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5호] 환경, 고용, 교육, 새로운 라오스를 꿈꾸는 새 라오

새 라오 프로젝트 본부 정문

환경, 고용, 교육, 새로운 라오스를 꿈꾸는 SAE LAO
라오스 방비엥 중심가에서 한글을 발견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었다. 음식을 사 먹기도 여행지를 찾아가기도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온, 4륜 오토바이를 타는 젊은 연예인의 사진도 눈에 띈다. 덕분인지 방비엥 중심가에서 유명한 관광지인 블루라군까지 굉음을 내며 내달리는 오토바이족은 대부분 한국사람이다. 그 소음이 제법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방비엥에서 7km가량 떨어진 곳에 나통빌리지가 있다. 방비엥 중심 시가지에서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풍광이다. 길게 이어지는 도로에 바짝 붙어 새 라오(SAELAO) 프로젝트로 운영하는 식당을 만날 수 있다. 방비엥에서 블루라군으로 가 는 길이다. 새 라오 프로젝트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 식당은 아는 경우가 많다. 유기농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여행객 사이에서는 제법 알려졌다. 식당만 운영하는 건 아니다. 친환경 비누도 팔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이 머무는 공간이기도 하다. 작은 텃밭과 연못, 돼지우리도 있다.
이곳에서 우리 일행을 맞이해 공간을 안내해 준 사람은 조(Joe)다. 프랑스에서 온 물리학자로 이곳에 머문 기간은 1년 남짓이었다.

일행을 맞이해 준 조

Joe와의 만남

정문에서 일행을 맞이한 조는 마당에서 연못 위로 이어지는 넓은 원두막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원두막에는 해먹에 누워 책을 읽는 외국인부터 빗자루질을 하며 청소하는 사람,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를 열심히 상의하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피부색도 다르고 머리카락 색도 달랐다. 풍광까지 더해져 한없이 이질적인 요소지만, 오래 맞물려 돌아가며, 기름때가 부족한 곳을 적당히 메운 것처럼 자연스럽다.

“라오스 북쪽 지역에 휴가를 왔었다.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덥고 불편하고 여러 모로 힘들었다. 그런데 프랑스에 돌아가서도 자꾸 생각이 났다. 내가 물리학자인데, 이곳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를 다시 라오스로 이끈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라오스’에서 느낄 수 있는 순수함일지, 열정일지, 가능성일지, 이 모든 것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조는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를 배치하고 운용하는 매니저 구실을 맡아 지금껏 생활하고 있다.

새 라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는 이제 9년째다. 이 프로젝트 핵심 이슈는 영어 교육이다. 라오스 아이 500명을 두 개 장소에서 나누어 가르친다. 8세부터 25세까지를 대상으로 수준에 따라 반을 편성해 교육한다. 장학제도도 함께 운영한다. 학생 아홉 명을 선발해 대학에 보냈다. 학비는 물론이고 숙박비와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교육사업 이외에 관심을 기울이는 프로젝트는 라오인 고용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라오스 사람 열 명을 직접 고용했다. 이외에 작은 마을에 들어가 여성에게 천연비누 만드는 법을 교육하고 이를 시장에 팔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새 라오 프로젝트 유기농 식당에서도 이 비누를 살 수 있다. 같은 영어 교육이라도 성인을 대상으로 펼치는 영어교육은 일자리와 관련 있다. ‘블루라군’이라는 외국인이 정말 많이 찾는 관광지가 있어도 영어를 못해 돈을 벌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이슈가 ‘친환경’이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해 유기농법을 가르치고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가르친다.

새 라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곳에서 사용하는 식수도 빗물을 받아 필터 처리해서 쓰고, 빨래하는 물은 강에서 길어다가 필터 처리해서 쓴다. 그렇게 더러워진 물은 역시 필터로 처리해 다시 강으로 보낸다. 자원봉사자 숙소 근처에는 나무 위에 커다란 물통 하나를 올려 두었다. 나무 옆에 있는 화장실과 샤워장에서 사용하는 물을 담아두는 통이다. 이렇게 사용한 물은 바로 옆에 만든 대나무 숲에서 정화해 식물을 키우는 데 쓴다. 이 시스템은 프랑스에서 환경기술을 공부하는 대학생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진행한 프로젝트다.

“현재 자원봉사자는 스무 명 정도다. 보통 2주에서 한 달, 혹은 서너 달 정도 머문다. 오전에는 개인적인 업무나 청소, 팀 회의 등을 진행하고 유기농 농장에서 일도 거든다. 오후에는 영어교육에 집중한다. 지금까지 대략 열여섯 개 국가에서 1,800명 정도가 이곳 자원봉사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자원봉사자가 너무 많이 몰리면 안 되기 때문에 참여 의사가 있어도 무조건 받을 수는 없다. 적절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절한다.”

