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4호] 찻길 위 거대한 물음표가 놓였다

맨들맨들한 콘크리트 다리 위에 초록색 머리가 쫑긋쫑긋 서 있다. 총총거리며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종종 보인다. 다리 아래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보니 ‘레고 서울로 7017 세트’ 같다.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 위 비현실적으로 하얗고 푸른 길이다. 자동차가 주인이었던 고가도로가 사람 길로 바뀌었다. 자동차에 빼앗겼던 도시의 수많은 길 중 하나가 ‘사람’만을 위한 길로 다시 태어났다.
고가도로에 이름표가 붙었다

1970년 준공한 서울역 고가도로는 1990년대 말부터 매년 안정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2006년 감사원 안전도 조사 결과 D등급 판정을 받았다.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 때 2015년까지 철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12년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고 철거는 당연한 절차로 여겼다. 민선 6기 서울시장 선거에서 ‘다른 생각’이 나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민선 6기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고가도로를 보존하고 보행로와 공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내세웠다. 2014년 구조안전성진단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고, ‘서울역 고가도로 하이라인 파크 조성’이라는 공약을 구체화했다. 2015년 차량이 다니던 도로를 폐쇄하고, 600억 원가량의 예산을 들여 사람이 다니는 길을 만들었다. 예산 중 40%는 D등급이었던 안전등급을 B등급으로 올리는 데 사용했다. 도로 위 수목원과 놀거리,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 등을 조성하는 데 나머지 예산을 사용했다. 2017년 5월 새롭게 개장한 고가도로에는 이름이 붙었다. 처음 개장했던 1970년과 사람 길로 다시 문을 연 2017년의 숫자를 따 서울로 가는 길, 서울로 7017이다. 서울역 동쪽 동네인 회현동과 서쪽 동네인 만리동, 중림동을 잇는다.

이름표 위에는 하나씩 해석을 붙였다

서울로 7017은 국제현상설계공모를 실시해 세 개의 입상작을 선정하였다. 이 중 네덜란드의 건축가 비니 마스(Winy Mass)가 제안한 ‘서울수목원 콘셉트’가 최우수 당선작이 되었다. 다리 위에 설치한 화분에 다양한 식물을 심었다. 식물은 회현동부터 만리동 방향까지 50개의 ‘과’를 가나다순으로 배열했다. 회현동 방향에서 가지 과로 시작해 만리동 방향으로 가면 회양목 과로 끝난다. 사단법인 서울산책은 서울로 7017의 시민자원봉사단 초록산책단과 함께 《서울로 식물 산책》을 제작했다. 《서울로 식물 산책》은 서울로 7017 위식물과 주변 관광지를 연계해 소개한 책이다.

“서울로를 한 걸음씩 산책하면서 식물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면 《서울로 식물 산책》을 펼쳐 주세요. 서울로를 걸으며 식물을 볼 수 있도록 길을 그대로 책에 옮겼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1km의 서울로를 건너와 있을 것입니다.” (《서울로 식물 산책》, 머리말 중) 7월 11일 화요일 저녁 고가도로 위 장미 무대가 분홍색 입을 벌리고 준비가 한창이다. 서울로 7017 위에는 곳곳에 놓인 식물, 편의시설과 놀이시설 말고도 작은 전시관이 하나 있다. ‘헬로! 아티스트 서울로 전시관’이다. 전시 기획과 작가 선정 등 모든 것을 네이버문화재단에서 기획, 운영한다.

“‘헬로! 아티스트’는 현대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더 쉽게 시각예술에 다가갈 수 있도록 작가들을 소개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서울로 전시관은 길 위의 전시관이지요. 좀 더 쉽게 시민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헬로! 아티스트’ 프로젝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네이버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이상태 차장의 이야기다. 7월 11일은 전시 개관과 함께 ‘데이브레이크’의 축하공연이 열렸다. 무대 바로 앞에 선 팬들은 공연 내내 검지를 세우고 가사에 맞춰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전시장까지 있으니까 무언가 더 많이 받는다는 느낌이에요. 별 기대하고 온 건 아니었는데, 전시도 보고, 공연까지 있다고 하니까 뭔가, 서울에 산다는 느낌이 들어요.”

우연히 만난 공간에서 노랫말을 들으면 알 법한 뮤지션의 공연을 보고, 전시를 즐겼다. 영등포구에 사는 김 씨는 이날 서울로 7017 위에서 뜻밖의 기억을 얻었다.

해석은 걷는 것부터 시작이다

“만리동 쪽에서부터 걸어왔어요. 글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와서 한 30분 걸린 것 같아요. 만리동에 8년 살다가 청량리로 이사했거든요. 한창 만들 때 봐서 궁금했어요. 오늘 처음 왔는데 정말 좋네요. 도시 한가운데 이런 식물을 볼 데가 없잖아요. 꽃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40대 조성화 씨는 쉬는 날 시간을 내 서울로 7017 위를 올랐다. 한참 걷다 공중정원 쉼터에 발을 담그고 앉았다. 빌딩을 배경으로 찍히는 식물이 시야를 새롭게 해 걸으며 계속 사진을 찍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색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자동차가 많았나?’ 새삼 새롭기도 하고요.”

