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4호] 오늘은 여기에 '갈랭'

오늘은 여기에 '갈랭'
큰마을네거리에서 줄줄이 늘어선 식당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갈마2동 주민센터가 보인다. 그 골목으로 계속 들어가면 왼쪽 오르막길에 냉면을 들어 올리는 젓가락 모형간판에 시선이 향한다. 그곳에 ‘갈랭’이 위치한다.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갈마중로 38번길 6 제일교회교육관 맞은편 해바라기마트 뒷건물
문의 : 042.523.8202

갈마동 골목 곳곳은 원룸 빌딩과 식당으로 빼곡하다. 식당이 많다고 해서 소비자의 선택폭이 다양해지는 것은 아니다. 비슷비슷한 식당들 때문에 고민만 늘어날 뿐이다. 그중에서도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를 피해 많은 사람이 찾는 냉면 가게는 한 건물 건너마다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화된 특색으로 갈마동에서 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갈랭’이 있다. ‘갈랭.’ 처음 보는 이 단어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갈비와 냉면에서 앞 글자를 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어떤 메뉴를 팔고 있는 곳인지 파악하기 쉽고 고민 없이 결정할 수 있다.

마치 정해진 규칙처럼 여름이면 모두가 냉면을 찾는다. 그렇게 사람으로 가득 찬 냉면가게에 들어서면 정신이 없어져 서둘러 먹고 자리를 비켜 줘야 할 것만 같다. 부담 없이 들어갈 수는 있지만 마냥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는 곳이 보통의 냉면가게가 주는 인상이다. 그런데 이곳의 첫인상은 달랐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덕분에 메뉴판을 보지 않는다면 카페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들 정도로 아늑함이 느껴졌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점심이 지난 시간이었지만 냉면을 찾는 손님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이곳은 냉면과 갈비, 불고기 등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저렴한 가격으로 냉면과 갈비를 함께 맛볼 수 있는 세트 메뉴가 있는데 가장 인기 있는 석갈비 세트를 주문했다.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육수가 먼저 나왔다. 함께 주는 따뜻한 사골 육수에는 깊은 맛이 느껴졌다. 뒤이어 냉면과 석갈비가 나왔다. 깔끔한 육수 속에 자리 잡은 면발은 얇지만 부드럽고 쫄깃했다. 주전자에 담긴 육수와는 또 다르게 냉면 육수에는 새벽에 나와 오랫동안 우린 고기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섞었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인공적인 감칠맛 대신 재료의 본 맛이 난다. 그래서 더욱 시원했다. 뜨겁거나 얼큰한 음식을 먹고 땀을 뻘뻘 흘리며 느끼는 시원함과는 다르게 말 그대로 온 몸에 차가움이 전해졌다. 냉면에 들어간 고기는 삶은 후 손으로 직접 찢어 넣었는데 손이 많이 간 만큼 정성이 느껴졌다.

석갈비는 부추와 양파가 깔린 냄비 위에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잘려 나왔다. 함께 나온 파인애플 덕분에 더욱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고기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의 종류도 다양해 취향대로 다양하게 석갈비를 맛 볼 수 있었다. 음식은 전체적으로 담백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심심한 이 맛이 진정한 함흥냉면의 맛이다. 이 담백한 맛의 여운이 오래갔다.

음식뿐만 아니라 가게 내부 곳곳에서도 신경을 쓴 듯했다. 벽면에 그려진 냉면과 관련된 그림이나 붉은 톤으로 조명과 의자에 포인트를 준 인테리어가 독특한 분위기에 한몫한다. 무엇보다도 테이블마다 비치한 핸드폰 충전기와 넉넉하게 준비한 아기용 의자가 돋보인다. 이런 배려심은 ‘갈랭’을 운영 중인 김현승 씨의 고민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사실 김현승 씨는 다른 사업을 운영하다 호텔에서 함흥냉면을 전문적으로 만들던 친구와 함께 3년 전 이곳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가게를 운영하기 전에 했던 사업은 요식업과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갈랭’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랐어요. 그래서 가게의 운영 방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냉면가게 하면 투박함이 떠오르잖아요. 그러한 이미지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했어요.”

끊임없는 발전의 결과물로 현재의 ‘갈랭’은 기존의 냉면 가게들 사이에서 차별화된 특색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어도 사람들은 찾아왔고 단골도 생겼다. 특히나 ‘갈랭’의 담백한 맛에 끌려 멀리서 찾아오기도 하고 심지어 일주일에 다섯 번을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찾아오는 손님에 대한 보답으로 ‘갈랭’은 냉면을 주문하면 사리를 무제한으로 리필해 준다.

글 사진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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