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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2호] 재미와 감동, 그리고 밸런스가 중요하다
조우산 카페(Zousan Cafe)에 돌아왔을 때 이즈츠 토모히코 씨는 드럼통을 만지고 있었다.
“이게 새롭게 만든 건데요. 훨씬 오래 타요. 기존에 스토브보다 최소한 세 시간은 더 탈 거예요.”
설명은 진지했다. 연탄구이집에 가면 볼 수 있는 드럼통 화로와 비슷하게 생겼다. 드럼통 양 옆에는 구멍 여러 개를 뚫었다. 대보름 쥐불놀이 깡통에 뚫었던 그것과 비슷하다. 구멍 간격과 마무리한 매무새를 통해 훨씬 정교한 작업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래도 그 구멍에 불이 오래 타는 비밀이 있는 모양이다.
어스름이 내려앉을 때쯤 카페 앞에서 그 드럼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드럼통은 땅에서 살짝 들어 올려져 있었고, 안에는 장작이 가득했다. 세로로 꽂아 넣었다. 그러고는 위에서 불을 붙인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 적이 있는 이에게는 영 어색한 모양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불은 서서히 아래로 옮겨 붙었다. 불길이 거세다. 조우산 카페 주인장, 히사시 우에다 씨는 드럼통 위에 제법 두께가 있는 쇳덩이를 올린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 모양이다.
불이 제대로 붙은 것을 확인하고 토모히코 씨는 부엌에서 야생 멧돼지 넓적다리 한 짝을 들고 나온다. 도마 위에 넓적다리를 올려 두고는 먹기 좋게 자를 것을 요구한다. 정육점에서 볼 수 있는 파르르 날 선 식육 칼도 아니다. 정글에서 사용할 법한 투박한 나이프다. 쉽지 않아 보인다
화로 위에 구울 고기가 어느 정도 준비되고 함께 곁들일 찬과 술까지 자리를 잡았을 때 함께 사는 동네 사람 몇몇이 모인다. 낮에 동네를 돌아보며 만난 사람도 있고 처음 본 사람도 여럿이다. 체험이 가능한 사과 과수원을 경영하면서 사냥에도 남다른 재주를 지닌 이와모토 씨와 벌목을 주업으로 하는 미나미 씨도 무척 반갑게 일행과 인사를 나눈다.
잠깐 보이지 않던 토모히코 씨가 어린 쑥처럼 보이는 식물에 튀김 옷을 입혀 튀겨 낸 음식을 가져와 건넨다. 쌉싸름한 맛과 짠 맛이 어우러져 술안주로 제격이다. 이와모토 씨가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식물 사진을 보여 주며 진지하게 설명한다.
오래 타는 화로와 뒷산에서 잡아 온 멧돼지 고기, 역시 산에서 캔 나물까지, 그들에게는 모두 진지하다. 영화 <마션>에서 보았던, 생존을 위한 탐구 활동처럼 말이다.
외부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특별한 바비큐 파티였다면 그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무엇’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날 조우산 카페에서 벌어진 바비큐 파티에서 일상에서 벗어난 것이라고는 한국에서 건너간 ‘우리’뿐이었다.
추워서 밤새 잠자리가 사나웠다. 2층 목조주택은 한기를 막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을 임대해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했다.
이날, 우리 일행이 머문 곳은 일본 게이호쿠 마을이다. 히로시마 현 야마가타 군 기타히로시마 정에 있다. 히로시마 공항에서 게이호쿠까지는 차로 두 시간 남짓 걸린다. 가는 길 내내 충청북도 단양이나 강원도 영월과 비슷한 풍광을 접한다. 첩첩 산중에 계곡을 따라 좁은 2차선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졌다. 길은 한적했다. 도로 옆으로 치워 둔 눈이 소복하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다시 조우산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서 바비큐 만찬을 준비해 주었던 우에다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챙이 둥근 가죽 모자를 쓰고 부츠를 신었다. 조우산 카페 벽에 걸린 <인디아나 존스> 포스터의 해리슨 포드와 비슷한 복장이다. 잠깐 모자와 부츠를 벗었다가 카메라를 들면 반드시 챙겨 쓰고 신는다.
“저는 비즈니스맨입니다. 사업에서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죠. 인디아나 존스는 7년 전부터 내 사업에 이미지로 활용했습니다. 조만간 모자와 셔츠, 부츠 등 제품을 판매하는 가게도 낼 생각이에요.”
