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3호] 시나리오 작가 김정행 만나다

2017년 6월 19일, 역촌동 카페메이트
시나리오 작가 김정행 만나다

# Intro

그는 본명을 적으나 필명을 적으나 무관하다 했지만, 나는 본명을 먼저 적겠다고 했다. 사람 자체를 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본명의 어감이 더 좋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몇 달 전부터 CJ 스토리업이라는 기획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군이 대거 모인 시스템에 들어간 건 내게도 생소한 일이었고, 각자 스타일이 다른 크리에이터의 면면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독 그가 눈에 띄었다. 서너 번 자리를 함께한 게 전부지만, 내 눈에 비친 그는 양가적 인물이었다. 선연한 호기를 숙련된 겸손함으로 감추고, 오랜 작가 생활의 고단함을 타고난 긍정으로 메꾸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궁금했다. 그는 자신의 본질을 알려면 자신이 쓴 소설을 보면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사람을 알려면 그건 맨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오전, 카페에 마주 앉은 그는 명쾌하고 거침없고 솔직했다. 세 시간 동안 총 A4 37페이지 분량으로 그간 겪어 온 이야기를 쏟아 냈고, 나는 한 페이지도 완전히 버리기 힘들어 페이지를 늘려 겨우 욱여넣었다. 게다가 외부기고자 신분으로 특집까지 요청했다. 한국영화 산업 안에서 맹렬히 생존해 온 한 사람의 땀 냄새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정행(김호연) 작가
1974년 서울 생.
2005년 <실험인간지대>로 부천 만화스토리공모전 대상을 수상했고, 영화 <이중간첩>, <태양을 쏴라>의 시나리오를 썼다.
2013년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로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에 두 번째 소설 《연적》을, 2017년엔 세 번째 소설 《고스트라이터즈》를 출간했다
# 각본가 김정행

경원 그간 배우, 감독, 프로듀서 분들을 한 번씩 인터뷰했는데 시나리오 작가님은 처음이에요.

정행 그래요? 대전에 있을 때 한번 찾아 주시지. 카이스트에 있었는데.

경원 저는 엔드리스 로드(카이스트의 작가지원 프로그램)에 두 번 떨어졌어요.

정행 저도 그렇게 경쟁이 센지 몰랐어요. 아무생각 없이 넣었다가 추가면접 돼서 갔죠. 작년 8월에 내려가서 2월에 끝내고 올라왔어요.

경원 거기는 어땠나요?

정행 너무 좋았어요. 와이프한테 6개월간 가 있겠다니까 당황하죠. 그래서 대부분 문학관 가면 밥만 주는데, 여기는 창작지원금이 나온다고 이야기했죠. 얼마냐고 묻길래, ‘80만 원인데 40만 원 보내 줄게.’ ‘그래 갔다 와.’ (웃음)

경원 (웃음)

정행 시나리오 작업이라는 게 작업실을 전전하는 일이잖아요. 옛날 식으로는 지방 콘도도 가고, 감독 집 들어가 쓰고. 유랑을 하는 거죠.

경원 작가마다 방식이 다르겠지만 저는 취재원을 계속 만나야 하는데, 다 한 것 같아도 계속 할 게 나오거든요. 접근성이 떨어지면 좀 힘든 경우가 있어요.

정행 예를 들어 복싱물을 한다고 하면 누구는 복싱장 가서 권투를 배우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냥 책 읽어요. 책과 인터넷으로 1주일 내에 페이퍼 취재 끝내고, 1주일 구상하고, 2주 써서 한 달 내에 초고 뽑죠.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게 글의 DNA를 가지고 지지고 볶는 걸 좋아해요. 경원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경원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정행 일단 빨리 쓸 수 있다는 것. 아이디어가 꽂혔을 때 빨리 초고를 쓰는 게 중요하긴 해요. 안 그러면 취재하고 글 멋지게 꾸미느라 진이 빠져요. 열정도 식고요.

경원 핵심을 뽑아 놓고, 붙이는 건 나중에 붙이면 되니까.

