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6호] 과학의 도시를 예술에 오롯이 담을 수 있을까

아티언스 대전 2017 - 과학의 도시를 예술에 오롯이 담을 수 있을까
원도심 일대가 예술과 과학의 만남으로 풍성해졌다. 지난 15일부터 시작한 아티언스 대전이 30일 폐막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과학의 도시라 불리는 대전의 특징을 예술로 승화한 아티언스 대전은 대전문화재단이 매년 심혈을 기울여 기획하는 연간 프로젝트다. 아티언스 아카이브로 시작한 지난 7년간의 프로젝트가 이제는 풍부한 과학 인프라를 활용한 대전만의 특색 있는 문화축제로 차츰 자리 잡는 모양새다.
일찍이 고민하고 작가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다

지난 9월 15일부터 시작한 아티언스 대전은 작년과 비슷하면서도 많은 부분이 달랐다. 원도심 일대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해 시민이 함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작년과 비슷해 보인다.

지난 5월, 대전문화재단은 공모를 통해 레지던시 작가 여섯 명을 선정해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에 입주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정화용, 김형중, 더바이트백무브먼트, 김태훈, 박정선, 김형구 작가가 레지던시로 참여해 연구원에 거주하며 연구원들과 함께 작품을 구상하고 작업했다. 작가들이 지난 4개월 동안 작업한 작품은 이공갤러리, 쌍리갤러리, 갤러리이안, 문화공간 주차, 현대갤러리 등에 전시했다. 프렉탈 원리에서 파생한 디지털 이미지를 활용해 작업한 비디오 설치 미술부터 미생물을 활용한 조소까지 다양한 작품이 관객을 맞이했다.

올해 처음으로 아티언스 대전에 참여한 이공갤러리 전형원 관장은 “작년 대전문화재단이 아티언스 대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소 늦은 시기에 원도심 갤러리와 전시 일정을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작품 전시를 위한 논의가 일찍부터 이루어져 이공갤러리도 전시 공간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대전문화재단이 획일적인 전시 공간보다는 작품 특성에 맞는 전시 공간을 고민하고 원도심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한 점이 작년과 달라 보인다는 평이다. 그는 “작년보다 관람하는 시민도 다소 늘어난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레지던시에 참여한 김형중 작가도 작년과 많은 부분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고 말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작년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했지만, 작가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해 작품 활동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작가들의 자율성에 맡기겠다는 말은 대전문화재단이 처음 레지던시를 시작할 때부터 강조하던 것이 었습니다. 그만큼 작가와 연구원을 연계하는 선에서 레지던시를 지원했습니다. 레지던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작가와 연구원과의 관계입니다.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그덕에 더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티언스 대전 레지던시 참여 작가

연극과 영화, 작년과 같은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대전문화재단은 지난 6년간 진행한 아티언스 캠프의 결과물을 대전예술가의 집 전시실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아티언스 놀이터’라 이름 붙인 전시 공간에 중고등학교 학생 27명이 ‘존재의 이유, 에너지’라는 주제로 예술의 관점에서 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을 이해하고 상상한 작품을 전시했다. 이와 함께 직접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아티언스 체험전시 공간도 마련했다. 대전문화재단 권수진 차장은 아이들이 아티언스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아티언스라는 개념이 확립된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아티언스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체험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색이 변하는 불빛공으로 인터렉티브 공간을 마련해 아이들이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더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레지던시와 전시뿐 아니라 연극, 영화, 토크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를 기획했다. 극단 어소사이어티가 우주를 주제로 한 연극 〈소실〉을, 극단 호원이 방사능 유출로 폐허가 된 지구의 모습을 담은 연극 〈인코딩(ENCODING, 人코딩)〉을 대전예술가의집 누리홀 무대에 올렸다.

