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5호] 있던 게 사라지면 없던 게 생겨날까

있던 게 사라지면 없던 게 생겨날까 -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조성사업
옛 충남도청 뒷골목과 그 일대를 재정비해 거리를 조성하는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대전시 중구는 올해 말까지 전선 지중화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문화콘텐츠는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옛 충남도청 활용방안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면, 이와 거리를 연계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 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물리적 거리를 먼저 조성하다

지난 몇 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조성사업’이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지난 2014년 국토교통부가 추진한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에 선정된 후 3년 만이다. 이 사업은 대전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 뒷골목과 그 일대인, 중앙로 79번길과 보문로 291번길을 재정비해 특화거리로 탈바꿈하는 사업이다. 중구는 올해 말까지 전선 지중화 사업으로 거리를 정비한 후 특화거리를 조성할 문화콘텐츠를 다시 한번 논의할 계획이다. 연구용역을 통해 사업 방향과 타당성을 논의, 검증하고 옛 충남도청 터 활용방안과 연계할 수 있는 거리를 조성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질적으로 옛 충남도청 사용 방안을 확정해야 거리조성사업 추진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현재 사업 대상지에서는 거리정돈을 위한 전선 지중화 사업이 한창이다. 이는 거리에 있는 전봇대를 제거하고 전선과 통신선을 도로 아래로 옮기는 공사다. 이와 함께 자연재해로 손상된 플라타너스도 함께 정돈한다. 현재 이 거리에는 32주가량의 플라타너스가 있다. 이 중 겉은 멀쩡하지만 뿌리가죽은 부후목 열 개 정도를 제거하고 새로운 나무를 심는다. 또한, 은행나무 등을 일부 제거하고 이식할 계획이다. 옛 충남도청 뒷골목에 오랫동안 자리한 기존 나무를 최대한 살려 조경을 구성하는 게 중구의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옛 충남도청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도 철거한다. 담장에 특별한 역사성이 없다는 판단하에 내린 결론이다. 담장을 철거한 후 도로와 도청터 경계 부분에 조경을 해 시민이 옛 충남도청을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개방형으로 바꾼다.

문화콘텐츠를 위한 논의는 계속된다

이번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옛 충남도청과의 연계다. 옛 충남도청 담장을 개방형으로 바꾸는 만큼 도청터를 광장으로 형성해 시민의 발걸음을 이끌도록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사업 초기에 발표한 학술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도로정비와 함께 사업 구간에 Library Complex, Gallery Complex, Art Complex, Children Park, Terrace Cafe 등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누구나 쉽게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을 설치하고, 청년 창업카페를 육성하고, 전시 공간을 설치한다. 문화융합공간으로 충남도청을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이와 함께 공원을 조성하고 주민 쉼터를 제공한다. 하지만 중구는 아직 옛 충남도청 활용방안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거리 조성 방향을 섣불리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실질적으로 아직 구체적인 사업 방향은 결정되지 않은 셈이다.

대전시는 지난 5월 시정브리핑을 통해 옛 충남도청을 메이커 문화 플랫폼으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옛 충남도청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기존 활용 방안과 연계해 메이커 문화를 활성화하는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옛 도청사 활용방안에 대한 최종용역을 기반으로 한 계획이다. 사업을 위해 국가가 옛 충남도청 터를 매입해야 하는데, 매입비로만 800억 원이 소요된다. 대전시는 앞으로 옛 충남도청 터 매입비가 2018년도 본예산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결과가 확실하지는 않다. 또한 메이커 라이브러리가 실질적으로 선화동을 다시 북적이게 만들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옛 충남도청을 대전 관광의 구심점으로 만든다

대전역과 중앙로, 대흥동을 오가는 관광객의 발걸음을 선화동까지로 이끄는 것도 숙제다. 중구는 옛 충남도청이 대전 원도심 관광의 거점이 될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옛 충남도청을 중심으로 대흥동 일대와 선화동, 목동 등 원도심을 아우르는 관광콘텐츠를 개발한다. 관광콘텐츠가 부족한 대전에 원도심 근대건축물 스토리텔링을 더해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스토리텔링을 이어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또한 중심인 옛 충남도청의 활용 방안이 결정되지 않고서는 결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조성사업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사업으로 오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거리의 풍경이 오히려 망가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많은 예산을 투입해 거리를 조성하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유명무실한 사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거리조성 사업에는 정부와 대전시 예산 49억 7천만 원이 투입된다.

대전문화연대 박은숙 대표는 “선화동 거리 조성사업이 국토부 사업으로 선정된 데에는 옛 충남도청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해 대흥동과 연계하는 기대효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시간이 흐르며 기획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흐르고 있다. 사업 선정 후 아직도 구체적인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대답은 상당히 위험하다. 옛 충남도청과 선화동 거리를 연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금처럼 뚜렷한 방향 없이 도로정비만 진행한다면 처음 기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될 것이다. 결국 대흥동 은행나무 길처럼 도로 정비사업 정도로만 끝나 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라고 덧붙였다.

이 거리에 독립운동가의 길을 조성한다는 이야기도 무성한 소문 중 하나였다. 중구청 도시활성화과 이병석 과장은 “옛 충남도청의 역사성을 살린 사업을 기획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운동가 길 조성 사업은 결정한 사항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다만, 중구는 대흥동이 문화예술 지역인 만큼 이와는 차별된 거리를 조성해야 사업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옛 충남도청 활용방안이 확정되면 이에 따라 거리를 메울 콘텐츠를 개발하고, 법 제한을 완화해 콘텐츠와 관련한 다양한 시설을 옛 충남도청 일대에 유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미국의 도시재생 사업에 대해 날카로운 비평을 남겼던 사회운동가 제인 제이콥스는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도시계획에 대한 네 가지 필수조건을 밝혔다.

‘하나, 지역이 둘 이상의 주요 기능을 가져 서로 다른 목적으로 그 장소에 있는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 둘, 블록이 짧아 모퉁이를 돌 기회와 거리가 많아야 한다. 셋, 경제적 수익이 다양하도록 오래된 건물을 비롯한 햇수와 상태가 각기 다른 건물이 지구에 섞여 있어야 한다. 넷, 사람이 충분히 오밀조밀 집중되어야 한다. 단순히 주거를 위한 사사람이라도.’

옛 충남도청 뒷골목은 블록이 짧아 거리를 돌 기회가 많으며, 건축된 때가 다른 건물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사람이 오밀조밀 집중할 만큼 충분한 주요 기능을 가지지 못했다. 이번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조성사업은 원도심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다. 이를 통해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거리 조성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전시와 중구가 어떻게 거리에 사람이 존재하도록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글 사진 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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