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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5호]잘생긴 발가락들의 시작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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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을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문태준, <맨발> 부분, 《맨발》, 창비, 2004 ]
글 그림 이혜정
문태준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를 위해 부처가 발을 내보인 일화와 “어물전 개조개”가 껍데기 밖으로 발을 내미는 것을 나란히 시에 놓는다. 죽음의 순간 말갛게 드러난 흰 발과 개조개가 내민 말간 속살, 그 작고 미끈한 발의 이미지와 부처의 맨발, 이 절묘한 비유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맨발”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보여 준다.
개조개의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덧씌우지 않은 속살이다. 시인은 그 속살을 “조문하듯 건드린”다. 그냥 무심히 만지는 것이 아니라 “조문하듯”이인 것은 시인에게 있어 “개조개”는 “죽은 부처”와 다름없이 삶을 함축적으로 드러내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경건한 접촉에 개조개의 발은 “궁리인 듯” 아주 느리게 안으로 숨어 버린다. 시인은 그 짧은 접촉과 느릿한 반응에 대해 “시간도 길도 흘러왔다”고 말한다. 개조개가 발을 움직이는 그 느린 동작에서 “시간”과 “길”이 겹쳐진다. 시간과 공간, 그곳에서 시인은 또 인연의 덧없는 흐름들을 읽는다.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 가는 이, 그에게 남은 건 껍데기에 감춰진 개조개의 발과 같은 인간의 “맨발”이다.
발에 대한 은유는 탁발승의 허기와도 이어진다. 시인은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탁발승과 먹이를 찾는 개조개의 모습을 겹쳐 그린다. 개조개의 발은 먹이를 찾으러 밖을 더듬다가 집이라 할 수 있는 껍데기로 슬그머니 돌아간다. 입을 다문 개조개의 작은 집. 그 집으로 돌아가 캄캄한 어둠 속에 머무는 모습에서 모든 걸 비우고 죽음으로, 맨발로 돌아간 죽음의 이미지가 다시 떠오른다. 삶의 시작과 끝이, “맨발”의 은유 하나로 완결된다. 평생 발을 뻗어 허기를 채우기 위해 생을 사는 우리가 그 발을 거두어 죽음의 집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다시 1월이다. 어떻게 다시 또 1월인가 싶다. 아무것도 새로워진 건 없고, 나는 여전한데 시간은 매일매일, 한 달 한 달, 한 해 한 해, 내게 새로워지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문 껍질 안에 숨은 개조개의 몸처럼 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똑같다. 해가 뜨는 것도, 별이 지는 것도 모른 채 사람이란 늘 자기 안에 고여서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밖으로 끌어내는 건 아주 작은 움직임이다. 껍질 밖으로 발을 내미는 개조개처럼 우리는 어떤 시작을 위해 용기 있게 타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세계 밖으로 ‘맨발’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물에서 본 것 혹은 물이 준 것>(1983)에는 물 밖으로 반쯤 나온 발이 그려져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욕조에 들어앉아 자신의 맨발을 물끄러미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얗고 말간 맨발.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가 생각해 보면, 발끝이 아니라 머리에서 오는 것. 맨발은 늘 용감하다. 맨발은 말보다 빨리, 심장보다 빨리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주곤 한다. 어쩌면 우리가 믿어야 할 건 머리가 아닌, 심장이 아닌 ‘발’인지도 모른다.
잘 살고 있다는 사람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다. ‘청춘쉐이크’라는 청년들이 만든 팟캐스트를 듣다가, 막연히 힘들겠다 여겼던 청년들의 취업 문제나 경제적 문제가 저들에게는 얼마나 고단한 일상으로 다가올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청년만이 아니라, 중년과 노년, 그 누구 하나 자기 삶의 자리 찾기가 녹록지 않은 날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단 하나의 위안이 있다면, 상투적이지만 우리는 모두 맨발로 와서 맨발로 간다는 거.
2016년. 이 낯선 숫자가 우리의 눈앞에 맨발로 서 있다는 거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이라는 흐름 가운데 나는 가장 잘생긴 발가락들을 지녔다고 중얼거리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해 보는 거다. 누구나 새해를 그렇게 시작하듯이. 맨발로 탁발을 하러 거리로 나가는 거다. 머리가 아닌 발을 앞세워, 누구나 다 하듯 그런 시작을 흉내 내 우선은 울음을 멈춰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