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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5호] 나는 나의 내면을 탐험하고 싶다, 레가 라만
반둥을 탐험하는 인니아나 존스
‘인니아나 존스’팀은 지역예술에 대한 조그만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팀의 대표 김가혜 씨는 학과 친구들과 월간 《대전예술》의 대학생객원기자로 활동하며 ‘대전예술공간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새로운 공간을 알게 된 기쁨도 잠시, 다시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는 사라지고 없는 경우가 많았다. 힘을 잃고 사라지는 예술공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고 자구책을 찾던 도중, 인도네시아에서 활동 중인 전정옥 큐레이터가 우리지역의 현실과 달리 자생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카르타의 예술공간을 소개한 칼럼을 읽게 되었다. 지역예술공간에 관심이 많은 학과 친구들과 함께 한남대학교 취업지원팀의 지원을 받아 자카르타로 탐방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나 지역에서 예술공간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지역예술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자생력을 잃고 사라지게 만드는 독이 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예술의 경우 국가의 지원에서 완전히 독립해,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이렇게 탄생한 자카르타의 수많은 갤러리와 예술공간들은 여러 갈래로 뻗은 뿌리가 나무를 튼튼하게 지탱하는 것처럼 공간과 공간이, 공간과 사람이 서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고자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예술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때 예술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학교에서 예술교육을 경험할 수 없는 인도네시아 아동들에게,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교육프로그램은 예술적 체험을 쌓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또한 예술가들에게는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인니아나 존스’팀은 두 번째 프로젝트로 외교부의 지원을 받아 예술외교의 형태로 인도네시아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인도네시아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IBT를 졸업한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지역예술을 형성하고 있는 반둥이 ‘인니아나 존스’ 팀의 두 번째 탐험지가 되었다.
레가 라만 워크숍 결과물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한 레가 라만(Rega Rahman)은 지역예술가들의 커뮤니티인 루앙게릴야 소속의 아티스트이다. 대표적인 팝 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처럼 그의 작품은 한 편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를 소재로 사용한다.
“저의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에서는 미국에서 수입된 만화책들이 굉장히 저렴했어요. 그래서 저의 성장과정은 항상 만화책과 함께였고 제게는 가장 친근한 매체예요.”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무언가가 터지고 폭발하는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레가 라만의 작품을 만화 장르로 분류한다면 액션 만화라 부를 만하다.
“저는 누구나 마음속에 분출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종교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러한 감정을 억누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관객들이 제가 담아 낸 폭발하는 장면을 통해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불러일으키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를 원해요.”
이렇게 만화를 바탕으로 작품세계를 만들어 가는 레가 라만과 함께 인도네시아 아동들을 대상으로 그가 작업에 사용하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해 한국의 전통문양과 만화 캐릭터 뽀로로를 부채에 담아냈다.
학창 시절 이러한 예술교육을 경험해 보지 못한 레가 라만에게 이번 수업은 도전과도 같았다.
“인도네시아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참 엄격한 곳입니다. 저의 경우, 부모님께서 참된 종교인의 자세를 중요시하시며 절제된 생활을 강요하셨어요. 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인들이 저와 같아요.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보통의 교과 과목에서는 슬픔이나 기쁨과 같은 내면의 다양한 감정들을 다루기 어렵지만 예술은 제가 행복할 때 평소보다 더욱 풍부한 색채를 사용하는 것처럼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를 경험하게 하는 예술교육은 더욱 필요하고요.”
예술교육을 접하기 어려운 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인처럼 레가 라만 또한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학창 시절에는 예술과 관련된 교과 과목이 없었으며,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경제학을 전공했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과 뒤따른 파혼처럼 극복하기 어려운 인생의 시련을 겪게 되었을 때 시작했던 예술이 삶의 돌파구가 되었다. 이처럼 레가 라만은 많은 인도네시아인이 예술을 통해 숨겨진 자신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레가 라만은 다가오는 10월 한국을 찾는다. 루앙게릴야 멤버 이르판 헨드리안, 패트리엇 묵민에 이어 전북도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두 달이 현재의 자신을 얽매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내면을 가다듬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인터뷰에 참여 중인 레가 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