정행 네. 그런데 요즘엔 좀 바뀌었어요. 저는 17년간 시나리오를 써 오면서 영화작가로서 대부분의 프로세스는 다 거쳤던 것 같아요. CJ콘텐츠개발작가 1기로 열댓 편 썼었고, 감독이랑 혼자 하는 것도 해 봤고, 김용화 감독님 팀, 강제규 감독님 팀, 영진위 기획개발, 이번에 전북영상위원회, 금번 CJ스토리업까지 아무튼 영화 쪽 작가로 할 수 있는 건 대부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간첩>(2003)은 각본 크레딧도 없고, <태양을 쏴라>(2015)는 흥행도 잘 안 됐어요. 스스로 자랑하고 싶은 작품이 한 편도 안 나왔다는 건, 결과적으로 그동안의 내 프로세스를 부정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요. 실패가 좋은 게 사람의 가치관이 변할 수 있는 거잖아요. 승자의 가치관은 안 바뀌죠. 근데 저는 실패하면서도 계속 이 방식으로 간 거예요. 그래도 먹고는 살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각색 일은 계속 들어오고, 어느정도 결과물은 항상 내는 프로작가니까. 2할 7푼에 9번 타자 정도로 산 거죠. 그러다가 제 단독 프로젝트를 내려면 이렇게는 안 되겠더라고요. 좀 바꿔서 홈런도 한 번 치고, 우승도 한 번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게 됐어요.

경원 어떤 방식으로 전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거예요?

정행 일단 빨리 쓰는 거 바꾸자 생각했죠. <고스트 캅>(2017 CJ스토리업 당선작)도 구상은 2010년부터 했고, 막초고(1고)는 작년에 나왔어요. 그런데 주변에 보여 줬을 때 반응이 안 좋았죠. 난감했어요. 그래서 다시 고민하자, 깊이 들어가 보고 선택지를 많이 가져 보자 생각했죠. 오랜만에 쓰는 오리지널이라 욕심이 있는 거죠. 아무래도 각색은 오리지널보다는 많은 암초가 있어요. 원작자나 제작사의 요구가 있으니까 일면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죠. 항상 그 싸움이 힘들고요. 그런데 오리지널은 그게 덜하잖아요. 물론 팔리고 나서 또 공동의 것이 되면 익숙한 요구들이 있겠지만요.

경원 금번 CJ에서 강의하셨던 모 작가님이 <고스트 캅>과 <사팔비착>(2017 CJ스토리업 당선작)으로 그래프를 그리셨죠. <고스트 캅>은 명확한 구조에 외면적 사건이 강했고, 제 것은 인물로 깊이 들어가는 대비를 이뤘어요.

정행 접근이 다르니까.

경원 사실 저는 작법서를 제대로 읽은 게 없어요.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나한테 안 녹아지고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나리오를 기술로 쓰는 것에 대한 반감도 있었고요. 핵심이 있다면 기술적으로 갖다 붙이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래서 아직도 기술이 부족하죠. 이번에 CJ스토리업 진행하면서 저도 약간 반성을 했어요. 그쪽을 너무 간과했구나.

정행 지향하는 영화가 어떤 영화냐에 따라서 작법이 바뀌어야 해요. 체질에 맞게 서로 다른 몸 씀이 있는 거죠. 흔히 상업영화의 3장 구조는 ‘이건 이런 영화다’라는 걸 관객에게 빨리 인지시키는 역할을 하죠. 그래서 정해진 매뉴얼이 필요한 거고. 결국 사용빈도나 밸런스의 문제인데, 진지한 태도의 영화도 이런 기술을 잘 쓰면 유리해요. 굉장히 창조적인 시나리오도 3장과 여덟 개의 시퀀스라는 구조를 활용하거든요. 3장 구조 만들 때 제일 힘든 건 2장이란 늪을 헤쳐 나가는 거죠. 근데 2장을 4분할 하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미드 포인트까지 어떤 미션을 한 번 도전했다 실패하고, 뒤에 또 한 번 시도했다 실패하게 만드는 거죠. 그렇게 나누면 한결 전개가 수월해지고 디테일이 보이게 돼요. 어쩌면 예술영화가 설정과 느낌이 강할 뿐이지, 구조에 충실한 영화일 수도 있어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나 <존 말코비치 되기>(2000)도 같은 구조로 나눌 수 있죠.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2013)는 과거 <시네도키,뉴욕>(2007) 같은 굉장히 이상한 영화도 만든 천재 감독이자 작가잖아요. 근데 그도 여덟 개의 시퀀스 구조를 사용해요. 물론 예술영화와 실험영화가 다를 거고. 상업영화와 더 쉬운 상업영화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대중 상업영화를 하니까 그런 구조가 관객을 잘 따라오게 만드는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거고요.

