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5호] 즐거운 나날 이었다_9월의 책

즐거운 나날 이었다 - 대전시민아카데미가 소개하는 9월의 책

〈실업〉,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여림 유고 전집》, 여림, 최측의 농간, 2016, 22쪽.

언젠가부터 우리는 ‘고독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6년 제10회 대전독립영화제의 일반대학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은 박상현 감독의 〈섬〉이다. 고독사한 사람들의 사체와 유품을 정리해 주는 유품정리인 선태가 주인공이다. 가족도 없이 홀로 방에서 죽어 간 사람들과 같이 선태 역시 외로운 ‘섬’중에 하나이다. 그런 외로움과 죽음, 그리고 외로운 죽음은 언제나 도처에 있어 왔다. 주변의 수많은 외로운 섬들 중 하나는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의 여림이다.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은 여림의 두 번째 책이다. 여림은 1967년에 태어나 2002년에 세상을 떠났다. 본명은 여영진이며 필명은 스승인 최하림 시인의 끝자를 따왔다.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은 출판사 ‘최측의 농간’에서 나왔다. ‘최측의 농간’은 이미 절판된 양서를 다시 펴내 사람들이 널리 읽었으면 하는 의도에서 책을 출판한다. 여림의 절판된 책은 2003년, 고인의 1주기를 맞이하여 나온 유고시집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이다.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에서는 그 시집의 시를 포함하여 시집에 실리지 못했던 다른 유작들을 함께 묶어 냈다. 책의 이름은 여림의 한 미완성 유작의 제목에서 가져왔다.

‘1부-시’는 크게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에 실렸던 시와 ‘새로 싣는 유고 시’로 나뉜다. 여림의 시 전반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고립에 의한 상처와 세상에 대한 사랑이다. 여림에게 단절은 죽음이다. 〈지하철 묘지〉에서 볼 수 있듯 그에게 ‘어두움이 주는 깊이는 곧 현실과의/괴리감’이며 ‘그 단절된 시간들은/죽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마음의 신발’에서는 집, 텔레비전, 가족을 통해 시인이 느끼는 단절을 표현했다. 전화기마저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혼자 울고 있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켠’ 화자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저들의 나이와 경력과 특이한/버릇이나 취미까지도 알고 있는데’, ‘저들은 나를 모른다’며 리모콘을 바닥에 버린다. 그리고 ‘텔레비전 속에 아무도 살지 않듯/집에도 아무도 살지 않는다’며 가정이 아닌 주택으로서의 집을 ‘집이라 부르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아 치울 수 있는 신발’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다〉에서는 시인의 고립이 한층 더 강렬하게 나타난다. ‘전화는 언제나 불통’이고 ‘사람들은 늘 나를 배경으로’ 지나간다.

고립에 의한 상처는 곧 실존주의적 회의로 이어진다. ‘살아 있는 날들이 징그러웠다’(77쪽,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다)고 내뱉으며, ‘살아 있다니/…그건/참으로 끔찍하기까지 한 현실이었다’(49쪽, 손가락들이 봉숭아보다 붉어서 더 아프다)며 자신의 회의를 드러낸다. 또한 ‘대체로 사는 건 싫다’(57쪽, 대체로 사는 건 싫다)며 마치 삶을 등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다〉에서 ‘비상구마다 환하게 잠겨진 고립이/눈이 부셨던’것처럼 ‘하늘에 떠 있는 섬’(160쪽, 태양은 하늘에 떠 있는 섬)인 태양 역시 ‘눈부신 외로움’이다. 이다음 행에서 ‘세상의 모든 빛있는 것들은 외로운 法/세상의 빛없는 것이 어디 있으랴/사람아/네 눈동자에서 발하는 빛을 발견하고/나는 또다시 외로워졌다’고 말하며 실존에 대해 다시 말한다. 사람은 모두 외롭다. 나 역시 외롭고, 섬이지만 세상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이웃 섬으로 떠 있는’(53쪽, 무인도에서 일일)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은 눈이 부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에게 세상은 ‘너무도 아름’답고 ‘눈물이 솟’는 곳이다.(175쪽, 나의 하루)

여림의 시는 삶이 사무칠 만큼 외로움에도, 전화는 언제나 불통이고, 사람들은 나를 배경으로 지나가서 살아 있는 것이 징그럽고, 사는 것은 대체로 싫음에도, 살아 있고 싶은 절실함에서 나온다.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에서는 ‘살고 싶’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있고 싶’지만 ‘손뼉을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시인은 ‘지는 저녁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하다’ 손목을 끊지만, 이내 ‘손수건으로 꼭, 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매고’,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울’었다. 최하림 시인의 발문에 나오듯 그것은 감상적인 넋두리가 아닌 현실이다. 〈겨울, 북한강에서 일박〉에서는 ‘너도…살고 싶은 게로구나’ 하며 북한강 대신 본심을 말해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는 것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희망이 유급당하는/그러나 사랑하는 나의 땅에서’(106쪽, 예하리에서), ‘살아가는 일이/ 한기 첩첩한’일임에도 “‘살아야 한다’를 ‘살아야겠다’로 수정한다”(114쪽, 길)

‘2부-산문’에서는 시인의 당선 소감, 시작을 위한 메모들, 그리고 편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여림은 1999년 〈실업〉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2002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어떤 지면에도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1999년 2월 3일 아침 04시 44분〉에 ‘시인이 되고 싶었을 따름이지 시인으로서 굳이/어떤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구절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마당의 끝이 바다였던 집〉과 〈자기소개서〉에서는 시인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를 쓰게 된 계기, 출판에 대한 애정과 우려,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을 담담하면서도 분명하게 표현했다.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은 그런 것이다. 빗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에 비친 하늘, 그 하늘의 모습 때문에 빗물인 줄 알면서도 밟고 마는 것, 그리고 계속 가는 것. 여림이 ‘나는 이 길의 주인이며 동시에 이 길의 주재자인 것이다’라고 말했듯 우리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글 대전시민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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