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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4호]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아도 된다_윤대진 팀장
‘경청과 환대’학교 윤대진 팀장
대전광역시교육청여학생가정형Wee센터 ‘경청과 환대’학교(이하환대학교)는 건물 4층과 5층에 자리했다. 4층 입구에는 신발이 가득하다. 아이들의 숙소일까? 선뜻 들어서기가 망설여지는 뭉클뭉클한 공동체의 응집력이 느껴진다. 머뭇거리다가 5층으로 올라간다. 계단을 다 오르자 누군가 인사를 건넨다. 하얀 옷을 입은, 머리를 박박민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외모다. 얼굴에서 하얀 빛이 난다. 환대학교 윤대진 팀장이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몇몇 학생과 선생님이 식당으로 모여든다. 정성껏 준비한 몇 가지 음식이 넓은 접시에 푸짐하게 담겨 있다. 조금씩 덜어, 마주앉아 식사를 든다. ‘집밥’이다. 환대학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 중 하나다. 음식, 따뜻한 음식이 거기 있었다.
환대학교는 2012년 개소했다. 대전시교육청에서 지원하고 성공회대전나눔의집에서 운영한다.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 친구들에게 교육권, 학습권, 주거권을 보장해 주려 한다. 위센터의 ‘Wee’는 We(우리들)+Education(교육)+Emotion(감성)을 합친 말이다. 아이들은 교사의 추천으로 환대학교를 찾아오거나, 부모가 문의해서 이곳을 찾기도 한다. 학교장이 추천하면 환대학교가 허가한다. 아이, 부모, 교사, 모두의 동의가 있을 때 심사를 통해 이곳에 머물게 되는데, 출석으로 인정받는다. 열다섯 명이 정원이며 3개월이나, 6개월 정도 머문다. 그 기간 동안 먹고 자고 공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한다.
환대학교는 보호, 상담, 교육, 세 가지 일을 한다. 그리고 세 가지 실천 가치가 있다. 첫째가 음식이다. 엄마 젖 같은 따뜻한 음식을 재현한다. 둘째 공간이다. 엄마 뱃속은 가장 행복한 공간이다. 태어나 경험한 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엄마의 뱃속같이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 한다. 셋째 사람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의 교류로 세상과의 무너진 애착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환대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자신의 쓸모를 발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좋은 성적이나, 원만한 교우관계 등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먼저 회복이 필요하다. 윤대진 팀장은 하루하루, 여기서 즐거울 수 있다면 삶을 회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환대학교는 배움의 즐거움을 회복하기 위한 교육을 모토로 삼고 있다. 맨날 논다. 놀아야 즐겁다. 사람들은 걱정한다. 맨날 노니까. 공부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중요한 건,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그러면 학교에서 할 일은 다했다.
윤대진 팀장은 청소년들과 함께한 지 10년이 되었다. 청소년 쉼터에서 가출한 아이를 돌보는 일부터 시작했다.
“유년시절 아버지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잘 살았죠. 그런데 중학교 때 아버지가 허리를 다쳐서 누워 계셨어요. 아버지가 아프고 나서 너무 차가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걸 느꼈어요. 저도 아버지를 적대시하고 미워하게 되었죠.”
청소년기에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 후로 대학교 건축과에 입학했고, 재능도 있었지만 2학년이 지나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독교학과를 부전공으로 이수하고, 철학과 수업도 많이 들었다. 군대에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상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스스로를 통찰할 수 있었다.
가출 청소년들과 함께 캠프를 갔다. 그곳에서 한 아이가 아버지에게 그동안 응어리졌던 말을 풀어놓고, 아버지와 화해했다. 그 모습을 본 후 윤대진 팀장도 아버지와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 세월 묻어 두었던 마음의 짐을 덜었다. 그렇게 함께 성장하며 4년 정도 가출 청소년들과 상담도 하고, 함께 뒹굴며 살았다. 그 시절은 상담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만나던 시기였다.