경원 저번에 작가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작은 영화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7) 같은 류의 작품을 연출을 해 보고 싶다고. 사실 그런 영화를 좋아하신다는 이야기잖아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오리지널도 있겠지만, 동시에 김정행이라는 사람의 오리지널을 뿜어내 보고 싶은 욕망도 느껴졌어요.

정행 제가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였거든요. 연극영화과 가면 우리 때는 다 노는 애들이라고 봤죠. 국문과 가서 놀면서 영화나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대학가서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그때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언더 그라운드>(1996), <아빠는 출장 중>(1988)이런 거 보고, 앙겔로 플로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도 좋아했었죠.

경원 진짜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정행 그러다 빨리 체계적인 걸 배우고 싶어서 영화사를 들어갔어요. 들어간 영화사가 <해변으로 가다>(2000), <순애보>(2000), <하루>(2001)를 2년 사이에 만든 곳이었죠. <해변으로 가다>는 잘 안됐는데 <순애보>는 이정재랑 김민희 나와서 잘됐고, <하루>도 상업영화로 성공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시네필의 오만함 같은 게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깨졌죠. <공공의 적>(2002) 시나리오 작가였던 김현정 감독님이 그러는 거예요. ‘야, 우리 회사 영화 <해변으로 가다>가 왜 망한 줄 아냐?’ 저는 ‘잘 못 만들어서 망했겠죠. 형 근데 사실은 저 그거 안 봤어요.’ ‘그러니까, 너도 안 봤잖아.’ ‘저는 원래 호러영화 잘 안 봐요.’ ‘호러영화 잘 안 보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이게 예술영화 하는 사람들이 상업영화를 만만하게 보고 덤벼서 망한 거야.’ 이러는 거예요. ‘상업영화가 쉬운 거 같냐, 예술영화가 쉬운 거 같냐?’ 그래서 ‘예술영화 그거 어려워요. 이해하기도 어렵고.’ 그랬죠. 근데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만들기는 오히려 쉬워. 자기 내면으로만 깊이 들어가면 돼. 그런데 상업영화는 많은 사람을 만족시켜 줘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거야. 보기 쉬운 건 만들기 어려운 거라고. 보기 힘든 건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오히려 만들기 쉬울 수 있어. 그런데 상업영화는 관객이 뒷짐 지고 있는 거야. 그걸 설득해야 돼. 그러니까 더 어렵지 않겠냐?’ 그때 저는 그말이 되게 와 닿았어요. ‘어? 그렇네?’ 하고.

경원 일리 있는 이야기죠.

