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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3호] 화덕이 있는 마당
마당에 화덕을 만들어 군고구마에 김치를 얹어 먹거나, 돼지고기를 구워 소주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굳이 시간으로 따지면 10년 이상은 됐을 것이다. 아마 40대로 접어들면서 그런 생각이 간간이 났는지 모른다. 화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보면서 화덕이 불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았고, 나라마다 다른 화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화덕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 숯불을 피워서 쓰게 만든 큰 화로 2) 한데에 솥을 걸기 위하여 쇠나 흙으로 아궁이처럼 간단히 만든 물건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에 나는 화덕을 만들었다. 부여에 있는 아주 작은 농막 앞에 화덕을 만들려고 벽돌을 가져다 놓은 것은 지난 3월, 두 달 넘게 고심하면서 설계(?)했다. 나무 소비량을 적게 하면서 고효율의 열량을 얻는 것이 화덕 설계의 핵심이었다. 간혹 귀농 귀촌을 하는 이들 가운데 불을 지폈던 추억을 떠올리며 아궁이가 있는 온돌방을 주택 설계에 반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온돌방 관리와 나무 구하기는 한마디로 근면 성실과 비례한다. 주변이 온통 산과 들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소유의 산이 있지 않는 한 나무 구하기는 쉽지 않다.
수시로 화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식구가 끼니를 해결할 목적도 아니었기 때문에 화덕의 규모를 작게 했다. 먼저 화덕이 들어설 자리를 시멘트 몰탈로 기초를 만들었고 네 개의 면을 벽돌로 쌓았다. 두 단 정도 쌓은 뒤에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각종 자료를 통한 학습은 실전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형, 이렇게 화덕을 만드는 사람이 어딨어? 입구가 더 넓어야지.”
모처럼 찾아온 동생은 발로 벽돌을 툭툭 차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생은 시골에서 아궁이에 불을 피워 본 경험이 나보다 많았기 때문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불이 들어가는 곳과 나오는 곳이 중요한데…” 마치 화덕 전문가인 듯 말을 뱉으며 얼기설기 쌓아 놓은 벽돌을 해체했다. 거기까지였다. 눈이 번쩍이는 대안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그저 벽돌만 부숴 놓고 동생은 무책임하게 떠났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널브러져 있는 벽돌을 보면서 재도전을 했다.
다시 벽돌을 네 면으로 쌓았다. 사각형 안에는 둥근 가스통을 넣었다. 가스통은 폐기된 가정용 엘피지 통을 절단한 것이다. 만일의 안전사고를 대비해 폐가스통은 전문적으로 절단을 하는 용접공에 부탁을 했다. 절단해 가져온 가스통의 넓이는 33cm, 높이는 50cm가량 된다. 사각 모양 안에 가스통을 넣은 뒤 나머지 비어 있는 공간에 흙을 채워 완성했다. 나무를 넣는 화구의 크기와 연기 배출구가 작다. 눈대중으로 만들다 보니 수평은 맞지 않고 벽돌의 높이도 제각각이다.
“이래서 불이 붙으려나?”
“일부러 삐딱하게 쌓은 건가?”
“고기 한번 구워 봐야지?”
마당에 없던 물건이 들어선 걸 본 동네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든다. 마당에 있는 풀 하나 변변히 뽑지 못하고,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전지를 못 하는 사람이 만든 것이니 오죽할까 싶은 표정들이었다. 화덕이 최종 완성된 것은 6월 초, 화덕 완공기념 구이를 언제 할까 고심하는 중에 첫 손님은 의외의 인물로 결정됐다.
지난해 한 출판사에서 딱 한 번 본 K시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화 통화도 처음이었다. 글을 쓰는 동네에서 기웃거리다 보니까 처음 통화라도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부여에 갈 일이 있는데 얼굴 한번 보자는 것이었다. 시험 삼아 화덕을 가동해 볼 겸, 농막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자고 했다.
“아궁이에 불 좀 때 봤나?”
“선배님, 제가 시골 출신이잖아요. 고3 때 대전에 처음 나와 봤어요. 길 잃어버릴까 봐 택시 타고 나와서 택시 타고 들어갔던 생각이 나네요.”
불을 피워 보라고 할 요량으로 아궁이 얘기를 꺼냈더니 후배 녀석은 너스레를 떨며 화덕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왜 뭐 필요한 게 있냐?”
“밑불이 필요하거든요, 마른 잎이나 지푸라기 같은 거 있으면 좋은데…”
녀석도 불을 피워 본 지가 오래됐다며 화덕구이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캠핑용 숯을 몇 개 준비를 해 두었던 터라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생각 외로 화력이 좋았다. 삼겹살을 굽는 데는 나뭇가지 몇 개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만든 화덕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는 지인들에게 할 말이 떠올랐다.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화덕 설계를 어찌나 잘했던지 효율이 끝내준다니까.”
“삼시세끼 프로그램에 나오는 화덕보다 나은 겨?”
“그거는 게임도 안 되지, 짜장면 먹고 중국집에서 나올 때 나무젓가락 세 개만 따로 챙기면 삼겹살 3인분은 끄덕도 없지.”
나무젓가락 몇 개로 고기를 구울 수 있다는 말을 되뇌면서 우리는 밤하늘을 천장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화덕 주변에 서서 잔을 따르고 고기와 마늘을 굽는 동안 숲속 고라니가 침을 흘리며 다가오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화덕구이는 일품이었다.
“요즘 시들은 역동적인 부분이 적은 것 같아요.”
“일상에 젖어서 그럴까?”
“반항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요.”
“문학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텐데.” 문학 언저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동안 밤은 깊어 갔고 화덕의 불은 서서히 사그라졌다. 술병이 비어 갈수록 말은 많아졌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문단에서 들려오는 재미있는 소식들은 삼겹살 이상의 안주거리였다.
“화덕에 불 피워 놓고 술 마시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나도 마찬가지야.”
“옛날 생각도 나고 참 좋네요.”
딱 한 번 본 후배와 시골 농막에서 화덕구이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예측 범위 안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전날 과음한 탓에 좀 쉴 생각으로 농막행을 생각했던 터라, 술 마시기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별과 바람과 화덕의 불은 모든 걸 잊게 만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죠?”
“글쎄,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이름을 모르는 것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김춘수 시인이 꽃의 이름을 불러 주었나?”
적당한 취기와 감성은 훌륭한 콜라보였다. 후배와의 술자리는 밤 12시가 가까워져서야 끝을 맺었다. 악수를 나누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별이 여름밤 산자락에 내려앉고 있었다.
인류의 발전이 불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세계사 책의 첫머리를 떠올리면서 불 꺼진 화덕을 바라보았다. 불을 중심으로 또 한 번 모이자는 후배의 말이 혁명과 역사를 도모하자는 비장함으로 들리지 않은 것은, 혈기를 다스린 그동안의 세월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화덕을 앞에 두고 누군가는 말을 하고 누군가는 듣고, 그 가운데 누군가는 끼어들면서 말이 나가는 방향을 교정해 주면 ‘감성낭만’과 ‘이성낭만’이 함께 불타는 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밤이 깊어질수록 나무와 풀들과 잠든 새가 귀를 열고 있다는 점이다. 주변에 말이 궁금한 것들이 널려 있는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