대전아트시네마에서는 아티언스 영화제도 열었다. ‘휴머니티의 과학적 역사’라는 주제로 〈로보캅〉, 〈A.I〉, 〈공각기동대〉, 〈프랑켄슈타인〉, 〈알파빌〉, 〈아키라〉 등을 상영했다.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 중 하나가 ‘감성’이라는 것에 착안해 진정한 인간성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구성했다. 몇몇 영화 상영 후에는 유운성, 김성욱, 임세은 평론가를 초청해 특별 시네토크를 열고, 각 영화가 그린 과학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이와 함께 도시의 근대적 역사와 상처를 주제로 작업하는 박찬경 작가의 작품을 상영하기도 했다. 박찬경 작가의 〈신도안〉,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파란만장〉, 〈만신〉, 〈고진감래〉 등이 아티언스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났다. 박찬경 작가 역시 영화 상영 후 관객을 만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외에도 중구문화원에서는 지난 7년간의 아티언스 흔적을 담은 ‘아티언스 대전을 기록하다’를 기획해 아티언스 대전의 발자취를 전시했다.

아티언스 놀이터

아티언스 캠프 결과물 전시

대전을 넘어 영국과 협업했다

가장 큰 변화는 아티언스 대전이 주한영국문화원과 협업해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라는 더 뚜렷한 이미지를 가지는 동시에 작업의 영역을 확대한 점이다. 대전은 93엑스포 이후 과학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엑스포를 대체할 이미지가 없어 허울만 남은 이름 같아 보였다. 아티언스 대전도 과학의 도시라는 명제가 강한 이미지로 와닿지 않는 모호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아티언스 대전에서 예술과 과학을 융합하는 활동을 진행해 온 영국 문화 단체들과 협업하며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색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전문화재단은 지난 2월부터 내년 3월까지를 ‘2017-18 한영상호교류의 해 한국 내 영국의 해’로 지정한 주한영국문화원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며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도록 했다. 대전예술가의 집 전시실에 영국의 과학과 예술 융합 분야를 소개하는 ‘아티언스 대전 17:영국 포커스’를 기획해 영국 전문가와 다양한 아티언스를 소개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에는 영국의 주요 과학 및 예술 관련 기관을 한국에 초청해 ‘아티언스 랩투어(Artience Lab Tour)’를 진행했다. 이와 함께 예술과 과학을 융합한 작품을 전시하는 사이언스 갤러리런던(Science Gallery London)과 전자 기술을 활용한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리버풀 미디어아트 연구소 팩트랩(FACTLab), 과학과 예술의 협업 기금을 제공하는 웰컴 트러스트(Wellcome Trust)가 서울과 대전을 방문해 해당 분야 전문가와 작가를 만나 각국의 과학과 예술 협업 현황을 공유하기도 했다. (매년 3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찾는 사이언스 갤러리 런던은 과학 연구자와 학생, 지역사회 및 예술가를 혁신적인 방식으로 연계하고 있다.) 양국이 더 다양하고 새로운 협업 아이디어를 구축하고 과학을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이었다.

이와 관련해 대전문화재단은 영국문화원 초청공연 〈사일런트 시그널〉과 전시토크 등을 대전예술가의 집에서 진행했으며, 〈퍼블릭 토크 : 과학과 예술의 충돌〉을 대전 세븐팩토리모먼트에서 진행했다.

7회를 맞은 아티언스 대전은 작가에게 자율성을 부여했다. 기관과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하고 작가와 연구원이 더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는 협업 방식을 선택했다. 주한영국문화원과 교류하며 몸집도 제법 커졌다. 갤러리 전체 프로그램은 작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진행 과정에서 분명 큰 변화가 있었다. 이제 가장 크게 변해야 할 점은 얼마나 많은 시민이 아티언스 대전에 발을 들여놓는지다. 전시장을 찾는 사람이 다소 늘어났지만, 아직 아티언스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부족해 보인다. 아티언스 대전이 과학의 도시 대전을 모티브로 하는 만큼, 시민이 함께 이를 공유하고 이야기하도록 고민해야 한다.

마틴 프라이어 주한영국문화원장

글 사진 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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