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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5호]나는 대체 무엇인가?_1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진입하면서 왜 그 소설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독립기관>의 한 대목이었다. 주인공 도카이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화두는 ‘나는 대체 무엇인가’였다. 제법 큰 규모의 성형외과 원장인 도카이의 일상은 무척 평온하고 풍요로웠다. 한없이 평범하지는 않지만 나름 절제 속에 행복했다. 그런 도카이는 어느날, 한 유대인 의사의 강제 수용소 생활을 다룬 책을 읽다가 ‘화두’를 받았다.
주인공 도카이가 읽은 책 속 유대인 의사는 베를린에서 개업의로 일했다. 이 유대인 의사는 주위 사람의 존경과 환자의 믿음 속에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냈다. 개도 기르고 취미로 첼로도 연주했다. 그러다 온 가족이 강제수용소에 끌려간다. 강제수용소에서는 가족과 떨어져 들개와 같은 취급을 당했다. 자신이 기르는 개의 털을 고르고 여유롭게 첼로를 연주하는 교양 있고 덕망 있던 유대인 의사는, 강제 수용소에서 더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의사라는 신분 덕에 혹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수용소 소장의 생각 때문에 죽음만은 면했지만,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얼마전까지 고명했던 유대인 의사는 강제 수용소에서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도카이도 같은 가정을 해보았다. 의대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물려준 병원을 이어받아 스쿼시를 치며 체력을 단련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자신은, 이 모든 것을 벗겨 놓았을 때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라는 생각 말이다.
‘나’를 설명하는 모든 것은 대체적으로 영속적이지 않다. 사람 혹은 남자와 여자 등 일반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없거나 적은, 태생적 속성 이외의 모든 것은 현재적 의미 외에는 아무런 가치도 약속하지 못한다. 유대인 의사처럼 말이다. 태생적 속성 말고 나를 설명하는 것을 기반으로 ‘나’라고 믿고 살았던 모든 인식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경험은 상상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 무라카미는 ‘누구’가 아니라 ‘무엇’이라는 표현을 썼다. 결국 ‘무엇’이었을 뿐이라는 깨달음, 그 뒤로 덧없음 따위의 감정이 일렁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독립기관>의 한 대목이었다. 주인공 도카이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화두는 ‘나는 대체 무엇인가’였다. 제법 큰 규모의 성형외과 원장인 도카이의 일상은 무척 평온하고 풍요로웠다. 한없이 평범하지는 않지만 나름 절제 속에 행복했다. 그런 도카이는 어느날, 한 유대인 의사의 강제 수용소 생활을 다룬 책을 읽다가 ‘화두’를 받았다.
주인공 도카이가 읽은 책 속 유대인 의사는 베를린에서 개업의로 일했다. 이 유대인 의사는 주위 사람의 존경과 환자의 믿음 속에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냈다. 개도 기르고 취미로 첼로도 연주했다. 그러다 온 가족이 강제수용소에 끌려간다. 강제수용소에서는 가족과 떨어져 들개와 같은 취급을 당했다. 자신이 기르는 개의 털을 고르고 여유롭게 첼로를 연주하는 교양 있고 덕망 있던 유대인 의사는, 강제 수용소에서 더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의사라는 신분 덕에 혹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수용소 소장의 생각 때문에 죽음만은 면했지만,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얼마전까지 고명했던 유대인 의사는 강제 수용소에서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도카이도 같은 가정을 해보았다. 의대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물려준 병원을 이어받아 스쿼시를 치며 체력을 단련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자신은, 이 모든 것을 벗겨 놓았을 때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라는 생각 말이다.
‘나’를 설명하는 모든 것은 대체적으로 영속적이지 않다. 사람 혹은 남자와 여자 등 일반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없거나 적은, 태생적 속성 이외의 모든 것은 현재적 의미 외에는 아무런 가치도 약속하지 못한다. 유대인 의사처럼 말이다. 태생적 속성 말고 나를 설명하는 것을 기반으로 ‘나’라고 믿고 살았던 모든 인식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경험은 상상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 무라카미는 ‘누구’가 아니라 ‘무엇’이라는 표현을 썼다. 결국 ‘무엇’이었을 뿐이라는 깨달음, 그 뒤로 덧없음 따위의 감정이 일렁였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그 시작부터 많은 한계를 지닌다. 적정한 타협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작정이기 때문이다. 그냥 사무실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렸고 그곳에 톨게이트가 있어 빠져 나갔다.
삶의 관성은 무서웠다. 낯선 공간으로 섣불리 들어서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기억 저 밑이 아니라 기억의 표면 위에 둥둥 떠다니는 익숙한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여러 이유로 대전-당진간 고속도로를 다니는 일이 많았고 수많은 이정표 중 ‘마곡사’를 눈여겨보았다. 본래 사찰을 좋아한다. 멀지 않은 곳인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리 자주 스쳐도 인연이 닿지 않는다면 마주 볼 수 없다. 이제야 인연이 닿아 마곡사로 향한다.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떠오른다. 대구로 짝을 맞춰 무엇인가를 쉽고 간결하게 정리해 버리려는 속성이 지겹다. ‘춘마곡’이라는 세간의 규정에서 벗어나 겨울에 길을 나선 것이 머쓱했던 모양이다. 잠깐이었지만 몇 개월 기다려 봄에 가야 하나, 생각했다. 규정과 틀을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를 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갑사와 마곡사 모두 같은 교구 소속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전국을 몇 개 교구로 나눠 각 교구에 사찰을 포함시켰고 각 교구 사찰을 총괄하는 본사를 지정했다. 마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다.