정행 생각해 보니까 제가 좋아했던 영화들은 80년대 미국영화들인 거예요. <백 투 더 퓨처>(1987)니 <인디아나 존스>(1985)니, 이게 사실 상업영화잖아요. 그런 영화들이 외려 만들기 어렵다니까 도전정신이 생긴 거죠. 그때부터 작법을 배웠어요. 작법서 덕후가 됐고. 일하면서 상업영화 잘하는 선배들한테 배우고, 많이 보려고도 하고. 저도 후배들한테 그래요. ‘상업영화는 관객이 뒷짐 지고 먹여 보라고 하면, 우리가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 줘야 하는 거야. 근데 관객은 자기가 떠 먹히고 있는 것조차 몰라야 돼. 그러려면 좋은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 거야. 자기 감성으로만 쓰면 끝이 없어. 그 기술을 너무 간과하지 마’라구요. 저는 심지어 예술영화도 감성으로만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법이 필요하고 밸런스가 필요한 거죠. 당시의 도전정신으로 클래식한 대중영화를 써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데 물론 쉽지가 않죠. 근데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 기술이라는 게 곧 아트고 궁극에 가면 똑같지 않느냐는 거예요. 요리사가 기술로 예쁘게 만든 음식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3장 구조나 여덟 개의 시퀀스 등의 기술을 잘 써서 어느 수준에 올라가면,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거죠. 예술과 상업 경계 나누는 거 불분명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는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만족을 못 하는 거죠.

경원 상업영화 포맷으로 쓰면서 구조를 활용하는 데에 따르는 불이익은 전혀 없죠. 근데 머릿속에 다른 차원의 불안함이 생기는 것 같아요. 모두가 원형적인 어떤 걸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다른 더 큰 세계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누군가 만들어 놓은 묵직한 구조가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떤 원형과 대치될 때, 원형 따위는 가차 없이 해쳐질 것 같은 미묘한 불안감. 그 거대한 것을 따르지 않았을 때의 불안감 같은 거죠.

정행 원형의 힘을 훼손할까 봐, 자기검열하게 될 까봐 생기는 두려움이 있죠. 구조를 생각하는 순간 관객을 생각하게 되고, 관객을 생각하는 순간 취향이 사라지거든요. 당연히 양립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경원 그런 불안감이 작가님한테도 있으신지 궁금했어요.

정행 저도 있는데, 사실 저는 많이 매몰된 거죠. 프로작가로 활동하니까, 감독한테 맞춰 주고 관객한테 맞춰 주는 게 당연하다고 착각을 하는 거죠. 근데 결국 모든 작품은 작가의 코어가 들어가야 해요. 코어가 없는 작품은 감독이 각색하더라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그 핵심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구조나 기술 그리고 관객을 생각하다가 매몰되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코어는 잃지 않되, 그 외 디테일한 부분에서 관객을 설득하는 방법을 잘 찾아야죠. 역시 밸런스 문제인 것 같아요. 좀 더 내 취향대로 쓰고 싶은 욕심이야 항상 있죠. 그래서 언젠가 작지만 내 영화를 연출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 거고요.

경원 몇 번 뵙진 않았지만 제가 작가님에게 느낀 것은 이래요. 한 켠에 순수한 남자 아이 같은 느낌, 그리고 타자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도 있으신 것 같고요.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영화 쪽에서 많은 일을 겪어 보셨으니까 세일즈도 분명히 잘 알고 계실 거라고 느껴져요. 근데 그 순수함과 영리함이 교차하면서 그 사이에서 어떤 불안감 같은 게 비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사실 지금까지 너무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17년 하셨는데 만족스러운 크레딧이 없다는 것까지요. 당연히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불안한 감정이 크셨겠어요.

정행 전 크레딧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크레딧이라는 게 뭐예요? 신용이죠. 이 업계에서 일하면서 그 신용이 없어서 당한 수모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트라우마 같은 게 있는 거예요. 저는 기본적으로 소심한 사람이고, 예전보단 조금 덜 어리석을 뿐이지 여전히 영업 같은 것에 익숙지 않아요. 불편하고. 그 시간에 글이나 좀 더 쓰자는 주의니까. 근데 결코 현명한 태도는 아니죠. 일하면서 <이중간첩>에 참여한 작가, 아직 크레딧은 없는데 좀 쓰는 작가, 만만하게 고용할 수 있는 작가로 이곳저곳 많이 떠돈 거죠. 굳이 온갖 프로세스 거치고, 이름이 없기 때문에 사기도 당하고, 잔금도 못 챙기고, 무시당하던 것들이 너무 많아서 트라우마로 남은 거예요. 근데 그 오기가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거죠. 그간 갈팡질팡하고 이쪽저쪽 노선 타면서 부딪히고 뒤죽박죽, 그렇게 나름 중간 값을 찾아온 거죠. 제가 30대 때 성과도 없고 힘들었던 게 많이 좌충우돌했기 때문이었어요.

