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4호] 믿을 수 없이 가까이에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믿을 수 없이 가까이에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천연기념물 괴곡동 느티나무로 잘 알려진 괴곡동은 회색빛으로 가득 찬 아파트 숲을 지나면 만날 수 있다. 마을을 가득 메운 벽화, 재치 있는 문패, 웃음이 끊이지 않는 노인 회관, 낯선 이에게 먼저 손 내미는 주민. 도심 가까이에 자리한 인정 많은 마을은 쉬이 사람을 내치지 않는다.

괴곡동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킨다

마을에는 이야기도 많지

가수원 사거리는 아파트와 상가단지로 숲을 이뤘다. 높은 마천루를 자랑하는 도안동 아파트 단지와 관저동 주거타운, 도안신도시가 개발되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대형 상가단지에는 각양각색의 프랜차이즈가 빼곡하다. 사거리에서 흑석동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간다. 도로에 놓인 ‘괴곡동 느티나무 가는 길’ 표지판을 확인하면 괴곡동으로 향하는 길이 더 분명해진다.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초록빛 숲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가수원 사거리에서 차로 10분 남짓. 괴곡동이 모습을 드러낸다. 괴곡동은 괴곡리와 선곡리로 나뉘는데, 이 두 마을 사이에는 철로가 놓여 있다. 이따금 광음을 내며 기차가 빠르게 마을 사이를 가로지른다. 마을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은 마을 위에 자리한다. 마을이 국도 아래에 있다고 하는 게 더 맞는지도 모른다. 정류장에서 꽃 그림으로 단장한 계단을 따라 괴곡동 마을로 들어가니 오른편에 자리한 평상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인절미와 고구마를 사이에 두고 주민이 여럿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낯선 이의 등장이 어색하지 않은 어른들이 내게 먼저 이리 오라며 손짓한다.

“요즘 젊은 사람은 아침 같은 거 안 챙겨 먹지? 어여 와서 이거 하나 입에 넣어.”

주민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넘친다

평상에 앉아 있던 김영월 할머니가 인절미 하나를 툭툭 털어 입에 쏙 넣어 준다. 하나, 둘, 셋, 넷. 이근난, 박가자, 하은덕 할머니가 입에 넣어 주는 떡을 받아먹다 보니 허기진 배가 두둑해진다. 할머니들은 오늘 외부에서 온 손님이 많다며 마을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괴곡동에서는 매년 칠월칠석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700년이 넘은 괴곡동 느티나무 아래에서 제를 지낸다. 이 나무는 대전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로 지난 2013년 7월 천연기념물 제545호로 지정됐다. 매년 봄에 주민이 이곳에 모여 한 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하는데 느티나무 이파리가 전체적으로 잘 나면 그해는 풍년, 군데군데 이파리가 나면 그해는 농사가 가문다. 올해도 어김없이 제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고, 이를 돕기 위해 이따금 외부인이 마을을 찾는다. 오늘은 구청에서 마을 이야기를 알리기 위한 사진을 촬영하러 나왔다고 한다. 3년 전에는 마을을 가꾸기 위해 벽화를 그렸는데, 젊은 친구들이 와 집에 예쁜 그림을 그려 줬다며 웃는다. 나는 떡과 함께 할머니들이 해 준 이야기를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정이 많은 동네는 찾는 이가 많지

“곡동아~ 곡동아~ 흑흑흑흑흑”

칠월칠석 행사 이야기를 하던 중 하은덕 할머니가 마을 이야기로 만든 인형극 한 장면을 보여 준다. 두 팔을 어깨높이만큼 오른쪽으로 든 할머니는 곡동이가 놀림 받고 슬퍼하는 모습이라며 웃는다. 평상에 앉아있던 관객이 손뼉을 치며 함께 따라 웃는다.

“우리가 다 배우야. 행사 때나 마을에 손님이 오면 마을 이야기로 인형극을 하는데, 우리가 다 거기 출연해. 얼마나 재밌는지 이번 칠석에 와서 한번 봐.”

한참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던 주민들이 점심때가 되었다며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점심 전에는 노인회관에서 춤 강의를 진행하는데 여기에 꼭 참여해야 한단다. 여느 마을처럼 노인회관이 괴곡동 사랑방인 셈이다.