화로에 불을 붙이는 이즈츠 토모히코 씨
멧돼지 넓적다리를 자르는 모습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비즈니스맨’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명쾌하다. 게이호쿠는 과소지역이다. 우리나라 시골마을처럼 점점 사람이 줄면서 마을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한 그런 마을이다. 그곳에서 우에다 씨는 마을의 지속가능한 유지를 위한 활동을 펼친다. 우리는 그런 이에게 ‘마을 활동가’라는 이름을 붙이곤 한다. 마을 활동가의 입에서 ‘비즈니스’라는 말을 듣기는 쉽지 않다. 알게 모르게 터부시 하는 경향도 있다. ‘난 비즈니스맨이다’라고 주장하는 그의 발언이 맑은 계곡물처럼 명쾌하고 속시원하다.
우에다 씨는 제법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차례 강연을 하고 포럼에 참여했으며 이런저런 미디어에서 소개한 적도 있다.
우에다 씨는 도쿄에서 사업을 했다. 미치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다. 스리랑카에서 코끼리똥으로 만든 종이를 활용한 문구류와 천연 재료로 만든 크레파스, 다른 천연 제품 등을 들여와 유통했다. 사업지를 게이호쿠로 옮긴 지금도 사업은 계속 진행한다. 직원은 단 세 명뿐이다. 아내와 전날 만난 이즈츠 토모히코 씨. 사람을 더 채용하려 해도 근무지가 게이호쿠라고 하면 모두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카페를 운영하고 다양한 제품을 조우산 카페 등에서 판매하며 우리나라에도 공급한다.
그가 게이호쿠로 삶터를 옮긴 것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으면서다. ‘안전한 삶’이 마냥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곳 게이호쿠는 공기와 물이 맑아요. 지대도 높아서 쓰나미 염려도 없잖아요.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었어요.”
도쿄보다는 안전하다고 느낀 게이호쿠는 그의 할아버지 고향이다. 완전 타향은 아닌 셈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살았던 적은 없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을 때,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를 찾으러 히로시마에 갔대요.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폐허가 된 그곳에서 며칠을 보내셨나 봐요. 그 경험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근 30년 동안, 몸 이곳저곳에 발생한 암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그런 할아버지는 우에다 씨가 게이호쿠에서 자리를 잡는 데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2천 명 남짓 사는 게이호쿠에 이사를 왔을 때 기존 커뮤니티에 속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홀로 사는 노인분들을 찾아가 이런저런 일을 돕고,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기념품이나 민속품도 나눠 주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마을 커뮤니티가 우에다 씨를 받아들인 데는, 마을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할아버지의 삶이 큰 영향을 미쳤다. 우에다 씨는 할어버지 사진을 액자에 넣어 조우산 카페 벽에 걸고, 몇몇 상품 포장재에 할아버지 얼굴도 넣었다.
하사시 우에다 씨 조우산 카페 벽에 걸린 <인디아나 존스> 포스터의 해리슨 포드와 비슷한 복장이다.
벌목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며 일행을 산으로 부른 미나미 씨는
건축용 목재로 쓸 나무를 골라 시범을 보였다.
마을에 있는 절 묘덕사.
코노미치요시 주지스님이 좋은 뜻을 가진 글귀를 써 주고 있다. 스님은 올해 아흔이었다.
그렇게 마을에 한 구성원으로 섞여 들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일을 시작했다. 활동의 많은 부분이 펼쳐지는 조우산 카페는 주요한 커뮤니티 공간이며 문화공간이다. 이곳은 본래 스키샵이었다. 문을 닫은 후 방치했던 그곳에 카페를 열었다. 이 공간에서 강좌를 열고 음악회를 열고 토크쇼도 무대에 올린다.
“과소지역 문제 중 하나가 문화적 경험의 기회가 적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콘서트도 열고 강연도 열어요. 유명한 사람을 많이 불러왔어요. 어떤 날은 조우산 카페 인근 주민보다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지요. 지난달 콘서트에도 100명 정도 왔으니까요.”
문을 연 지 4년 정도 된 조우산 카페는 우에다 씨에게 자부심이다. 인구도 얼마 없는, 그렇다고 가게 앞을 지나가는 차도 그리 많지 않은 곳에 카페를 연 것은 그 자체로 모험이었다. 이쯤에서 비즈니스맨 앞에 어드벤처를 붙인다.