윤대진 팀장은 시간이 흐르며 상담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일 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아이에게 오토바이 사고가 난 적이 있어요. 저는 열심히 일하는데 아이들이 좋아지지 않으니까, 힘들었어요.” 그 후로 그는 대안교육 시범 사업일 쪽으로 발령이 났다. 대안학교를 경험하며 가정형 위센터 준비를 도왔고 지금의 환대학교 일을 하게 되었다.
“노는 거에 집중해요. 어떻게 아이들이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더 이상 이 일이 괴롭지가 않았어요.”
상담은 중요하지만 상담이 전부는 아니었다. 문제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지금 주어진 행복에 집중하면서 삶의 기쁨을 발견하는 그 과정이 교육이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일,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소년원 들어갔던 친구가 있어요. 오랜만에 연락이 왔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었어요. 그 친구가 여자친구를 4년 사귀었는데 헤어져서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230만 원을 벌어서 저금을 150만 원 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이 정도면 훌륭하게 사는 거 같다고 말하는데, 정말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았어요. 너무 좋아서.”
환대학교 수업시간표를 들여다보는데, 예술, 공예, 몸놀이, 인문학, 상담, 봄캠프, 로드스쿨, 발표회 등 일반 학교의 수업시간과는 다른 과목(?)들이 눈에 띈다. 모두가 잘 놀기 위한, 그리고 잘 어울리기 위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이 세상을 잘 이해하기 위한 시간들로 보인다. 윤대진 팀장에게 묻는다. 저도 입학할 수 있나요? 여기를 방문하는 어른들이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현재의 행복을 배우기 위해 아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시간이 필요했다. 기성 학교와 사회에서 해 주지 못한 것들을 이곳에서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해서 괴롭고 불행하게 살아요. 나답지 못하게 살아서 불행한 경우가 많아요. 나다운, 내 속에 있는 걸 표현하는 거, 나를 표현하기 좋은 활동을 해야 하죠. 미술과 음악이에요. 둘 다 싫어하는 애는 거의 없어요. 자신을 표현해 줄 수 있다면, 박수쳐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남이섬 버스킹을 기획했어요. 먼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어요. 마마세이뮤직스쿨이라는 음악 대안학교가 있어요. 이 학교의 모토가 ‘지구에 단 하나뿐인 학교’예요.”
음악학교 학생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함께해 주기로 했다. 2박 3일로 캠프를 가기로 했다.
“반대하는 선생님들을 설득했어요. 1박 2일로 가자는 걸 2박 3일로 설득했고요.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워져요. 이틀과 삼일이 달라요.”
아이들이 직접 여행을 기획했다. 뭘 먹을지, 어디를 갈지, 누구를 만날지 아이들이 정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계획한 걸 하면서는 불평하지 않아요. 맛이 없어도 가만히 있어요.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는 거죠.”
몇 팀으로 나누어 아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캠프를 진행한다. 남이섬 버스킹을 진행하며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남이섬 버스킹을 준비하며 알아보니 기타는 쓸 수 있지만 엠프 사용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도 일단 들고는 갔죠. 엠프를 쓰지 않으면 버스킹이 어려워요. 소리가 안 나서.”
유모차에 엠프를 넣고 아기를 안고 들어갔다. 버스킹을 시작했고, 남이섬 담당자가 와서 안 된다고 했지만 윤대진 팀장이 설득하고 달래는 사이,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그 담당자분도 마냥 재촉하지는 않았다. 학생들 한 명만 빼고 모두 다 노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캠프의 하이라이트는 또 있었다. 한 달을 비밀로 한 프로젝트였다. 사람책이라는 모티브로, 한 사람을 초대했다.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몰랐다. 뭐 하는 사람 같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목사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가 〈오솔레미오〉를 부르는 순간 모두 할 말을 잊고 그 순간에 집중했다. 강내우 테너였다. 마침 그는 가평에 살고 있었고, 윤대진 팀장의 편지를 받고, 그날의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서도 학생들을 만나러 와 주었다. 윤대진 팀장이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섭외한 성악가였다.
