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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6호]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갑천을 부탁하는 마음으로
어둠이 찾아온 저녁 7시, 사람이 하나둘씩 갑천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금세 서른 명이 넘는 청년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고, 어두운 갑천을 밝히는 작은 불빛이 행사장 테이블마다 번져 나갔다.
이번 행사를 진행한 대전충남녹색연합은 계룡산 관통도로 건설 백지화 운동, 원전 반대 행진, 월평근린공원 민간공원 특례사업 반대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 왔다. 지난 7월에는 대전NGO지원센터에서 지난 20년간의 활동을 담은 ‘스무살 녹색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온 대전충남녹색연합도 고민이 한 가지 있었다. 세대를 이어 가는 것. 대전의 생태를 보존하기 위한 활동에 더 많은 청년이 함께 고민하고 힘을 더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다. 이에 대전충남녹색연합은 청년과 소통하고자 갑천 달밤산책을 준비했다. 말과 글로만 갑천의 아름다움을 전하기보다는 청년이 직접 갑천을 걸으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길 바랐다.
“갑천에 800종 이상의 야생동물이 살기 때문에 우리가 갑천을 지켜야 한다고 말해도 청년은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청년이 자연 문제에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미있는 행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추억을 쌓고, 보존의 필요성과 의지를 느끼고, 나아가 후속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오늘 청년 모임을 준비했습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양준혁 간사의 사회로 행사를 시작했다. 양 간사는 갑천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말을 전하며 갑천 달밤산책이 이를 저지하기 위한 청년 활동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랐다.
이어 행사에 모인 청년들이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정당에서 일하는 청년도, 아직 학생인 청년도, 월평공원 대규모 아파트 건설 반대를 위해 1인 시위를 하는 청년도, 아기를 안고 참여한 청년도, 저마다 다른 모습과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자연과 생태에 관심을 가진 모습은 같았다.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밝힌 김진욱 씨는 “자연재해 위험에 놓이거나 노후된 건물을 재건축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좋은 환경과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건물을 건설하는 건 반대한다”라며 “자연은 그대로 둘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청년이 자연과 사회에 많은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 참여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대전충남인권연대 이기수 간사와 월간 옥이네 임유진 기자의 작은 공연에 이어 본격적인 갑천 달밤산책이 시작됐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안여종 대표가 갑천과 갑천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역사, 갑천의 생태 상황에 대해 설명하며 이날 산책을 인도했다. 산책은 갑천 수변을 따라 이어졌다. 8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만 볼 수 있는 늦반딧불이가 청년들 주위를 맴돌았다.
만년교 부근부터 엑스포과학공원까지 9.7km에 이르는 갑천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갑천이 대전의 가장 큰 환경 이슈로 떠오른 건 1997년 무렵이다. 93엑스포를 개최한 후 대전시는 천변도시고속화도로 건설 계획을 세운다. 대덕구와 서구를 연결하는 고속화도로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전시는 갑천을 따라 월평공원과 도솔산을 깎아 도로를 건설하려 했다. 갑천과 도솔산, 월평공원이 훼손될 위험에 처하자 환경단체와 시민단체가 이를 저지하기 위한 반대 시위를 펼쳤다. 지난 2008년 도솔터널과 도안대교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도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는 손에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어 갑천을 횡단하며 도로, 터널 건설을 반대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전시가 지난 12월 월평공원갈마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주민, 시민 대책위가 지금도 갑천과 월평공원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청년도 함께 힘을 합했으면 좋겠습니다.”
산책을 마친 청년들은 대전 생태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환경단체, 시민단체 회원들과 갑천, 월평공원 보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도안갑천지구 친수구역 주민비상대책위원회 이병범 부위원장은 “월평공원에 대규모 아파트가 건설된다. 우리가 대전시 정책을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라며 “갑천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그 소중함을 느꼈으리라 믿는다. 이곳이 꼭 필요한 공간이라는 걸 심도 있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라는 말을 전했다. 대정충남녹색연합 양흥모 사무처장도 말을 이어 나갔다.
“자연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게 바로 청년입니다. 갑천의 소중함을 생생하게 알리기 위해 청년을 꼭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환경운동 단체 시에라 클럽의 청년들은 숲의 가치를 알리고 이를 지켜야 한다는 믿음으로 환경운동을 이어 왔습니다. 최근 월평공원과 갑천이 훼손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청년이 갑천과 월평공원의 가치를 알리지 않는다면 환경운동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청년들이 세대를 이어 환경을 지키기 위해 힘써 주시길 바랍니다. 대전충남녹색연합도 지속적인 청년모임을 꾸준히 이어 나가겠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년들도 진솔하게 자기 생각과 갑천, 월평공원을 지키기 위해 청년이 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SNS를 통한 여론화가 가장 많이 거론됐다. 친구와 가족에게 갑천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이곳이 망가지려 하는 상황을 알리자는 의견이었다. 청년세대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윗세대가 싸움을 통해 갑천을 물려준 것처럼, 청년도 토론을 통해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저지하고 나아가 환경보호를 위한 정신과 철학을 물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청년은 “많은 청년이 취업에 쫓겨 지역과 환경에 대해 잊고 있다”라며 “갑천 달밤산책을 시작으로 대전의 생태환경을 다른 청년에게 전하면 갑천과 월평공원을 지키는 기회가 될 것 같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