20대 김 씨에게도 서울로 7017은 항상 보아 오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였다. 김 씨는 서울로 7017 위에서 손가락으로 짚으면 보이는 중림동 아파트에 산다. 자주 보던 길이지만 높은 곳에서 보는 길은 평소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고속버스터미널이 없었을 때 서울역 앞이 고속버스가 지방으로 출발하는 공간이었어요. 너무 교통체증이 심해지니까 고속버스터미널을 외곽에 만들었던 게 강남터미널이었죠. 지금은 그쪽도 완전히 개발되었지만, 만들 때만 해도 아무것도 없이 달랑 터미널만 있었어요. 남대문 시장도 원래는 ‘칠패 시장’이 원조예요. 일곱 개 패거리가 만든 시장이라고 해서 칠패 시장이었대요. 그게 지금 남대문시장까지 연결되면서 남대문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이 정말 많이 모이던 곳이었죠. 저 만리동 쪽에는 봉래극장이라고 있었어요. 어릴 때 봉래극장에 영화 보러 오기도 했어요. 이렇게 걸으면서 내려다보면 공간 하나하나가 다 역사가 있는 공간이에요.”

서울로 7017 자원봉사단 초록산책단으로 활동하는 최영란 씨의 이야기다. 최 씨가 하나씩 짚어가며 이야기한 서울로 7017은 단순한 고가도로가 아니었다. 자동차를 타고 너무 빠르게 지나쳐 버린 서울이라는 도시의 시간을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는 징표 같은 것이었다.

걷다가 문득 말 걸어 보라고도 찌른다

“글쎄요. 만약 이걸 그냥 부수었으면 어딘가에서 폐기되었을 거 아니에요. 그럼 단순히 쓰레기가 되었을 고가도로였을 텐데 이렇게 남겨서 지난 시간을 천천히 돌아보는 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최영란 씨는 자동차로 지나다니기만 했다면 아무런 추억도 없었을 길 위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둘 지나간 시간을 설명하며 많은 생각을 한다. ‘서울로 7017 시민자원봉사단 초록산책단’은 소식지반, 연극반, 놀이반, 가드너반, 식물반 등으로 나누어 활동한다. 개인이 봉사단으로 신청해 서울로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오늘 이렇게 비가 오는데 가족이 와서 한참 나무를 보고 가는 거예요. 흑석초등학교 5학년이라는데 글쎄 애가 꿈이 농부래요. 그게 신기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워낙 식물을 좋아해서 엄마, 아빠가 나무를 입양했다는 거예요. 애가 가족 나무라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한참을 이야기했어요. 이제 행정이 만든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에요. 시민들이 계속 참여하고, 같이 만들어야지 운영이 되는 거예요. 우리 봉사단이나 여기에 오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런 걸 많이 느끼죠.”

서울로 7017에 자리한 80여 종, 500여 그루의 나무 중 일부는 이미 ‘가족’이 있는 나무다. 트리플래닛 홈페이지(treepla.net)에서 매월 일정 금액 후원하면, 서울로 위 나무를 입양하고 인천 수도권매립지에 느티나무 심는 프로젝트에 후원할 수 있다. 입양된 나무에는 가족이 원하는 메시지를 적은 팻말을 세운다. 반려동물과 같은 개념으로 서울로 7017 위에서 반려나무를 키울 수 있다.

길 위에 또 다른 길을 놓는다

새로운 길은 변화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준다. 영등포구에 산다는 50대 구 씨는 11일 처음 서울로에 올랐다. 일반적인 ‘공원’을 상상하고 올랐던 구 씨에게 서울로는 낯선 풍경이었다.

“서울로 7017은 공원보다는 ‘길’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울로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 정책의 첫걸음입니다. 자동차가 다니던 길이 사람이 다니는 길이 되고, 주변 역시 걷기 좋은 길로 만들 계획입니다.”

서울시 푸른도시국 서울로운영단 담당 주무관의 이야기다. 서울로 7017은 나무가 가지를 뻗듯이 고가도로 아랫동네로 길을 뻗었다. 주변 건물과 연계되는 것도 보행 편의를 위한 아이디어다. 현재는 대우재단 빌딩, 호텔 마누 건물을 통해 서울로에 갈 수 있고, 서울로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두 개 건물뿐만 아니라 서울로 일대에 있는 건물을 서울로와 연결할 계획입니다. 아무래도 연결되는 건물이 많아지면 좀 더 편하게 시민들이 길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많은 건물과 협의하려고 하고 있고, 현재 서울스퀘어빌딩과 서울역 롯데마트 쪽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건축가 비니 마스(Winy Mass)는 지난 5월 서울로 7017 개장식에서 “이 프로젝트는 다음 단계를 위한 시작점이다. 서울로 7017은 서울역, 주변 건물, 주변 동네와 연결되어 확산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공중에서 본 서울로 7017이 나뭇가지 모양인 점에서 착안했다. 나무가 가지를 뻗듯이 더 많은 길이 서울로 7017을 통해 연결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걷다가 ‘나의 도시’를 생각한다

발터 벤야민은 “도시는 이야기책이며, 걷기라는 언어로 해독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서울역으로 가로막힌 길을 자동차가 편리하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자동차를 위한 길이었다. 고가도로가 이어 주던 만리동과 회현역에 걸어서 가려면 서울역을 지나거나, 지하를 통해 가거나, 뱅글뱅글 돌아서 가야 했다. 편하고, 빠르게 가려면 자동차를 타면 된다. 불편함은 자동차가 없는 개인의 몫이었다. 자동차로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횡단보도 대신 육교를 세우고, 고가도로를 세웠다. 서울로 7017은 우리가 살던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볼 만한 의문을 덩어리로 만들어 던져 보였다. 이제 가만히 놓인 서울로 7017을 바라보며 도시를 어떤 언어로 해독할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 되었다.

서울시는 서울로 7017을 시작으로 만리동, 회현동 등 일대 1.7㎢의 공간을 ‘보행환경개선지구’로 지정하고, 서울로 7017 보행 특구를 운영할 계획이다. 세계 여러 도시계획 및 정책도 차 없는 도시, 보행친화도시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걷기 좋은 도시 서울편도 이제 막 시작이다.

글 사진 이수연, 사진 서울시, 네이버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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