“가슴이 꽉 차는 시간이었어요.” 아이들은 그렇게 행복을 각인했다.
경청과 마마세이 환대학교 캠프의 남이섬 버스킹
윤대진 팀장, 아이들과 함께 버스킹을 준비하다
윤대진 팀장은 자신이 우는 걸, 한 시간가량 누군가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었는데 그것이 생애 최고의 상담이었다고 한다.
“대학교 때 교회에서 만난 전도사님이셨어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한참 같이 있다가, 그분이 잠깐 우시는 걸 봤어요. 나와 같이 있구나. 제가 첫째라서 어려운 걸 잘 표현 안 하는데, 그분 앞에서 그렇게 했어요. 상담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대화가 아닐 수 있어요. 그 영혼하고 같이 있을 수 있고, 그 영혼을 붙잡고 있다는 것만 공유할 수 있다면요.”
‘영혼을 붙잡는다’는 말. 마음이 뿔뿔이 달아나는 어떤 시기들이 있다. 그때 누군가 간절히 부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그 무언의 외침을 가만히 듣고, 그 흩어지는 마음들을 가만히 붙들어 줄 수 있을까. 그 어려운 시기에 윤대진 팀장을 만난 청소년은 그래도 참 다행이었겠구나 싶었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 주려고 했어요. 해결해 주고, 도움이 돼 주고 싶었고요. 그런데 그게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서 찾아와 나눌 수 있는 하나의 추억이 되는 거죠.”
형편이 어려운 초등학교 아이들이 함께하는 캠프에 골초인 학생 두 명을 데리고 간 적이 있다. 그 학생들은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하며 며칠 동안 담배를 완전히 잊었다. 정말 재미있게 노느라고 그랬다. 문제를 잊기 위해 필요한 건, 놀이였고 즐거움이었으며 또 다른 가치 있는 몰입이었다.
“여행이 중요한 변화의 포인트가 되었어요. 학생들 데리고 열흘 정도 공감만세랑 필리핀에 갔어요.
한 달간 비밀로 한 강내우 테너의 등장
그곳에는 ‘나’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국에서의 나를 모르는 거죠. 그런 현지인과의 편안한 관계 속에서 열흘간 있다가 왔어요. 공감만세 프로그램이 있지만 미리 양해를 구해서 좀 여유 있게 다녀왔어요. 마치 시간이 멈춘거 같았죠. 억압이 없는 여행이었어요. 2013년 남학생 가정형 위센터 친구들과 필리핀 이푸가오와 바공실랑안 등을 여행했어요. 제가 감을 잡는 포인트였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아이들에게 굳이 무언가를 해주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렇게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여러 지점들을 거쳐 10년이 흘렀다. 아이들도 성장했고 그도 성장했다. 그리고 머리털이 빠졌다.
“머리털이 빠진 건 성심껏 일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그런데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내 본질은 뭘까, 하는 생각들이 들기도 해요.”
윤대진 팀장은 10년을 일하면서 돈도 없고 머리털도 없지만 몇 명의 청소년들과 공유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있다는 게 좋다고 했다. 그리고 일하면서 알게 된 선한 사람이 있어서 좋다.
“이런 윤대진의 인생을 평생 살거 같아요. 인생에 대한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거요.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거. 이런 방향은 계속 쭉 갈 거 같아요.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욕심 내지 않고.”
이 말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야말로 정말 큰 욕심이 아닌가. 아마 그가 말한 욕심은, 세속의 부귀영화를 뜻하는 말을게다. 그런데 정말이지 큰 욕심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닐지…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은 언제나 작은일에서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과 함께한 10년을 기념하는 그의 이벤트는 작지만 크다.
-선생님 일한 지 10년 되었다. 얘들아 같이 밥 먹자.
이런 문자를 보내, 여태껏 그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 적 있던 아이들을 모아 따뜻한 밥 한 끼 하는 것. 소박하지만 작은 공간에 좋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앉아 사랑을 담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음식, 공간, 사람. 경청과 환대가 있는 이 학교의, 그리고 그의 사랑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