마곡사 나들목을 빠져나가서도 한참을 가야 한다. 공주시 사곡(寺谷)면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곡사’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촌락이 형성된 곳이다. 본래 조선 후기 공주목 계실면이었던 곳이나 1950년대 사곡면으로 이름을 바꿨다(한국지명유래집충청편지명). 마곡사 나들목에서 마곡사까지도 제법 먼 거리다. 굽이굽이 산과 산이 만들어 놓은 경계 안을 따라 가면서 그 옛날 이곳 사찰이 얼마나 깊숙한 곳에 있었을지 짐작이 된다. 마곡사가 들어선 태화산 주변은 물과 산의 형세가 태극형이라, 택리지나 정감록 등이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 중 하나로 꼽았다. 산세가 굽이 굽이 흐르니 그 산세가 만들어 놓은 물길도 같은 형태였을 게다. 그것이 태극형이다. 풍수의 오묘함은 모르나 깊숙한 계곡 구석으로 들어가니, 그 옛날 찾아가기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나저나 마곡사의 건축물 중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져 다시 지은 건물이 몇 되던데, 십승지지가 정말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삶의 관성은 무서웠다. 낯선 공간으로 섣불리 들어서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기억 저 밑이 아니라 기억의 표면 위에 둥둥 떠다니는 익숙한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여러 이유로 대전-당진간 고속도로를 다니는 일이 많았고 수많은 이정표 중 ‘마곡사’를 눈여겨보았다. 본래 사찰을 좋아한다. 멀지 않은 곳인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리 자주 스쳐도 인연이 닿지 않는다면 마주 볼 수 없다. 이제야 인연이 닿아 마곡사로 향한다.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떠오른다. 대구로 짝을 맞춰 무엇인가를 쉽고 간결하게 정리해 버리려는 속성이 지겹다. ‘춘마곡’이라는 세간의 규정에서 벗어나 겨울에 길을 나선 것이 머쓱했던 모양이다. 잠깐이었지만 몇 개월 기다려 봄에 가야 하나, 생각했다. 규정과 틀을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를 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갑사와 마곡사 모두 같은 교구 소속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전국을 몇 개 교구로 나눠 각 교구에 사찰을 포함시켰고 각 교구 사찰을 총괄하는 본사를 지정했다. 마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다.
마곡사 나들목을 빠져나가서도 한참을 가야 한다. 공주시 사곡(寺谷)면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곡사’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촌락이 형성된 곳이다. 본래 조선 후기 공주목 계실면이었던 곳이나 1950년대 사곡면으로 이름을 바꿨다(한국지명유래집충청편지명). 마곡사 나들목에서 마곡사까지도 제법 먼 거리다. 굽이굽이 산과 산이 만들어 놓은 경계 안을 따라 가면서 그 옛날 이곳 사찰이 얼마나 깊숙한 곳에 있었을지 짐작이 된다. 마곡사가 들어선 태화산 주변은 물과 산의 형세가 태극형이라, 택리지나 정감록 등이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 중 하나로 꼽았다. 산세가 굽이 굽이 흐르니 그 산세가 만들어 놓은 물길도 같은 형태였을 게다. 그것이 태극형이다. 풍수의 오묘함은 모르나 깊숙한 계곡 구석으로 들어가니, 그 옛날 찾아가기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나저나 마곡사의 건축물 중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져 다시 지은 건물이 몇 되던데, 십승지지가 정말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산신각에 오르는 길 담장모습
충남문화재 자료 제 64호 명부전
사곡면에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이 겹쳐 다양한 골짜기를 만들고 그 안에 크고 작은 촌락이 들어섰다. 마곡사는 그 골짜기 끝에 들어앉았다.
넓은 주차장은 대부분 텅텅 비었고 식당과 숙박이 주를 이루는 사하촌도 한산하다. 촌락을 형성케 한 사찰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마주한 사하촌은 당혹스러웠다. 겨울비에 푹 젖어버린 그곳은 오래전 영화촬영을 끝마치고 세상 사람들에게 잊힌 세트장 같다. 춘마곡을 보려 찾아드는 관광객이 넘실거리면 그곳은 다시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넓은 주차장은 대부분 텅텅 비었고 식당과 숙박이 주를 이루는 사하촌도 한산하다. 촌락을 형성케 한 사찰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마주한 사하촌은 당혹스러웠다. 겨울비에 푹 젖어버린 그곳은 오래전 영화촬영을 끝마치고 세상 사람들에게 잊힌 세트장 같다. 춘마곡을 보려 찾아드는 관광객이 넘실거리면 그곳은 다시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글 사진 이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