경원 그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정행 처음부터 그냥 나는 불도저야, 하고 본인이 가진 것대로 해 나가는 사람들 있잖아요. 경력이나 크레딧이 뭐가 중요하냐, 나는 그냥 내가 가진 것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풀어내겠다, 그런 태도로 말이죠. 그렇게 하다 보면 추진력도 쌓이고. 저는 남의 것을 많이 써 주다 보니까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어요. 말 그대로 대필 작가죠. 시나리오 작가라는 게 대필 작가잖아요. 그러다 보니 감독이나 영화사가 원하는 대로 써 주는 것에 매몰돼서, 오리지널 안 한 지 한참 된 거였죠. 그렇게 오랜만에 잡은 게 <고스트 캅>인데 초고 때 내가 나한테 외주를 줬던 거예요.

경원 그건 어떤 의미예요?

정행 남의 거 각색하듯이 내 초고를 쓴 거죠. 그게 매몰된 거예요. 정말 무서운 거죠. 물론 남의 거 각색을 열심히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본질적인 태도가 다르니까요. 그간 어디 가도 마감 안 놓치는 작가라고 칭찬을 받아 온 거예요. 원고 빨리 쓰고, 그래도 60~70%의 퀄리티는 나오니까.

경원 아 진짜 저한테 없는 기능이에요.

정행 근데 내 작품도 그렇게 쓰면 안 되잖아요. 제가 감독 노릇도 해야 되는 거죠. 그동안 그걸 좀 간과했죠. 빨리 많이 쓰고 돈 벌어야 되니까. 조금 가난하게 살더라도 자기 작업을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해요. ‘일신우일신’이라고 하잖아요. 똑같은 방식으로 10년 살면 하루 산 거 랑 뭐가 달라요. 매일 조금씩 달라져야지. 근데 저도 그렇게 못 살았죠. 그나마 제가 탈피하려고 했던 건 소설을 썼던 거예요.

# 소설가 김호연

경원 재밌는 포인트예요. 그것도 세 편 출간하신 거잖아요.

정행 홀수 해마다 냈죠. 2013, 2015, 2017.

경원 저는 사실 소설이 시나리오보다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에요. 시나리오는 인간들이 머리를 합치면 써지는 느낌인데, 소설은 그런 걸 넘어서는 어떤 것이 없으면 안 써지는 장르 같달까요. 물론 대중소설이지만, 그것도 뭔가 오랫동안 준비하지 않으면 힘들지 않나요.

호연 제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 《연적》 그리고 이번에 《고스트 라이터즈》까지 사실 다 제 이야기예요. 아까 언급한 크레딧 이야기도 나오고. 좀 쪽팔리다는 생각도 했어요, 트라우마가 많이 드러나서. 2001년에 <이중간첩> 끝내고 나와서 혼자 시나리오 세 편을 썼는데 안 팔린 거예요. 그때 우연히 출판사 사람들 알게 돼서 취직을 했죠. 2년간 만화기획 일하고 그 출판사에서 소설 팀장까지 했어요. 그때 일본소설들이 한참 히트를 칠 때였는데, 들여다보니까 모두 대중소설들이더라고요. 그때 소설에 대한 공부를 더 하게 됐어요. 저도 학교 다닐 때 순문학이나 문단 쪽은 굉장히 어렵다고, 일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죠. 이야기를 핫 하게 다루는 게 영화판이라고 생각해서 이쪽에서 시작한 거고. 그런데 편집자로 일하며 판세를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한국문단소설이나 한국문학들은 오히려 주춤하고 외국 대중소설이 히트를 치는 거예요. 외국에선 대중소설이 대세고 순문학이 마이너로 취급받는데, 우리는 문단이 워낙 권력을 갖고 있으니까 대중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없고 장르소설, 사소설 이런 식으로 취급하는 거죠. 미스터리만 해도 일본에선 대중소설로 완전히 자리 잡았잖아요. 미국만 해도 라이트노벨과는 상관없이 대중소설이라는 장르가 있고. 그게 대세인데, 우리만 소설이 괜히 어렵고 힘든 것으로만 포장되어 있더라고요. 국내 대중소설은 좋은 게 없으니까 독자들이 힘든 일본 사람들 이름 외워 가며 공허함을 채웠다는 말이에요. 수많은 한국영화가 일본소설을 사 오고, 저희 출판사에도 일본소설 판권 문의가 엄청 들어왔고요. 요즘은 그 자리를 스웨덴 소설, 북유럽 소설이 채우고 있잖아요. 《창문 넘어 도망친 백세노인》이나 《요 네스뵈 추리소설》이니, 그런 어려운 이름 외워 가면서 왜 읽어요, 국내 소설이 채워 주면 되는데. 그때 시나리오를 쓰며 먹고살긴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소설도 병행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문장 쉽고, 이야기 강한 걸로 깨작깨작 써 버릇 한 거죠. 근데 그렇게 쓴 첫 작품이 대한민국의 모든 장편소설 공모전에 다 떨어졌어요.

