 쓸 수밖에 없다거나, 촬영할 때 내가 약간 해이해져서 Keep으로 가야 하는데 OK로 가자고 한다거나 그런 건 좀 두려워. 아직은 없지만, 현장에서 지치면 그렇게 될 것 같거든.
해성 근데 기윤은 이렇게 다가와서, 되게 조용히 속삭이면서 말해. ‘형, 이건 별로야.’
경원 (웃음) 예민하게 느끼고 조용하게 표현하지. 근데 우리가 기윤이란 사람을 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게, 방금 손님 가고 아이스크림 냉장고 문 일곱 개를 돌아 다니면서 한번 다 닫았었거든.
기윤 닫았어요?
경원 어, 근데 지금 가서 또 닫는거야. 약간 강박으로 보이는데, 연기할 때도 그런 게 있다고 느껴졌거든.
기윤 있어요. 어느 정도의 긴장은 좋은데, 뭔가 나 스스로 완벽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더 긴장해요. 원하는 만큼의 준비가 안 됐을 때, 긴장이 수위를 넘길 때가 있어요.그럼 연기는 더 안 되죠. 저는 배역이 가지고 있는 감정선을 완벽히 이해돼야 해요. 그래야 어떻게 바뀌어도 잘 따라갈 수 있어요.
해성 유연하진 않구나.
기윤 유연하게 하려면 그 방식으로 준비를 해야 돼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잘하는 배우들 많잖아요? 저는 그렇게 준비를 해야 그게 돼요. 그래서 해성이 형이랑 같이 처음 연기했을 때 정말 신기했어요. 이 사람은 처음부터 자기식대로 일상적인 걸 잘하는 거예요. 그게 너무 부러웠어요.
경원 그냥 정해성은 그런 사람인 거지. 그것도 궁금해. 배우로 살며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가고있는지. 난 잘하는 배우가 넋 놓고 시간 보내고 있는 거 진짜 꼴 보기 싫거든.
기윤 요즘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생겼어요. 김소진이란 배우. 〈더킹〉에서 검사 역할 하는 걸 처음 봤는데, 너무 잘하고 멋있는 거예요. 아직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자기 갈 길을 차근차근 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보면서 나도 저런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촬영한 〈검객〉도 단역이긴 하지만 주어진 역할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다 좋은 소리 들으면 좋고. 저는 굳이 저하고 같이하기 싫은 분과 하는 것보다는 저를 좋아해 주는 분들이랑 같이 가고 싶어요.
경원 예를 들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잖아. ‘필름메이커스에 올라 오는 독립장편이나 웹드라마에 매일 프로필을 넣고 있다. 극장 개봉되면 좋고 아니라도 영화제나 온라인에 얼굴을 노출시켜 계속 다음 작품 치고나갈 생각이다. 단편은 하지 않는다.’ 이런 건 조금 구체적이지. 근데 그렇게 답했으면 기윤 같지 않은 느낌이었을 거야. 사실 2년 전에 물어봤을 때도 똑같이 이야기했어. ‘아는 감독님, 해 본 사람들이랑 계속 같이하면 되지 않을까요?’
기윤 인연이 맺어지는 사람과 계속하고 싶어요. 그게 연기하기도 좋고요.
경원 근데 자기도 20대 때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았던 궤적이 있지 않아? 그땐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했어. 그리고 그런 것들을 겪어 내고 나서 지금의 안정적인 방식을 찾은 건지, 아니면 그때도 지금 같았었는지.
기윤 전자가 맞는 것 같아요. 지금 보다는 많이 날카롭고, 양아치스러운 면도 있었죠.
경원 간략하게 그때 어떻게 살았던 거야?
기윤 (웃음) 집에 거의 안 들어갔어요.
경원 언제부터 언제까지?
기윤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까지, 군대 갔다 와서 좀 정신 차렸다 싶었는데 또 한 스물 예닐곱까지요. 고1 때까진 굉장히 뚱뚱하고 작았거든요. 근데 고2 올라가서 살이 빠지고 체형이 바뀌면서, 안경 벗고 담배도 피우기 시작했죠.
경원 스스로 멋있다는 걸 알게 된 거네.