“저는 어드벤처 비즈니스맨이니까요.” 벽에 결린 <인디아나 존스> 포스터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최근에는 카페 2층에 출판사도 열었다. 본인 얘기를 비롯해 스리랑카 코끼리똥 종이 이야기, 게이호쿠에서 살아가기, 시골에서 기업가로 살아남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사냥한 멧돼지를 직접 해체해, 연구 끝에 개발한 스토브에 구워 먹고 뒷산에서 채취한 나물 요리법을 연구하고, 어업 행위를 위해 낚싯배도 구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우에다 씨가 추구하는 삶은 완벽한 자급자족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에다 씨는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였다. “저도 현대인이에요. 완벽한 자연에 기대어 사는 과거의 삶과 현대인의 삶, 그 중간에서 적당하게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좋아요. 이곳에서 전기도 써야 하고 난방도 그렇고 텔레비전이나 와이파이 사용을 위한 전파도 그렇고, 필요한 부분이지요. 물론 시골에서 사는 것이 도시에서 보다 돈이 훨씬 덜 드는 건 분명해요. 소비가 확실히 줄어들지요.”
밸런스와 함께 우에다 씨가 이야기한 부분이 ‘재미’다. 둘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재미’는 밸런스를 맞추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카페에서 파는 음식도 모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또 농사짓는 것도 매우 힘들어요. 그래서 사람을 끌어모아 체험 프로그램을 해요. 농사를 짓게 하고 돈도 받고, 좋잖아요. 재미없는 일도 재미있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 마을 촌장 부부다.
오카모토 스스무 씨와 테루코 씨다.
부부는 한국 드라마와 가요를 좋아했다.
욕망을 억제하고 최소한의 소비로 만들어 내는 자급자족, 농업과 수렵, 채취가 주는 노동의 즐거움 등을 진술할 것이라 예상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으레 그러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재미를 강조했다.
우에다 씨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해 앞에 맥없이 무너지는 핵발전소를 바라보며, 가장 큰 도시에 살다가 아주 작은 산속 시골 마을로 이주했다. 그 이주는 아이러니 하지만, ‘당위’가 아닌 ‘현실’이었다
당위보다 현실이 지속성을 보장해 줄 가능성이 더 크다. 우에다 씨가 벌이는 게이호쿠에서의 실험이 더욱 흥미롭고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마을이 사라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에요. 인구를 계속 늘려야지요. 제가 도시에 자주 가고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많이 다니는 것도 우리 마을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어요. 미디어와 잡지에도 계속 소개하고, 출판 작업을 통해서도 그렇게 해야지요.”
우에다 씨는 그런 점에서 자신이 벌이는 실험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이호쿠에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성공 사례를 토대로 전략적인 선전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의 삶보다 시골의 삶이 더 좋다는 것을 설명해야 해요. 스트레스도 없고, 생활비도 덜 들고, 아이들 키우기도 좋고, 더 큰 집에서 살 수 있고… 또 이곳 시골에서도 밤에 클럽을 열 수도 있어요. 이렇게 도시에는 없고 농촌에는 있는 것을 전략적으로 비교하면서 선전해야 해요.”
삶에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해결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확보하는 지금 삶이 보였다. 이런 구조는 ‘책임’을 한없이 쪼개 희미해지게 만든다. 6월 특집
조우산 카페
이런 형태의 삶이 지닌, 얇은 유리처럼 한없이 가볍고 쉽게 깨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은 관념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드러낸 수많은 사례 중 하나가 후쿠시마 원전 사태였다. 그 앞에 무기력하게 내려앉은 일상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벼웠다. 우에다 씨는 가벼운 일상을 건져올려 과거 어느 시점, 우리가 여전히 내 손으로 내 삶을 일구었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인 ‘게이호쿠’로 옮겼다. 여전히 맑은 공기와 물이 있는 이곳에서 직접 사냥하고 산나물을 채취해 요리하며 산에서 자라는 나무를 잘라 집을 만들고, 좀 더 효율이 좋은 난방 기구를 개발하는 데 몰두한다. 이 모든 행위는 당위가 아닌 일상이기에 ‘재미’와 ‘밸런스’가 쉽게 붙는다.
우에다 씨의 삶 속에서 작은 시골 마을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왜곡된 이 시대, 우리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니 이 과정이 무겁지 않다. 문제로 바라보며 대상화시켰다면 논리를 가져다 붙이느라 애를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또 기존 시장 경제 질서 안에서 차별성도 경쟁력도 없는 대안을 모색하려 헛심을 빼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올바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바라볼 때 접근 방식은 전혀 달라진다.
“저는 깊이가 낮아도 넓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벌이는 모든 활동이 다 이어질 수 있도록이요.”
사냥과 농업, 고기잡이와 나무 베기, 집짓기, 요리하기, 여행하기, 출판하기 등 이 모든 것은 ‘삶을 완벽하게 한다’라는 점으로 연결되어 있었다.