윤여승 씨가 만든 작은 박물관

괴곡동 남자들은 대를 이어 이곳에서 지낸 사람이고 여자들은 모두 시집와 살기 시작한 사람이다. 이근난 할머니가 지금은 세종시가 된 공주시 금남면에서 이곳으로 시집온 지 50년이 넘었으니 주민 대부분이 못해도 50년은 한곳에서 살을 맞대고 살아왔다. 함께 살아온 세월이 길다 보니 옆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는 법이 없다.

윤여승 노인회 회장은 몇 대부터 이 마을에 살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살아왔다. 이곳이 대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동네라고 말하는 윤여승 회장은 무엇보다 사람이 좋아 괴곡동이 좋다.

“여기 마을 뒤에 가면 유치원 텃밭이 있는데 거기 한번 가 볼텨?”

노인회에서 어린이를 위해 가꾸기 시작한 텃밭을 보여 주겠다며 윤 회장이 길을 나선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매년 유치원생 200여 명이 구봉산 아래에 자리한 이 텃밭을 찾는다. 함께 씨를 뿌리고 가꾸고, 추수 때가 되면 아이들과 옥수수를 쪄 먹는다. 텃밭을 구경하고 나니 윤 회장이 자랑스럽게 집 마당에 마련한 오래된 농기구 박물관으로 안내한다. 마당 한편에 가지런히 정리한 오래된 농기구는 윤 회장의 작은 박물관이다. 선조로부터 대를 이어 내려온 농기구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간직했다. 기술이 발전하며 모습을 달리한 탈곡기도 세대별로 모아 놨다. 한참 동안 농기구 설명을 듣고 있는데 집 안에서 아내 이현순 씨가 호박즙을 손에 쥐고 나온다. 윤 회장이 “곡동이야, 곡동이”라며 아내를 소개한다. 드디어 주인공이 나타났다.

가지런한 농기계 뒤로 작은 텃밭이 보인다

능력만큼 일하고 함께 나눴지

시원한 호박즙으로 목을 축이고 마을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대문 옆에는 그림보다 재미있는 문패가 달려있다.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집, 가족 많은 행복한 집 등 문패에 적힌 문구는 집주인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마을을 구경하는데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공장 소음 같은 기계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가 집 마당에 앉아 농기계를 고치고 있다. 문패에 눈길을 돌리니 ‘맥가이버 집’이라고 적혀 있다. 한참을 농기계와 씨름하던 맥가이버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노인회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노인회관 근처에 가니 밥 짓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냄새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막 춤 강의를 마친 주민이 식사를 준비한다. 괴곡동 마을 주민은 노인회관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데, 주민 사이가 이토록 돈독한 데에는 영농조합법인 ‘고릿골’의 역할이 큰듯했다. 괴곡동은 대전추모공원(시립공동묘지)을 설립하는 일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로인해 마을 이미지가 훼손됐고 분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9년 주민이 마을운 영위원회를 구성해 마을 주민 전체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영농조합법인 고릿골을 설립했다. 이들은 추모공원을 마을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결과로 공원 공사와 관리에 마을주민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참여하기 시작한다. 작업의 종류와 난이도에 따라 각자 할 일이 정해진다. 박가자 할머니의 경우에는 이곳에서 풀을 뽑고 조경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렇게 마을 주민이 땀을 흘려 함께 관리한 추모공원 관리기금은 마을 공동 예산으로 사용한다. 마을 공동 작업장을 운영하고 값비싼 농기구를 마을에서 구매해 공동보관, 임대한다. 아마 맥가이버가 손보던 농기계가 마을 공동 농기구였나 보다. 또한 고릿골은 공동 사업으로 손이 필요한 농번기에 서로 일을 도왔던 옛 전통 두레를 이어 오고 있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능력만큼 일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니 작은 마을 주민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무지개 피는 집에는 무지개보다 선명한 고추가 피었다

기차가 괴곡동 마을을 가른다

주민들에게 고릿골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금세 밥상이 차려졌다. 각종 나물 반찬과 따뜻한 밥, 한상 거하게 차려진 밥상이다. 이번에도 주민들은 낯선 이에게 먼저 손짓한다.

“그냥 가면 쓰나. 어여 앉아서 먹고 가.”

글 사진 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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