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3호] 행복의 인문학_너희들은 자란다

행복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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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만날 노는 베짱이의 삶을 대조한다. 유년시절 즐겁게 읽었던 이 책은 ‘열심히 노력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라는 생각을 고착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수많은 청춘들은 미래의 자기 길을 찾기 위해 마치 개미처럼 현재를 준비한다. 명문대에 가기 위해 학창시절 온종일을 학원과 독서실에서 보내는 중·고등학생,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 열혈인 대학생, 안정적인 고용을 위해 공무원에 도전해 보겠다고 반지하 고시원에서 몇 해를 보내는 청년들까지. 그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아낌없이 투자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준비한다는 것은 물론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준비하는 미래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것을 담보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황금 같은 청춘기를 투자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 투자일까? 오히려 그들은 현재를 ‘올인’하여 미래에 한 방을 노리는 도박꾼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미래를 위해 성실하게 준비했지만 결국 대부분 도박하는 개미로 끝나는 청춘이 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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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차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린 지 꼬박 세 시간, 내비게이션 지도는 대전에서 춘천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었다. 북한강을 따라 꼬부라진 길을 거슬러 오르고 산을 몇 개 넘어 한적한 시골길을 지난다. 일상에서 잊고 살던 삼팔선, 산 중턱 이곳저곳에 깔린 철조망, 얼룩무늬 차량과 각종 군사 장애물이 차 옆으로 스친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참 멀리도 왔다. 작년 가을 어느 날, 동반입대를 한다며 찾아온 두 제자와의 술자리에서 “내가 꼭 한번 면회 갈게!”라며 호기 좋게 약속한 탓에 아침부터 이 고생 중이다.

형철이는 대장이라고 불리던 녀석이었다. 겉으로 보면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학교 때 이미 대전의 일진 선후배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다니던 학교를 넘어 한 지역을 평정했었다며 부끄럽게 고백했던 일도 생각난다. 그런 형철이가 날 만나게 된 것은 도대체 학교에 다녀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해서였다.

진수는 명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녀석이었다. 내향적인 성격임에도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공부도 적당히 했었는데, 고1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한참 방황하다가 두발 길이와 흡연이 문제가 되어 학생부 선생님과 갈등을 겪더니 급기야 대안학교에까지 전학을 오게 되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대안학교로 전학을 갔다는 것을 기존 학교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런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이 기존 학교를 떠나 우리 학교에 전학 온 것은 미래는 고사하고 오늘만이라도 살아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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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배경은 달랐지만 고달팠던 학교생활의 공감 때문인지 그 둘은 유난히도 친하게 지냈고 서로를 의지했다. 형철이는 진수로부터 명문고생의 절제된 사고방식을 배우고 진수는 형철이로부터 자유분방했던 대장의 생활방식을 배웠다. 그렇게 서로의 성격을 보완한 덕분이었을까? 물론 쉽진 않았지만 둘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이후 대학에도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 입학이 더 나은 삶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대학에 가지 않을 것 같았던 두 녀석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대학 입학까지 한 것은 참 특별한 일이었다. 이후에도 인연을 이어 오다가 결국 동반입대를 자원해 같은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네 시간을 꼬박 달려 위병소에 도착했다. 잠시 후, 저 멀리에서 줄을 맞춰 걸어오는 두 명의 용사가 보였다. 짧은 머리에 바짝 얼어 있는 얼굴 표정을 보니 학교생활이 힘들다며 나를 처음 찾아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와 바뀐 것은 교복이 군복이 되었다는 것과 피부가 좀 까무잡잡해졌다는 것뿐이었다. 녀석들은 바짝 군기 들어 있는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단 세 시간 면회하러 네 시간을 아니 왕복 여덟 시간을 달려와 준 것이 고마웠던 것일까?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연신 감사하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원래 식성이 좋았던 녀석들이었지만 삼겹살을 먹는 모습을 보니 군인이라는 것이 더욱 실감이 갔다.

“군대에 진짜 이상한 놈들이 많아요. 자대배치 후 처음에는 그런 선임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학교에선 문제아였지만 여기에선 둘 다 완전 A급이에요.”

두 녀석은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물론 군대가 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지옥 같은 곳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지만…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고 면회 마감 10분을 앞두자, 녀석들은 이제 들어가 봐야 한다며 인사를 했다. 네 시간을 달려 만난 우리는 그렇게 진한 포옹과 함께 쿨하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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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던 길을 거슬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적한 공원에 잠시 차를 세웠다. 못 보던 사이, 많이 의젓해진 녀석들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처음 전학 왔을 때 그저 사는 것에 지쳐 있던 녀석들이었는데 서로 의지하며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더니, 지금은 군 생활까지 함께하며 인생의 조력자가 되어 있는 모습에 감회가 새롭다. 입대한다고 찾아왔을 때, 적응하기 쉽지 않을 텐데 하며 걱정하기도 했지만, A급 병사라며 자신하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대안학교의 생활이 오히려 학교부적응과 사회부적응을 양산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학생 시절에 해야 할 공부는 안 하고 경험 중심 학습이라며 이곳저곳 놀러 다니는 것을 보고 그렇게 질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반문하고 싶다. 그들이 일반학교에 잘 다녔다면, 책상에 앉아서 계속 공부를 했다면, 정말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A급 인생을 산다고 자부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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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원에서 선은 수많은 점들의 합이다. 다소 무식해 보일 수 있지만 때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인생을 2차원으로 해석해 본다면, 행복한 인생은 행복한 점들의 합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2년, 대학생활 4년, 취업준비까지 근 20년. 황금 같은 청춘기 20년을 인내하며 준비해야 한다면, 그것도 확실치 않은 가능성을 위해서 그래야 한다면, 그 점들의 합은 과연 행복이 될 수 있을까?

불안정한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를 채찍질하는 개미들 사이에 보잘 것 없이 유유자적한 두 베짱이의 모습이 교차된다. 이들은 불안감을 감수하고 기존 학교를 박차고 나와 대안학교에 왔고, 그곳에서 쉬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는 데 시간을 사용했다. 비록 지금 당장 손에 쥔 자격증이나 학위는 없지만, 녀석들은 말했다. 학창시절을 통틀어 대안학교 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단언하건대 우리가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을 미래로 미루지 않고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현재의 행복은 미래에도 행복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 윤대진(대전광역시교육청가정형Wee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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