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2호] 유성구 원내동_지금도 그 자리에, 그래서 더 그리운

오래된 건물을 개보수해 시간의 흔적이 남았다

서대전IC 옆에 자리한 원내동은 예로부터 행정시설이 있는 읍내였지만 대전 곳곳에 신도시가 생겨나며 변화가 멈춘 마을로 남았다. 100년이 넘은 진잠초등학교와 400년이 넘은 노거수, 개보수공사로 시간을 덧입은 주택이 남아 있는 마을, 원내동은 오늘도 모든 게 그 자리 그대로 있다.
걸을수록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원내차고지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원내동 입구에 들어서면 일반적인 현대 동네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파트 단지와 단지 주변에 형성된 상업시설, 그곳에서 장을 본 사람 몇몇이 인도를 걷는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진잠초등학교 앞까지 이동하면 여느 동네와는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80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과 아직도 초등학교 앞을 지키고 있는 문구점, 주택 담벼락 위로 고개를 살짝 내민 붉은 장미가 눈에 띈다. 불과 1km 정도를 지났을 뿐인데 원내동 중심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원내동 입구 전경

아파트 단지 앞에도 오래된 마을 풍경이 남아 있다

원내동은 오랜 시간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다. 백제 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읍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현재는 인근에 있는 교촌동, 대정동, 학하동과 함께 행정상으로 진잠동에 포함된다.

“이 인근 마을에 사는 사람이 원내동을 읍내라고 불렀어요. 제가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진잠동을 중심으로 대전 곳곳을 운영하는 자체 버스도 있었죠. 신도안, 유성, 대전 시내까지 그 버스를 타고 이동했어요. 그 정도로 원내동이 중심이었어요.”

한때 원내동에 거주했다가 지금은 옆 동네인 관저동에 자리를 잡은 오금표 씨의 기억이다. 원내동에서 나고 자란 이정례 씨도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17세에 직장을 얻어 잠시 대구에 머물렀다가 결혼을 하며 원내동 옆에 있는 관저동에 터를 잡았다.

“원내차고지로 향하는 버스가 지나다니는 원내동 중심 거리가 원래 진잠에서 가장 번화했던 골목이었어요. 아파트 단지와 빌라가 새로 들어선 것 외에는 어릴 때랑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교촌동이랑 대정동이 워낙에 커지니까 상대적으로 더 오래되고 작아 보이긴 하지만요.”

90년대에 들어서며 원내동에 흐르던 진잠천을 복개한 후, 진잠타운아파트와 샘물타운아파트가 들어섰고 이어 마을 곳곳에 빌라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마을 군데군데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지만, 마을의 전체적인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가수원동에 살지만, 가끔 원내동에 와요. 와서 보면 어쩌면 이렇게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있을까 싶어요.(웃음) 지구대도 옛날 그 자리 그대로예요.”

진잠초등학교와 노거수,
사진 왼쪽에 있는 노거수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다

오랜 시간이 아이들에게 쉼을 준다

오랜 역사를 가진 원내동에는 노거수가 많다. 산장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하나, 진잠초등학교에 하나, 진잠동 동사무소 옆에 하나가 있다. 산장산 아래에 있는 노거수는 400년이 훌쩍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커다란 나뭇잎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그늘을 만들고 있다. 그 그늘에 놓인 오래된 나무 의자 네 개 아래로는 예전보다 작아진 진잠천이 흐른다.

진잠초등학교에 있는 노거수는 300년 넘게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쉼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시간이 오래 흐르며 나뭇가지들이 병들고 약해져 가지 몇 개를 잘라 내야 했지만, 죽은 나뭇가지 사이로 새로운 가지가 솟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노거수는 여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지금도 푸르른 생명을 이어 나간다. 오래된 나무 덕인지 진잠초등학교에는 신설 초등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쾌활한 분위기가 감돈다.

올해 개교 104주년이 된 진잠초등학교는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 중 하나다. 학교 입구에 자리한 진잠교육역사관과 100주년 기념 동상이 오랜 진잠초등학교 역사를 대변한다. 과거 진잠초등학교는 학하동, 대정동, 교촌동에 사는 아이들까지 모여 학문을 익히던 곳이었다.

“제가 52회 졸업생이에요. 어릴 때는 학교 안 나무에 올라가서 놀고 그랬죠. 학교 역사가 깊다 보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선배들도 많아요. 그 선배들이 학교 개교기념 잔치 때 외국에서 방문하기도 하고, 피아노를 사서 기증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동네잔치였죠. 저 어릴 때만 해도 그 주변에 학교가 하나밖에 없었어요. 성북동 애들까지 다 같이 공부했으니까요. 성북동과 학하동에 학교가 생기면서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났죠.”

조리터 마을에 주민이 남았다

진잠초등학교 주변에는 오랫동안 원내동에서 거주했던 마을 주민이 많이 살고 있다. 오랫동안 정을 붙이고 한집에서 살아서인지 담장을 따라 장미가 수 놓인 집도 많다. 80년대 지어진 주택에 개보수를 더한 독특한 풍경이다. 한눈에도 나이가 달라 보이는 조경물이 주택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동네 사람들, 꽃이야 다 좋아하지. 저기 빨간 장미 핀 집 있잖아. 집주인은 죽고 지금은 자식들이 거기 살아. 그 집 옆으로 새로 지은 집 있잖아. 그것도 그 집 애들 거야. 꽃은 예쁘게 잘 폈는데 사람은 갔고, 꽃 이발을 예쁘게 잘했는데 주인은 없고, 그렇지?”

22세에 금산에서 원내동으로 시집온 전혜순 할머니는 부모 집에서 살아온 세월보다 원내동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어졌다. 더운 날씨 탓인지, 할머니는 말하는 내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원내1동 경로당을 나와 집으로 향한다. 점심 식사를 위해 일찌감치 원내1통 경로당에 모인 어르신 대부분은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주민들이다. 적게는 30년, 길게는 3~4대를 이어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임경덕 할아버지도 30년째 원내동에 거주하고 있다

“이 주변엔 오래 산 사람이 많지. 아랫동네 아파트랑 새로 지은 집은 이사 온 사람이 많이 살고. 지금은 옛날 집이 많이 없어졌어. 전설에 따르면 진잠이 조리터래. 조리개에 쌀을 가득 담으면 떠나야 된다는 소리야. 부자 되면 망한다고, 돈 벌면 이 마을을 떠나야 한대.”

옛 전설이 사실이었던 걸까. 주변 마을이 성장하며 인근 주민의 왕래가 잦았던 중심지 원내동은 조금씩 예전의 명성과 멀어진 동네로 멈추고 있다

최근 대전시는 학하지구 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유성구 도시 개발이 학하지구와 노은동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흐르며 원내동을 비껴갔다. 대정동에는 대형마트와 아울렛이 들어선 후, 유성 중심지와 상업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인근 마을은 변하고 있지만, 원내동은 변화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을 곳곳에 붉은 장미가 피었다

전혜순 할머니는 노인정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글 사진 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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