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3호] 유기동물 살처분 제로를 향해_피스완코 프로젝트

유기동물 살처분 제로를 향해 - 히로시마 진세키 고원 피스완코 프로젝트
‘드림박스(dreambox, ドリームボックス)’. 이 단어는 얼핏 들으면 희망이 가득한 무엇인가를 뜻하는 것 같지만, 일본에서 동물을 살처분 하는 가스실을 지칭하는 무서운 단어다. 일본 전역에서 한 해 약 16만 마리, 매일 평균 550마리가 넘는 동물이 가스실에서 생명을 잃는다. 일본의 광역지자체 중 특히 히로시마 지역은 한 해 약 8,300마리 이상의 동물을 살처분 했다. 그런데 2017년 현재, 히로시마에서는 전국 유일, ‘유기동물의 살처분 제로’라는 놀라운 일이 이루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히로시마의 진세키 고원이라는 지역과 피스윈즈재팬이라는 단체의 만남으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피스완코재팬의 한 스텝이 유기견을 끌어안고 있다

히로시마 현 진세키 고원(広島県 神石高原町). 히로시마라고 하면, 1945년 원폭이 떨어진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진세키 고원은 원폭이 떨어진 히로시마 시내와 차로 약 두 시간 거리이며, 산중턱을 꼬불꼬불 올라가다 보면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높은 고지대이다. 면적은 서울시의 절반보다 좀 더 넓고, 인구는 약 9,5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과소지역’으로 도시화로 인해 인구 유입이 거의 없고, 인구 절반이 초고령이다. 식당과 슈퍼 대부분은 오후 6시가 되면 문을 닫고, 차가 없으면 약국조차 갈 수 없다. 이곳은 일본 정부가 한때 ‘30년 내 없어질 수 있는 지자체’로 꼽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시골마을이 최근 일본에서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피스완코(강아지)’라는 프로젝트 덕이다.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는 피스윈즈재팬(http://peace-winds.org)은 해외 분쟁과 자연재해 등 생명의 위협이 있는 곳에 긴급인도지원을 하고, 사회적기반이 무너진 현장을 복구하기 위해 개발지원 등을 하는 약 20년 된 베테랑 NPO다. 큰 충격을 주었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스윈즈재팬은 본부를 ‘안전한’ 지역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국내지역개발사업을 염두에 두고 진세키 고원으로 터전을 옮긴다.

피스윈즈재팬의 오니시 겐스케(大西健丞) 대표는 이곳에서 살처분 직전의 유기견을 데려와 구조견으로 훈련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특히, ‘유메(꿈)노스케’라는 개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후 4개월이었던 유메노스케는 도살장에서 극적으로 구조되었고, 약 6개월간 건강을 회복한 후 ‘재난구조견’으로 다시 태어난다. 2014년 히로시마 산사태를 시작으로 네팔 지진, 대만 태풍 현장 등 재난 현장에 투입되어 무너진 건물 속에서 실종자를 발견하는 등 구조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2015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7회 일본동물대상을 받았다. (공익재단법인 일본동물애호협회에서는 매년 동물과 자연을 위해 업적을 세운 동물, 단체 등에게 이 상을 수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림(꿈)박스’에서 죽을 뻔했던 ‘유메(꿈)노스케’는 세상을 바꾸는 주역이 되었다. ‘사람이 죽이려던 유기견이 사람을 살린다’는 이야기는 각종 매체 등을 통해 일본 전역에 퍼져 나갔고, 폭발적인 후원금이 들어왔다. 진세키 고원에 방치되어 있던 임야 1만여 평을 활용해서 일본 최대 규모의 유기견 보호소 및 구조견 훈련소를 만들 수 있었고, 점점 높아지는 후원과 관심으로 시설과 스태프도 현저히 늘었다. 현재는 진세키 고원 다섯 개의 견사에서 1,200마리의 개를 수용하고 있고, 유기견 양도센터를 시내에 네 군데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피스완코재팬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문구 ‘히로시마에서 전국으로 살처분 제로’

피스윈즈재팬의 마케팅 전략도 돋보인다. 일본 지자체에서는 2008년부터 고향세(ふるさと納税)가 시행됐다. 자신이 관심 있는 지역에 기부를 하면 세액이 공제되며, 기부를 받은 지자체는 기부자에게 지역특산품으로 답례를 하는 제도다. (한국에서 도 약 10년 전 한 차례 논의된 바 있고, 현 정부에서 다시 이 제도의 도입 여부를 검토 중이다.) 피스윈즈재팬에서는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고향세 기부를 홍보하는 ‘후루사토 초이스’라는 사이트를 운영한다. 이를 통해 피스완코 프로젝트는 작년 한 해만 약 5억 엔에 달하는 기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기부된 금액은 일단 진세키 고원에 들어가지만, 마을의 조례에 따라 95%가 피스윈즈재팬의 교부금이 된다. 올해는 10억 엔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금액은 이 사이트 내에서도 사상 최고 목표치라고 한다.