기윤 지금은 저를 포장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땐 아예 남을 의식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근데 누구나 어릴 땐 그러지 않아요?
경원 그럴 수 있지. 근데 지금의 자기 모습과 너무 다르네
기윤 많이 다르죠.
경원 잠은 어디서 잤어?
기윤 부모님 안 계실 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들어가거나, 대부분 친구 집에서 얹혀살고.
경원 왜 그랬어?
기윤 반항이었죠. 연기를 하고 싶은데 끝까지 허락을 안 해 주시니까. 멋대로 살겠다고 대학도 두 번이나 때려치우고 나왔어요. 알바해서 번 돈은 대부분 유흥으로 쓰고, 도박도 하고.
경원 지금이랑 전혀 매치가 안 된다.
기윤 사실 제가 연기를 왜 하고 싶은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냥 허락 안 해 주시니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잖아요.
해성 지금은 어때?
경원 부모님이 좀 포기한 상태 아니야?
기윤 거의 그렇죠. 이제는 연기 가지고 건드리시진 않아요.
해성 (웃음) 이쪽 계통 사람들은 모두 부모님을 이긴 자들이야. 우리 집도 나 포기했거든.
경원 이긴 걸 넘어서서 마음속으로 죽이지 않으면 불가능하지. 마찬가지야.
기윤 지금 와서는 이야기하기 힘든 경험들, 많았던 것 같아요.
경원 의외네. 기윤이 평소에 워낙 정갈하잖아.
기윤 지금 제 모습 중에 가장 싫은 것 중 하나가 그거예요. 남 의식을 너무 많이 하는 거.
경원 왜 그렇게 된 거야?
기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해성 배우활동 시작하면서 그렇게 된 거 아니야?
기윤 그런 거 같아요.
경원 그게 적대자가 사라지고 오롯이 기윤 혼자 남게 됐을 때 갖게 된 태도 아닐까? 연기와 관련해 부모님이란 적대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 넘어서기 위해 다른 건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거잖아. 근데 적대자가 사라지고 나니까, 이제 자기 말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거고. 기본적으로 겁이 많은 사람인데, 내내 밖으로 표출했던 힘이 자기 안으로 방향을 바꾸니까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잖아.
해성 나랑은 되게 다르구나. 난 한 번도 남을 신경 쓴 적이 없어
경원 (웃음) 원래 너랑 비슷한 사람은 없어, 거의.
기윤 근데 이런 사람이 매력적이잖아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니까.
경원 매력적이지.
기윤 저도 일이랑 관련 없는 건,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게 되는 것 같아요.
해성 일과 관련된 사람들에게만 약간 계급적으로 대하고 있는 거 아니야?
경원 그냥 기윤이 연기를 좋아해서 그런 거 같아.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스스로 너무 의식되고 조심스러운 것처럼 말이야. 연기를 너무 좋아하니까 그걸 대하는 게 조심스럽고 어그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는 거 아닐까.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모습으로 시작하고 끝내면 좋겠다는 기대는 너무 당연한거잖아.
기윤 전 연기 너무 좋아요. 진짜 평생 하고 싶어요.
경원 기윤이 빨리 인생작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작품이 있어서, 그냥 사람들이 기윤을 다 아는 거야. 갑자기 상업영화가 아니더라도, 진짜 좋은 작품. 그때는 맘 편히 아이스크림 가게 해도 돼. 가만히 있어도 귀찮을 정도로 연락 올 거야.
어느 영화제에 그의 작품을 튼다기에 갔던 적이 있다. 표를 받고 뒤따르는데, 자원봉사자분이 지나가는 그에게 화이팅을 외쳤다. 그도 주먹을 꼭 쥐고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는데, 그 모습이 내게 인상적이었다. 평소 기분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가, 누군가 자신을 배우로 알아봐 줄 땐 저렇게 좋아하는구나 하며. ‘배우 한기윤 만나다’로 시작하는 이 글이 담긴 책을, 그의 아이스크림 가게로 한 권 보낼 생각이다. 오가는 손님 누구도 몰라보더라도, 문득 우편을 받고 카운터에 앉아 책을 펼칠 그를 떠올리며. 거기 좋은 배우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나와 독자가 알고 있다는 것이, 작게나마 그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