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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4호] 여름에도
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여름에도 연애를 해야 한다
여름에도 별안간 어깨를 만져봐야 하고
여름에도 라면을 끓여야 하고
여름에도 두통을 앓아야 하고
여름에도 잠을 자야 한다
잠,
잠을 끌어당긴다
선풍기 날개가 돈다
(박준, 〈여름에 부르는 이름〉 부분,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2, 58~59쪽)
박준은 83년생이다. 목련꽃이 화려하게 프린트된 연보라색 표지 때문에 시집을 집었다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제목에 그만 마음이 움직여 책장을 넘긴다. 그가 83년생이라는 걸 발견하고는 괜히 반가워, 구매를 최종 결정한다.(나도 83년생이다.) 2012년에 발행한이 책은 그 사이 무려 31쇄나 찍었다. 아마 나만 모르는 시인이었나 보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여름에 부르는 이름〉과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라는 두 시 가운데서 잠깐 고민했다. 그러다가 여름이니까, 하고 전자를 택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좋지 않은 세상에서/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땅이 집을 잃어가고/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아득하다(22~23쪽)”
이 시집은 슬픔을 자랑 삼는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던/당신의 연음(延音)(〈당신의 연음(延音)〉)”을 생각하기도 하고, “여자의 눈 밑에 난/작고 새카만 점에서(〈유월의 독서〉)” 한 1년을 살기도 하고, “잉어 입술처럼/귀퉁이가 헐은/파란 대문 집(〈낙(落)〉)” 안으로 아버지가 잉어를 잡아 왔던 일을 기억하기도 한다. 이 좋지 않은 세상에서 시인이 골몰하는 건 슬픔이다. 이 슬픔의 기록은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문장처럼 아름다워야 하고 그래서 또 아름답다.
〈여름에 부르는 이름〉을 읽노라면 한 무더운 여름날 방 안을 서성이는 사람이 연상된다. 그는 “기침은 내가 억울해하고/불안해하는 방식”이라 한다. 그리고 “모두 보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불안해하거나, 억울해하거나, 또 슬퍼한다. 어쩌면 슬픔이야말로 존재의 양식. 여름에 어떤 식으로도 피할 수 없는 더위를 견뎌야만 하듯이, 슬픔을 고스란히 감내하며 살아간다. 각자 따로.
그래서 “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여름에도 잠을 자야 한다”라고 읊는 시인의 목소리가 이렇게 들리기도 한다. 슬픔에도 이름을 부르고, 슬픔에도 연애를 해야 한다. 슬픔에도 별안간 어깨를 만져봐야 하고… 한여름 무더위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는 ‘잠’. “오래된 잠버릇이 당신의 궁금한 이름을 엎지”르는 것처럼, 이 모든 무더위와, 억울함과, 불안과, 슬픔은 오직 잠으로 해결된다. 그래서 여름에도 잠을 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