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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4호] 변하는 시대와 여기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
“동글아~ 도와줘!!!!” 7월 13일, 성대골마을의 한 유치원 교실에 작은 무대를 하나 세웠다. 무대 옆에 선 해바라기가 헥헥대며 시들어 간다. 날 도와 달라며 흑흑대는 해바라기를 보며 아이들이 간절하게 동글이를 외쳤다. 다섯 살 아이의 키만큼 얼굴이 큰 동글이가 무대 뒤에서 툭 튀어나왔다. 동글이 옷을 감싸 입은 사람은 노성숙 연구원이다. 번들거리는 은박 단열재로 만든 옷을 몸통에 빙 둘러싸고, 반짝거리는 LED 칼을 씩씩하게 빼 들었다. 무대 위 원자력발전소 건물을 없애고,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주택모형을 짠 내놓았다. 해바라기는 비로소 해를 보고, 깨끗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되었다. 무대 앞에 앉은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 손뼉을 친다. 너희들이 동글이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동글이는 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홍보대사 캐릭터다. 환경디자인 전문가 국민대학교 윤호섭 명예교수가 재능기부로 제작했다. 원전하나줄이기 사업 정보를 쉽게 전달하고 시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었다. 성대골마을은 ‘동글이’를 현실에 존재하는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어린아이들에게 에너지 교육을 할 때 연극으로 전달한다. 유치원 교실 무대에 오른 차은주, 엄세진, 노성숙, 박은숙 연구원은 성대골에너지자립마을의 교육, 홍보를 맡아 진행한다.
성대골에너지자립마을,행정구역으로는 서울시 동작구 상도3, 4동을 부르는 이름이다. 저 멀리 국사봉 언덕이 보이는 성대시장 골목으로 올라가면 성대골에너지자립마을의 거점인 에너지슈퍼마켙(Energy의 E를 받침으로 둠)이 나온다.
성대골마을은 2010년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마을 활동을 시작했다. 1년이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에너지’는 마을을 관통하는 낱말이 되었다. 전문가를 초청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실체와 현실, 한국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배웠다.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지금 마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실천하자는 생각에 에너지 운동을 시작했다. 먼저 마을학교 벽이 가장 중하게 쓰였다. 매달 각 가정에서 쓰는 에너지를 표로 그려 기록했다. 우리 집은 얼마나 전기를 사용하는지, 아이들이 직접 기록하게 했다. 눈에 보이는 막대 그래프로 사용량을 나타내니 자연스럽게 에너지 절약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마을학교 안에서 시작한 교육과 운동은 점차 마을학교 바깥으로 뻗었다. 마을 축제, 합창단, 에너지 교육을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방법론을 만들었다. 활동을 지속했으며, 범위를 넓혔다. 마을에 있는 학교, 상점, 서울시 내의 다른 마을로 점차 뻗어 나갔다.
“에너지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탈핵이에요. 에너지 절약이나 에너지자립마을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탈원전, 탈핵으로 가야 한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우리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걸 한다. 이거였어요. 우리 활동이 여기에서 그치면 안 됐죠. 뻗어 나가도록 해야 했어요.”
성대골사람들 김소영 대표(마을닷살림협동조합 이사장)의 이야기다. 김 대표는 에너지 운동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너지 교육과 절약, 에너지 생산과 자립, 모두 문화가 되어야 했다.
마치 휴대전화처럼 모든 가정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 문화는 이렇게 바뀌어야 했다. 전세에 사는 사람도, 월세에 사는 사람도, 신용불량자라도 통신료만 내면 가질 수 있는 휴대전화처럼 쉽고 편하게 부담 없이 설치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2015년부터 성대골 마을은 거대한 실험실이 되었다.