나무 위에 물통은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에서 사용하는 물을 내려보낸다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여 만든 건물 벽

영어교육을 진행하는 라오스 초등학교 운동장

봉사자 대부분은 이곳 나통 빌리지 본부에 머물지만 지역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주변 가족에게 영어교육을 진행하는 봉사자도 있다.

“우리는 영어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시아에는 언어가 다른 많은 나라가 있다. 이들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다. 라오스는 위치 상 아시아 여러 나라 간 교류를 만들어 내는 국가이고 그만큼 영어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확장해 줄 수 있는 도구라는 측면에서다. 유학 기회를 갖거나 인터넷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접하며 다양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여행을 통해 라오스와 만나고 그 나라가 좋아서 다시 장기 자원봉사자로 새 라오 프로젝트와 인연을 맺은 조는 이 프로젝트의 유효성에 관해 긴 관점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이 펼치는 영어교육의 가능성을 라오스 정부도 인정해 교육부에서 관련 인증 자격증을 주거나 교육 과정을 라오스 공식 과정과 맞춰 가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결과라고 조는 생각한다.

유기농업과 관련해서는 지금껏 진행한 10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길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농업은 무조건 환경이 중요하니까 유기농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농민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유기농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유기농이 더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계속 설득해 나가야 한다.”

새 라오 프로젝트 유기농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

Sengkeo와의 만남

우리 일행의 방문 소식에 셍키오가 달려왔다. 라오스에서 라오스 사람을 많이 보았지만 정말 우리나라 사람 같았다. 1991년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갔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일을 하다가 2003년 다시 고향 라오스로 돌아왔다.

라오스를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다짐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라오스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돌아온 라오스는 그가 떠날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관광지로 변모하며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은 사실이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청정환경과 문화가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가슴 아픈 일이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그 처음이 지속가능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웃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먼저 시작한 일은 게스트하우스였다. 생각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초기 자금이 필요했다. 방비엥에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2년 동안 하루도 안 쉬고 하루 20시간 이상씩 일했다

“유기농법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주민이 함께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이곳 주민은 나무를 연료로 사용한다. 지역 정부는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금지한다. 무작정 그렇게 금지하는 것은 절대로 지키지 않는다. 바이오메탄가스 등 대체에너지를 제시해 주고 그들 스스로 해결 방식이 무엇인지 듣고 이해하고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셍키오는 방비엥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영어교육에 힘쓰는 것도 이와 관련한 측면이 강하다. 점점 더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면서 방비엥은 그저 그런 관광지로 전락하는 중이다. 만일 방비엥 사람들이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다면, 관광객이 와서 지양해야 할 행동을 알려 주고 지역 문화를 설명하며 존중해 줘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는데, 가끔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먼 곳까지 여행을 와서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만 하다가 돌아가는 것이 이상하다. 만일 우리가 한국어를 잘하는 인력을 양성한다면 공정한 파트너십을 맺고 우리 지역을, 우리의 삶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언어는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생각에서 그는 처음 문을 연 식당 한쪽에 칠판을 걸어 두고 동네 아이들 몇몇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 식당을 물어물어 찾아왔던 외국인이 이 모습을 보고, 아이들에게 영어 가르치는 일을 같이하고 싶다며 다가왔다.

프랑스인이었던 아나이스다. 2006년이다. 고향에 돌아온 지 3년 후의 만남이 지금의 새 라오를 만들었다. 논의를 시작한 지 2년 후인 2008년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셍키오는 새 라오 프로젝트 활동 외에도 라오족 영어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방비엥오르가닉팜에서 설힙한 협회 EEFA(Equal Education For All) 이사도 맡았다.

새 라오 프로젝트를 시작한 셍키오

스위스에서 온 자원봉사자

초기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지은 숙소로 현재는 리모델링 중이다

“방비엥 지역이 관광도시로 변모하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외국인을 막을 수 없다면 단절 없이 제대로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어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문화교류가 필요하다.”

셍키오는 여전히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새 라오 프로젝트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상당한 자율성을 지닌 채 운영한다. 이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으로도 작용한다. 현실적으로 장기 자원봉사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고 대부분 짧은 일정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단기 자원봉사자를 유지하는 데는 비용도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새 라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는 참가비를 내는데, 짧은 기간 머무는 봉사자에게 더 많은 비용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주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소득 향상 등과 연결을 시켜야 설득이 가능하다. 또 새 라오는 NPO(Not for Profit Association) 지점이다. 라오스 정부는 아직 관련 법제가 충분하지 않다. 관련해 지역정부를 설득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와 만난 곳도 새 라오 유기농 식당이었다. 대화를 마무리할 때쯤 점심시간이 다가왔고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외국인 자원봉사자 사이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식당에서 고용한 라오스 사람 몇몇이 움직였지만, 셍키오가 자리에 앉자 비로소 공간이 완벽하다.

식사를 하며 셍키오는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나의 꿈은 이익을 모든 사람과 나누고, 환경을 지속가능하게 보존하고, 법을 지키면서, 우리 커뮤니티가 대화를 나누며 함께 일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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