경원 그게 이번에 출간하신 《고스트라이터즈》.

호연 초고였죠. 다 떨어졌어요. 그 후 강제규 감독님 팀에 들어갔다가 잘 안되니까 약간 공황이 왔죠. ‘아, 영화는 시나리오 잘 쓴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결과가 안 나오면 평생 이러겠구나.’ 그래서 다시 나 혼자 끝낼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을 잡기 시작한 거죠.

경원 그게 몇 년도예요?

호연 2012년이죠. 남자들 나오는 망원동 이야기를 주변에 피칭하면 ‘그런 건 독립영화로 찍던가 해야지 투자 되겠냐?’ 그랬어요. 그래서 미국의 주드 아패토우 감독의 영화처럼 만들어 보자, 한국판으로. <40살까지 못해본 남자>(2005)나 <아이 러브 유, 맨>(2009) 같은 류로 《망원동 브라더스》를 해 보려고 한 거예요. 그땐 ‘브로맨스’의 개념이 약했던 때였는데, 제 주변 사람들에겐 호응이 있었죠. 그 와중에 ‘소설로 써 보지?’ 그래서 소설로 쓴 거예요. 당시 <경성의 주먹>이라는 시나리오 공동 작업 하면서, 다른 작가 차례일 때 저는 시간이 비니까 망원동을 썼죠. 병행했어요. 그해 가을에는 <태양을 쏴라> 각본 작업 하게 됐고요. 그러다가 2012년 말에 박근혜 당선돼서 열 받는 와중에 영진위에 시나리오랑 세계문학상 마감기간이어서, <경성의 주먹> 시나리오랑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랑 <태양을 쏴라>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냈죠. 근데 <경성의 주먹>은 팔렸고, <태양을 쏴라>는 영화화 됐고, 《망원동 브라더스》는 당선이 된 거예요. 그때가 서른아홉 마지막 끝자락, 저한테 황금의 해였죠. 그렇게 마흔 살 되는 해에 소설가로 데뷔했어요. 리뷰 중에 좋았던 게 오쿠타 히데오(영화 <남쪽으로 튀어>의 원작자) 소설읽는 것 같았다는 말이었어요. 제 의도를 파악해 주는 것 같았거든요. 어쨌든 그것 때문에 결혼도 했고, 영화 판권도 팔렸죠. 현재는 제작사에서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해서, 무상으로 6개월 연장하기로 했어요.

경원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호연 올해 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내년 2월까지 아무 진전이 없으면 가져와야겠죠. 만약 제가 첫 소설부터 취재를 하고, 공격적이고 야심차게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다면 아마 데뷔 못 했을 거예요. 근데 그냥 소박하게 나 자신을 팔아 보겠다고 시작한 거죠. 세 편까지 그렇게 했으니, 다음 작품은 야심차게 쓰려고요. 좀 다른 세계, 더 큰 세계관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음 소설이 중요하고 더 준비해야겠죠.