“2014년 처음 성대골을 방문했어요. 그때 제가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죠. 제 담당 교수 마크 볼프람 교수가 마을공동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한국 사례 자료 조사를 도왔죠. 그러던 중에 한국의 마을공동체 사례 두 곳을 직접 만나보게 되었어요. 그중 하나가 성대골에너지자립마을이었어요. 대화를 나누는데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현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학술적으로 배우는 전환이론이라는 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라도 마을처럼 작은 단위에서 사회 전체로 뻗어야 한다는 거예요. 김소영 대표님은 단순한 마을 활동이나 절약하는 데 그치는 에너지 운동이 아니라 이걸 확산시키는 고민을 계속하고 계셨어요.”
김준한 상임연구원의 소개로 마크 볼프람 교수와 김소영 대표가 만났다. 마크 볼프람 교수는 김 대표의 고민을 듣고, 독일의 ‘리빙랩’ 사례를 소개했다. 리빙랩이란 기존 사회·기술시스템의 한계를 인식하고 에너지·주거·교통·식품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사회기술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성대골에너지전환마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마이크로발전소, 연세대학교 지속가능한 도시전환 연구실이 힘을 더하고, 2015년 서울시의 지원사업에 공모해 성대골에너지전환 리빙랩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성대골마을과 사람들은 기꺼이 실험실의 실험 도구가 되었다.
“2011년 마을에서 했던 교육부터, 에너지자립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계속 고민했던 건 ‘편리하게 설치할 수 있도록 돕고, 설치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는데, 왜 이렇게 확산하지 않을까’였어요. 에너지 전환이 ‘문화’가 되어야 하는데, 에너지 활동을 펼치는 우리 마을에서조차 단순한 캠페인으로 그치는 것 같다는 고민이었어요. 지금처럼 본격적으로 태양광에 집중한 건 올해가 첫해였어요. 일단 마을에 태양광을 설치할 사람이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어요.”
김소영 대표는 활동을 끌고 가기 위해 항상 질문을 던졌다. 초창기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이 성대골만의 에너지 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에너지운동을 하는 활동가 대부분 어린아이를 둔 엄마였다. 그러다 보니 ‘자기 천장’은 있어도 ‘지붕’이 없었다. 각 가정에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건 에너지 절약이었다. 에너지 전환 운동은 궁극적으로 에너지 생산이 가능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건물 소유주를 설득하는 게 중요했다. 마을에서 건물을 소유한 사람은 대부분 노년층이었다.
“리빙랩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마을 사람들을 엄청나게 만났어요. 주민센터나 새마을금고 강당같이 사람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에서 주민워크숍을 열면, 200명 넘는 주민이 참여했어요. 그 과정에서 실제 마을 사람들의 속에 있는 걱정거리를 찾을 수 있었죠."
건물을 소유한 노년층에게 에너지 운동이라는 낱말은 생소할지 모르나 그와 관련된 행동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노년층은 이미 친환경적인 삶을 사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전기나 물 등 자원을 절약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회용품 덜 쓰는 것까지 그들에게는 생활이었다. 배워서 아는 것보다 깊숙하게 내재한 감수성이 있다는 게 더 소중한 자원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건 괜한 골칫거리를 지붕에 이고 사는 꼴이었다.
“아무리 돈을 지원해 주고, 전기세가 준다고 해도 걱정인 거예요. 번개라도 치면 큰일 나는 건 아닌지, 전자파가 나오는 건 아닌지, 주변에선 괜히 설치했다가 사기당한 사람도 있다고 하고요. 종합적인 불안함이 태양광을 설치하는 데 망설이게 한 거죠. 이런 불편함을 해결해 보자. 이걸 우리가 연구해 보자. 거기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몇 차례 워크숍을 통해 관심 있는 마을 연구원을 모았다. 함께하겠다는 마을 연구원 49명이 태양광 보급을 위해 필요한 기술, 금융, 교육, 홍보까지 크게 네 개 분야로 나누어 활동을 시작했다.
