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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4호] 눈초리에 걸린 마음
마당이 있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어느 날부터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더니 그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한 마리 키우지 않겠냐고 물어 오셨 다. 아주머니와 길고양이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고 한다. 초췌하고 며칠 굶주린 듯한 표정에 경 계의 눈초리로 문 앞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 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음식물을 챙겨 주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그 고양이는 자주 들락거렸고, 마침내 그 집의 마당 한편에 번듯한 자기 집까 지 갖게 되었단다. 그 고양이가 새끼를 네 마리 나 낳았는데 어린 것들이 얼마나 이쁜지 모르겠 다고 마치 손주를 얻은 듯한 들뜬 표정으로 한 마리 키워 보라고 권하셨다.
마당이 있던 집에 살 때, 나도 잠깐 한 달 된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던 적이 있다. 재롱이와 뚱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두 놈을 키우면서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게 되었다. 여러 시인들이 고양이의 그 섬세함에 대해 예찬하는 글들도 눈에 들어왔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고”, “금방울과 같은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봄의 불길이 흐른다”고 한 이장희 시인의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고양이는 종종 개와 비교되곤 한다. 표정은 새초롬하고 도도하다. 도무지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개처럼 꼬랑지를 흔들지도 않는다. 몽둥이로 얻어맞아도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다시 찾아오는 개의 습성에 비하면 고양이는 거만하고 불손하기까지 하다.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개는 길들인 가축이 된 것이고, 고양이는 사람과 공간을 공유할 뿐 들짐승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눈동자는 세로로 세워져 있기에 매섭고 날카로워 정이 가지 않는다. 발정기에는 수컷을 부르는 교교한 울음소리가 처량하다. 그 울음소리는 흡사 아기울음과도 같아서 소름이 돋기도 하여 혐오감을 주기 십상이다.
그래서 고양이를 애완동물로서는 편견 없이 바라보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고양이를 키워 본 이들은 고양이가 결코 주인을 무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주인의 배려와 사랑 그리고 관심에 대해서 보답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은혜에 보답하는 충성으로 말하자면 그 어느 동물에도 못지않다. 고양이는 잘 알려져 있듯이 쥐잡기에 명수로서, 주인을 위해 사냥한 쥐들을 전리품으로 주인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보란 듯이 늘어놓기도 하는 것이다.
나에게 고양이 한 마리 키워 보라고 권한 그 이웃이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처음 고양이가 먹이를 찾아왔을 때에는 눈초리의 양 끝이 위로 치솟아 사나웠다고 한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먹이를 주면서 “왔니?” 하고 말하면 “야웅!” 하고 응답을 주고받는 동안 고양이의 눈초리는 어느새 그 끝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고양이 눈초리 이야기는 그 아이의 눈초리를 떠올리게 했다. 작지만 날카로운 눈매, 처음 보았을 때에는 경계의 눈초리에, 누구든 먹잇감이다 싶으면 공격성으로 두 눈이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게다가 상습적인 사회적 비행력이 있으니 누구에게라도 경계와 방어의 눈빛으로 대하곤 했다. 함께 생활하는 동안 그 아이의 몸에 밴 고질적인 절도 등의 행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행동이 필요 없는 환경 탓도 있지만,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선생님들과 더불어 모든 일상을 주고받으니 이전의 행동을 되풀이할 기회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화로서뿐 아니라 몸으로 서로 부대끼며 감정적인 교감과 정서적 결핍을 조금씩이지만 메워 나갈 수 있었던 영향도 있다. 안정된 환경과 마음 편안한 공간에서 지내는 동안 이전의 언행을 되풀이할 환경을 잊어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아이의 눈초리는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바뀌어 갔다.
태어나서부터 세 살 때까지는 부모 특히 엄마의 전폭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그러한 돌봄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살아온 10여 년 이상의 성장기 과정에서 집보다 길거리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음을 생각한다면 그의 눈초리가 경계심과 적개심이 가득하고 날카롭게 올라가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스스로 생필품을 얻기 위해 각종 손기술을 익혀서 써 먹어야 생존이 가능했던 아이다. 지켜야 할 생활규칙이 많은 이곳의 생활이 처음에는 답답하다고 했지만, 함께 생활하게 된 지 3개월이 지나가니, 아이의 눈초리가 달라져 있었다. 얼굴 표정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친구들과도 편안하게 어울리게 되었다. 경계해야 할 사람들, 눈독을 들여야 할 물건도 줄어들면서 그 아이의 경계심도 누그러들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눈빛도 눈초리도 부드럽게 바뀌어 간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