피스완코재팬의 견사

히로시마 진세키 고원의 티어가르텐

피스완코재팬의 한 스태프가 구조견 훈련 중이다

피스윈즈재팬이 운영하는 진세키 고원의 8만 평에 이르는 자연체험형 시설 ‘티어가르텐(독일말로 동물의 정원)’은 ‘쉘터’를 넘어 ‘파라다이스’로 꾸며져 있다. 유기농 지역 특산물로 만든 카페와 레스토랑을 비롯해 가족들이 함께 각종 체험과 캠핑도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아이들, 동물들이 함께 실컷 뛰어놀 수 있는 푸른 지대가 펼쳐진다. 이곳이 유명해지면서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진세키 고원 마을이 활기를 띠면서 지역소득이 약 20% 증가하는 결과도 낳게 되었다. 피스윈즈재팬이 진세키 고원 마을 지역 사회에서 사랑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피스완코 프로젝트는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을까? 필자도 이곳에서 5일간 피스완코 프로젝트에 손을 보태며, 그 방식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니시 대표는 현장 경험이 없으면 그 사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는데, 보는 것을 뛰어넘는 경험에서 오는 배움은 정말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진세키 고원의 다섯 개 견사는 각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 유기된 개들의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견사에서는 먼저 건강검진을 받고, 이름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다시 다른 견사로 옮겨져 다른 개들과 어울리며 일종의 ‘사회생활’ 적응을 하게 된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최종 관문인 제1견사로 옮겨 오는데, 이곳에는 양도센터로 가기 전, 즉 분양 직전의 개가 모여 있다. 양도센터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면 개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졸업’한다.

좁고 그늘진 케이지가 아닌 숲속의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넓은 견사는 인상적이다. 견사의 담당 스텝들은 오전 7시 50분에 모여 조회로 아침을 열고, 8시에 본격적인 일을 시작한다. 오전 중에는 개들의 상태를 먼저 살피고, 방마다 배변을 치우며 바닥, 벽, 문 등을 청소한다. 그리고 아침식사와 물을 배분한다. 점심식사 시간을 포함한 세 시간의 달콤한 휴식시간 이후 오후에는 다시 청소, 방마다 사료 공급, 설거지, 개 산책 등의 일과가 반복되며 오후 7시에 일이 마무리된다.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도 동물을 사랑하는 스태프의 마음이 전해진다. 각 견사의 담당 스태프는 개 한 마리 한 마리의 성격, 취향을 파악하고 있다. 왜 사료를 줘도 안 먹는지, 누가 그 무리 속에서 잘 섞여 지내는지 등을 인지하면서 개들을 보살핀다. 특히, 방마다 붙어 있는 개의 이름 메모는 인상적이다. 번호가 아니라 이름이 부여됨으로써 주체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오후에 제일 많이 산책을 함께 나갔던 ‘스노우’는 복슬복슬한 하얀 털과 초롱초롱한 검은 눈이 인상적인 개였다. 산책은 곧잘 하지만,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려고만 하면 바로 도망친다. 이렇게 사람과의 상처가 드러난다. 상처를 회복하는 기간은 개마다 다르다.

피스완코재팬의 한 견사. 방마다 이름이 적혀 있는 메모가 인상적이다

아직 적응이 덜 된 스노우와 필자의 산책시간

피스윈즈재팬은 동물 본래의 삶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쾌적한 환경을 목표로 한다. 견사에 오고갈 때는 꼭 장화를 신고 신발 소독을 해야 한다. 사료 그릇 등도 설거지 이전에 소독이 필수다.

이런 활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 교육받은 직원의 고용, 육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2014년 10월에는 PRODOG 학교를 개설하여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지고 살처분 제로에 임하는 인재를 배출하고 창업 지원 등도 실시하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유기견을 입양하기로 하면서 세계 최초로 유기견이 퍼스트도그(Fisrt Dog: 대통령가족과 함께 사는 개)가 된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3∼4가구당 한 마리의 반려견을 키우면서 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보편화’되었지만, 그 수준은 ‘미달’이다. 한국 동물보호단체들에 따르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유기견까지 포함하면 연간 10만 마리가 사람들에 의해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2020년까지 일본 내 전 지역에 유기견 살처분 제로를 목표로 내걸고 있는 ‘피스완코 프로젝트’를 보면서 한국에도 이런 어드보커시 활동이 널리 퍼져나갈 수 있길.

글 사진 이진선 피스윈즈재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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