기술 분야의 연구원들은 미니태양광을 DIY로 설치하고 얼마만큼의 경제적 효과가 있는지, 설치한 가정에 불편한 점이나 개선해야 할 점은 없는지 연구했다. 옥상거치형 미니태양광이나 베란다형 미니태양광 DIY 제품은 지붕이 없어도 설치할 수 있다. 설치하고 관찰하면서 개선점을 도출한다. 연구 도중 사용자들은 운반의 어려움을 꼽았다. 기존 패널의 반 크기로 나눠 운반을 쉽게 했다. 설치한 후에 보니 패널 거치대에 물이 고였다. 배수구를 뚫어 벌레가 꼬이고, 물이 썩는 걸 방지했다. 김준한 연구원은 “생활 속 불편함을 개선한 것들이 작은 일었지만, 큰 의미가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는 알 수 없는 진짜 지식이었다”라고 말했다. 금융 분야의 연구원들은 마을과 가장 가까운 금융기관인 동작신협과 함께 ‘우리집솔라론’이라는 마을 단위 금융모델을 만들었다. 300W 기준의 미니태양광은 한 번 설치할 때 25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우리집솔라론 상품을 이용하면, 미니태양광 설치 자부담금을 신협에서 먼저 내고, 설치 가구는 월 1만 원씩 24개월간 무이자로 상환한다. 미니태양광을 설치했을 때 아낄 수 있는 전기요금을 생각하면 초기설치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셈이다. 비교적 용량이 큰 600W, 900W 미니태양광은 설치비가 비싸 연 2%의 이자가 붙는다. 이 이자는 전액 에너지복지기금으로 적립되어 에너지 빈곤층을 위해 사용한다. 교육, 홍보 분야 연구원들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을지 연구한다. 어르신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교육하듯이 교육하고, 아이들에게는 연극과 같은 놀이로 다가간다. 교육 연극에 활용하는 캐릭터가 ‘동글이’다.
“전문가 교육을 받을 때 ‘탈핵’, ‘에너지 전문가’도 있지만, 그림 디자이너, 연극연출가, 마임 전문가 등을 모셔서 교육을 받았어요. 에너지 절약과 태양광 에너지 보급 활동은 여러 각도로, 창의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에너지 교육이라는 게 그냥 교육이 아니라 문화가 되어야 해요. 성대골마을 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연대예요. 우리 마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퍼져야 하니까요. 그 모든 연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연대가 미래세대와의 연대예요. 유치원 아이들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에도 마을연구원들이 찾아가 방과 후 교육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는 이유예요. 우리 옆으로 퍼지고, 위로, 아래로 잇도록 해야죠.”
우리가 하는 일은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이런 일은 마을에서 사람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 김소영 대표는 거듭 강조했다. 지구를 건강하게 하는 일, 자연환경을 지키는 이 일이 가장 위대하고 멋스러운 일이어야 했다.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 했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게 언제부터 당연해졌느냐고 물어야 한다. 마트에 가면 모든 물건이 포장되어 있다. 포장지 안에 또 포장지가 있다. 포장지는 곧 쓰레기다. 우리는 제품 하나와 모든 쓰레기를 함께 구매한다. 그리고 그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돈을 주고 쓰레기봉투를 산다. 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건 왜 당연한 것이 되었나. 옷차림이 좋은 거지가 더 잘 얻어먹는다는 건 어디에서 만들어진 상식인가. 왜 아무렇지도 않게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일회용품을 사용하는가. 언제부터 이 모든 게 당연한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무자비하게 전자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평생 남아돌 줄 알고 에너지를 사용하는 시대에 살았어요. 우리가 그 시대를 선택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에 살았던 거예요. 앞으로는 어쩔 수 없이 다음 시대로 가야 해요.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간다고 이야기해요. 석유, 원자력 에너지가 지배하는 시대에서 바이오, 태양, 풍력 에너지가 주를 이루는 시대예요. 이것 역시 선택이 아니라 이미 고갈되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예요. 발전소 하나를 지어서 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곳곳이 발전소가 되어야 해요. 공중전화로 삐삐를 확인하는 시대에서 휴대전화를 쓰는 시대로 자연스럽게 넘어온 것처럼, 재생에너지로 간다는 건 시대가 변화하는 거예요. 우리 마을 연구원들이 그걸 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아니, 누구나 해야만 하는 시대예요. 지금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