# 한국영화

경원 마지막 질문인데요, 근래 한국영화가 많이 만들어지잖아요. 근데 손익분기점을 넘은 작품은 얼마 안돼요. (2016년 기준 열다섯 편) 물론 그렇게라도 계속 만들어지는 게 작가들 개인에게는 좋은 일이죠.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좋은 일인데, 한국 영화는 전반적으로 왜 계속 재미가 없어질까요. 뭐가 어떻게 달라져야 될까요. 과연 누구 한 사람이 활기를 불어넣는다고 달라질까요. 그게 감독이나 작가나 제작자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의문이 들어요. 어떻게 보세요?

정행 공감해요. 시스템화 됐죠. 자본의 구미에 맞게, 상업 논리에 맞게 만들고 돈을 버니까요. 표절만 아닌 정도로 외국 꺼 대충 긁어 와서 한국화 한 영화들도 많죠. 그렇게 적당히 우라까이(원작을 살짝 바꿔 자기 것처럼 만드는 행위)해도 관객 몇 백만 들고. 물론 데이트용 무비로 소비하기엔 나쁘지 않아요. 산업적으로, 그리고 문화콘텐츠용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근데 저는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런 콘텐츠가 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별 수 없이 그런 게 반 정도 차지하면 나머지 반은 새로운 게 차지해야 되는데 한국 영화계는 몰빵이죠. 무론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긴 해요. 프랑스는 예술영화가 많을 거고, 인도는 발리우드(bollywood-뮤지컬적 요소가 강한 영화) 식이 많을 거고요. 근데 헐리우드가 대단한 게 모든 장르가 다 있잖아요. 전형적인 영화도 있고, 예술영화도 있고, 마블도 있고. 넓고 다양해서 좋은 영화가 함께 개발될 수 있는 풍토인데, 우리는 몰빵이라 지금은 이런 패턴에 묻어갈 수밖에 없죠. 어쩔 수 없이 80%를 가져와야 한다면, 20%는 새로운 거 하자는 거예요. 돈도 벌고 자존심도 챙기면 좋잖아요. 거기에 재미도 의미도 있고. 저는 <아저씨> 같은 영화 좋아해요. 외국 장르영화를 가지고 왔지만 한국만의 새로운 것이 있었어요. 과거 <추격자>는 한국영화 산업을 바꿨죠. 헐리우드에 없는 상업영화잖아요. 헐리우드에 포주가 연쇄살인마 잡는 이야기가 있나? 없잖아요. 경찰이 잡죠. 그렇게 신선한 20%가 들어간 영화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누구랄 것 없이 우리나라 피디랑 감독, 그리고 작가 모두 각성해야죠. 정말 뭐 하나라도 좀 새로운 걸 하려면요.

# FIN

이런 비유가 떠오른다. 넓은 폭의 강을 건너는데 제작자는 배를 띄우고, 감독은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시나리오 작가는 배의 일등석에 가부좌를 털고 앉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얼마 후 비바람과 물살을 헤치고 강의 맞은편에 도달하면, 제작자는 배를 팔아 돈을 돌려받고, 감독은 운항료를 정산받고, 이야기가 끝난 작가는 다시 차가운 강물에 빠뜨린다. 다른 배에 오르려면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고, 제작자는 그럴 듯한 이야기가 있는 작가만 배에 태운다. 잔인하긴 하나, 한국영화산업의 구조 안에서 보자면 과히 틀린 비유는 아닐 것이다. 그는 내내 ‘잘 써야한다’고 되뇌었고, 새로 각색 의뢰가 들어와 미팅이 있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마 나도 언젠가 강에 내 배를 띄울 것이다. 단단하게 건조된 배 위에, 누가 베낄 수도 없는 깊고 특별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를 싣고 말이다. 그땐 그를 초대해 함께 강을 건널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랫동안 자랑할 수 있는 항해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그의 작품을 읽어야겠다.

글 사진 이경원(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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